영 국 – 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침묵하는가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WSWS) 3/24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체포를 면하는 통치자의 면책특권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영국 상원의 판결이 3월 24일 수요일 오후 2시에 내려질 것이다. 이 판결은 그가 스페인으로 추방될 수 있을 것이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피노체트는 그가 재임하던 동안 벌어진 3,000건이 넘는 고문과 살인들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스페인에서 기소되었다.
일곱 명의 상원 배심원단의 평결은 오랫동안 기다려져 온 것이다. 피노체트가 다섯 달 전인 10월 중순 체포된 이후 법정은 이 재판을 질질 끌어 왔다.
많은 이들이 상원의 판결을 지켜보고는 있지만, ‘옵저버’지는 이 재판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변호사들이 평결에 대해 대충 논의하고 넘어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원은 국가 수반으로서의 피노체트의 지위가 그에게 기소에 대한 포괄적인 면책특권을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할 지도 모르지만 또한 1988년 9월 이전에 칠레에서 벌어진 어떤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재판에 회부될 수 없다고 판결할 수도 있다. 1998년 9월에야 고문은 영국법 상 “치외법권적” 범죄로 규정되었다.
한 변호사는 이것이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을 “심각한 정도로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노체트의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1973년 그가 정권을 잡은 후 첫 수개월 내에 칠레에서 고문당하거나 살해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법정은 그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재판은 몇 개월을 더 끌 수도 있다. 그런 후 내무장관 잭 스트로는 여전히 그를 온정적인 이유를 들어 칠레로 돌려보내는 것
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 법무장관 존 모리스는 이미 1974년의 영국 사업가 윌리암 뷰시어 살해사건에 관해 영국 내에서 피노체트에 대해 제기된 민간의 기소를 거부했다.
피노체트의 추방을 둘러싼 우여곡절은 믿을 만한 예측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에게 유리했던 고등법원의 판결은 상원(영국에선 최고법원의 역할)에서 거부되었고, 전례없이 두번째의 청문회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상원 배심원단은 언제 평결을 내릴 지에 대해 수 주 동안 망설였다. 그들이 현재 그 어떤 효과적인 기소도 최종적으로는 회피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결정에 반대하는 폭넓은 대중 캠페인이 없다는 데에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달간의 사태 추이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피노체트 사건에 대한 영국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되풀이된 여론 조사는 압도적인 다수가 추방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반 피노체트 항의는 주로 칠레인 망명자 조직이나 국제사면위원회 같은 민권 단체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노동 운동은 죽은 듯한 침묵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우파쪽의 피노체트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떠들썩함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의 최고 지도부와 그 이데올로기적 지도자인 전 수상 마가렛 대처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국제적 연계는 가장 굳건한 옹호세력이었다.
그들은 파시스트적 탄압을 노골적이고 시끌벅적하게 방어하는 캠페인 자금을 위해 2백만 파운드를 모았다. 전 보수당 장관인 노먼 라몬트(Norman Lamont)는 피노체트의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교황이 자기 이름을 덧붙였다는 지난 달 뉴스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는 이것을 “냉전 당시 자유를 수호하려했던 장군의 위대한 공헌을 인정”하는 것으로 선언했다. 대처의 고문이었던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가 발행한 ‘두명의 칠레인 이야기’라는 소책자에서 친피노체트 세력들은 선언했다. “무엇보다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피노체트 장군의 활약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냉전은 극복되었다… 사적 재산에 대한 권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했다”.
이러한 성명은 아주 광범위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1973년 9월, 미국과 칠레의 자본가 계급이 주도한 주요 제국주의 세력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고 군사독재로 대치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유럽,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국제적으로 사회적 투쟁들이 확대되어가고 있을 당시 지배 계급은 칠레에서 목도했던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억압하기로,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사례가 되도록 결정했다.
아옌데 정부와 스탈린주의 동맹세력들은 민주화에 대한 칠레의 오래된 전통은 사회주의가 의회 구조 내에서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었다. 아예덴가 일부의 개혁과 제한된 국유화만을 실행함으로서 칠레 정부는 제국주의자들의 이권을 몰수하길 거부했고 대중들이 직면한 빈곤과 착취의 근본적인 원인인 민족자본, 지주, 군부의 권력에 도전하길 거부했다. 인민연합 정부는 군부와 파시스트의 명백한 일격 태세에 대항하려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동원 시도에 반대했다. 노동자가 무장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직면한 학대에 대항에 항의하는 구리광산 및 여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탄압했다.
