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레닌이 이끄는 소련 볼셰비키정부가 1920년대 초반 시베리아로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견제할 목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원한 자금이 처음으로 전모를 드러냈다.

독립운동사 전공인 한국외대 반병률 교수는 최근 발표한 ‘임정과 만주지역 독립운동’이라는 글에서 러시아에서 새롭게 찾은 국제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 자료분석을 통해 볼셰비키정부가 1920년대 초반 3차례에 걸쳐 모두 160만루블 가량의 독립운동자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소련에서 볼셰비키 자금을 받은 인물들이 모두 당시 임정 초대총리인 이동휘가 이끌던 한인사회당, 곧 나중의 고려공산당 간부들이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그동안 볼셰비키가 한국 독립운동세력에 자금을 제공했으며 이 때문에 임정 내부에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몇몇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지만 정확히 언제, 몇차례에 걸쳐,어떤 경로로 얼마만한 액수가 지원됐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반교수는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와 관련된 방대한 코민테른 문서를 발굴, 분석함으로써 볼셰비키 자금지원 규모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1차 자금은 1920년 3월 한인사회당 대표로 국제공산당(코민테른)에파견됐던 박애와 이한영을 통해 `선전자금’ 명목으로 400만루블이 지폐로 지원됐다.

그러나 400만루블 중 100만루블(7천500멕시코달러)만 이한영이 상해로 가져들어왔으며 나머지 300만루블은 각각 소련정부 외무인민위원회 시베리아 정권위원인 가퐁과 원동공화국 북경 주재 전권위원인 유린에게 넘겨졌다.

2차 자금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파장을 남긴 것으로 1920년 9월 임정 특사로 파견된 이동휘 계열의 한형권이 한인사회당 국제공산당파견대표인 박진순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금괴로 받은 40만루블이다.

그러나 이 자금은 모스크바에서 상하이로 운반되는 과정에서 8만루블이 없어졌으며 그해말 김립과 박진순에 의해 25만4천300멕시코달러만 상하이에 도착했다.

또 3차 자금은 1921년 9월 한형권이 소련정부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과 교섭한결과 임정의 `내부정리’를 위한 운동비로 받아낸 20만루블로 독일 베를른 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이 돈을 확보해 유럽을 거쳐 그해 11월경 상해로 들여왔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노선 차이 등으로 인해 특히 이들 자금을 독점한 이동휘가 이끄는 한인사회당 계열이 임정 탈퇴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볼셰비키지원금 사용방법을 둘러싸고 독립운동세력간에 극한 대립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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