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인들을 지켜내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여느 때와 같이 또다시 파렴치하고 인종차별적인 독재자에 대항하는 미국 주도의 전쟁이 -지금 유럽에서- 행해지고 있다.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 독재자는 이 맹공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것이 분명하다. 현 시기 전쟁의 구실은 물론 코소보 지역 알바니아인들에 대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군이 자행하고 있는 박해와 인종 청소, 그리고 계속되는 탄압이다.
세르비아 독재하에서 알바니아인들에게 끔찍한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만, 문제는 미국/나토의 정책이 이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혹은 그들이 제출한 공습의 목표가 밀로셰비치 스스로 자신의 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처럼 공습은 보여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신문기사의 표제 이면의 상황은 노력을 투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데, 특히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자들(클린터, 코헨, 올브라이트, 버거)로서는 기꺼이 군사적 개입을 할만한 새로운 만행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고 단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이상, 이 강대국이 각각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계산하는 것은 자신의 군사적 배치가 다른 나라, 특히 경쟁 상대인 나라들의 눈에 미국의 이미지를 어떻게 각인시킬 것인 가에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헨리 키신저는 그가 라오스에 대한 비밀 공습을 수행했을 때 이 지점을 자신의 인도차이나 정책의 주안점으로 두었다: 당신의 적은 당신이 수행하기 위해 준비한 것에, 심지어 완전히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도 한계가 없음을 알게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혀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대규모 파괴, 즉 적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집행이 정책의 원칙적인 목표가 되었고, 이는 민간인 야영지에 대한 대규모 기습이 이스라엘의 주요 적인 헤즈볼라 게릴라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서부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 정책과 마찬가지이다. 나토 권력에 대한 과시로, 특히 적으로부터의 보복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폭격을 가하는 것은, 처벌 자체가 목적이고 자족적인 것이다.
이것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현재 공습 이면에 있는 사고이다. 또 다른 생각은 밀로셰비치 체제를 꺽고 심지어 파괴하겠다는 그릇되고 전혀 희망 없는 목표이다. 이라크의 경우에서처럼 이것은 환상이다. 공습을 받은 어느 국가도, 얼마나 심한 공격을 받았느냐에 상관없이 공격자에게 규합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밀로셰비치 체제는 현재 강화되었다. 모든 세르비아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부당하게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며, 공습으로 인한 비열한 전쟁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박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있다. 게다가 코소보 알바니아인들 조차 공습이 코소보의 독립이나 알바니아인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환상이다.
‘평화안’에 협력한다면 독립을 얻게 될 것이라며, 아마도 미국이 코소보인들을 설득하지 않겠냐는 추측들이 폭격 이전에 흘러나왔다; 나토의 도움을 기대하는 코소보인들을 유혹하는, 단지 하나의 암시였을 뿐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그러나 여느 때와 같이 미국은 결코, 구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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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내 모든 민족들의 완전한 자결권에 찬성한다고 한번도 명백히 발표한 바 없다.
코소보 내 소수 세르비아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코소보의 자결권을 기꺼히 수용한다는 것을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발표했어야 했다. 이중 어느 것도 없었다. 그리고 또한 세르비아군이 나토의 폭격을 알바니아계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인종 청소와, 피난민,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확신, 즉 이를 통해 심사숙고한 결론들은 없었다. 장기화된 점령, 게릴라 전쟁, 극도의 유린행위, 피난민 증가 등의 부수적인 문제와 더불어 2만 여명의 지상군(대부분이 미국군)을 전장에 투입, 전쟁을 확대하려는 얘기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환상에서 나온다. 그 사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학살 정책은 지속되고 있고 이슬람이나 아랍 국가들에 대한 제재 조치 또한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나 나토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중 어느 것도 코소보인들을 진정으로 보호하거나 그들에게 독립을 줄 수 없다: 중동정책과 유사하게 유고 공습은 오히려 군사력에 대한 과시이고 그것의 장기적인 결과는 비참함이다. 1994년 르완다의 학살을 막아낼 개입이 필요할 때, 미국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전쟁에 걸린 내기 돈이 크지 않았고 흑인들에게는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토 공습은 중지되어야하며 전 유고 연방의 모든 민족들을 위한 여러 부분의 회의가, 단지 일부를 위하거나 다른 부분을 희생한 대가로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자결권의 기반 하에, 그들 내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그 밖의 곳, 특히 중동에서의 평화 진작을 위한 과정들이 침해했던 동일한 원칙이기도 하다.
세르비아 군대를 공습한다는 현재의 정책이 세르비아의 민주화를 보장한다거나 밀로셰비치 세력에 의해 끔찍하게 다뤄지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 미국은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나토 가입국 내부의 불화가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면 언제나, 거만함과 분별없는 군사 배치에 있어 나토가 협력하도록 강제한다.
무엇보다 가장 위험스러운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쫓겨나고, 더 많은 삶이 목숨을 잃고,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와 같은 곳에서처럼 더 많은 분열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고 세계의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속셈은 미국 권력의 표현이기 때문에 제출된 인도주의적 관심은 가장 단순한 위선이다.
내가 발견한 가장 비참한 사실은, 분명 반감을 가지고 있을 미국인의 인명 피해에 대해 명료히 표현된 민감함과 더불어 공중으로부터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미국인들이 인명 피해에 관대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안전과 거리에 대한 환상으로 미국 조종사와 폭격 투하 군인의 공포를 불식시키도록 하면서 현대적인 기술과 공군력을 통해 가장 안전하게, 무사히 유고슬라비아의 인명을 파괴할 수 있다.
더 작고, 더 적고, 더 약한 민족들은 언제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이용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저지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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