피노체트 체제는 사회주의 운동을 물리적으로 절멸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조직화를 파괴하는데 착수했다. 그는 개와 그 밖의 다른 야만적이고 체계적인 고문-히틀러의 고문과 비교해서 좀 다를뿐인 범죄-기제를 가지고 여성을 강간했을 뿐만 아니라 수백명의 남자, 여자, 아이들을 사형시킨 장본인이다. 군사정권은 전세계에서 가장 끔직한 수준의 빈곤을 창출했던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대처주의자들의 피노체트와의 연대 선언은 지배계급의 기본적인 이해에 감히 도전한다면 칠레 노동자들과 유사한 사황을 예견하게될 뿐이라는 위협이다. 영국의 피노체트주의자들은 사회적 혁명의 위협이 야기된다고 믿을 때면 언제든지, 군사/파시스트의 맹위, 대규모 살인, 그리고 민주적 권리에 대한 억업의 수단을 아주 뻔뻔스럽게 방어했다. 그들의 논평은 궁극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민주적 권리가 자유기업의 유지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처와 그녀의 지지부대는 칠레 노동자 계급에 대한 피노체트의 승리를 전세계 노동자계급에 대항하는 성공적이고 지속적인 공세에 있어 중요한 한 획이었던 것으로 바라본다. 대처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권리에 대한 정치적 도전을 파괴하는데 있어 자신만만한데 왜냐하면 공식 노동운동 내에서 아무도 이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처는 그녀가 재임하던 11년 동안 고용주들로부터 환심을
사려하는 한편 그녀의 모든 공격에 굴복했던 영국 노조와 노동자 지도부의 성격을 잘 인식하고 있다.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가 최근 본국 송환 분쟁에 있어 노조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영국노조회의(Trades Union Congress)는 단지 11월 26일 발행된 기자회견문과 TUC 의장 존 몽크스(John Monks)가 “내부장관에게 사적으로 썼다”는 사실을 들이댈 뿐이었다!
대처는 또한 블레어를 정치적으로 동류의 인물-그가 대응했던 감성-로 간주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권력을 잡은 이래 블레어 정부는 시장의 우월성과 노자간의 투쟁이 역사적 오해였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해왔다. 1973년 노동당과 노조는 칠레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 속에 수많은 시위를 조직했지만, 오늘날 블레어 정부는 피노체트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분명히 하는 한편 범인 인도에 대한 입장을 밝히길 거부했다. 블레어는 이전에 피노체트를 귀빈으로 대접했었으나 스페인의 송환 영장이 도착함으로써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실질적인 노동자 계급이 대처주의자들에 의해 던져진 도전에 대항하려는 노동자 지도부의 태도를 거부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그 대답은 분명히 노동자 계급 내의 정치적 전망의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1973년의 칠레 사건은 사회주의를 점진적인 의회주의적 행로로 가져갔던 스탈린주의와 사민주의적 정당들이 역사적으로 변호했던 중심적 교의를 반박해준다. 이 세기 대부분에 걸쳐 노동당과 노조는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열망과 자유기업체제의 보존 사이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능하게 했던 이 전망을 수용한 만큼 이는 노동자들을 과거 20년, 혹은 그 이상의 발전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남게 했다. 거대 초국적 기업에 의한 모든 측면에서의 생산의 지구화와 경제 생활의 지배는 노동당과 노조의 낡은 개혁주의 전술을 무력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쓰디쓴 패배의 연속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것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이해-무엇보다 트로츠키가 주도한 스탈린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저항의 역할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없이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와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능력은 심하게 동요되었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목소리가 귀기울여지는 단일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정책은 없다. 그들은 한계적인 판단력 속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표할 수 없는 자신들의 낡은 조직의 퇴보에 의해 사실상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 세계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것은 정치를 부유한 자들과 그들의 당을 위한 영역으로 독점화시켰다.
이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들이 있다. 사회적 엘리트들에 의한 괴기스러운 부의 축적과 나란히 치솟고 있는 빈곤과 실업으로 현상태에 대한 적개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유럽 전역에서 대처형 우익 정부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와 더불어 기업가 친화적인 의제들을 유지하고 있는 블레어와 다른 사민주의 정부들의 시도에 대한 노동자 계급, 지식인, 그리고 청년들 내에서의 심각한 불만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계급 세력들의 현재의 균형을 결정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사회적 이해에 개입할 수 있는 정교한 대안적 정치 전략이다.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방향 건설을 제출하는데 있어 개혁주의와 스탈린주의와 함께 했던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경험의 고찰과 칠레사건은 주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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