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히꼬 – 사빠띠스따, 원주민 권리찾기를 위한 국민투표에서 승리

피터 겔러트, 메히꼬노동뉴스분석(MLNA) 4/2

3월21일, 거의 3백만 메히꼬인들이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하 EZLN)이 발안한 원주민 권리에 관한 모의 국민투표에 참가했다.

투표인수는 1996년 8월에 열린 국민투표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이며 이는 참여율의 향상과 민중 봉기의 대의에 대해 지역적으로 보다 더 균형잡힌 공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 치아빠스의 본거지와 메히꼬市의 대다수가 EZLN에 찬성투표를 던졌다.

국민투표는 메히꼬 정치에 새로운 두 가지 지평을 열었다. 13세 이상이 참가할 수 있고 미국에 사는 12%의 국민들의 간절한 요구 사항이었던 외국의 메히꼬 공동체에서도 투표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후자의 노력의 일환으로 국민투표를 위한 투표소가 156개의 외국 도시에 설치되었으며 3만 명의 해외 거주 메히꼬인들이 투표했다.

국민투표 그 자체는 메히꼬 정부가 봉기의 성과를 무화하고 시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간헐적인 군사 행동으로 사빠띠스따 공동체와 여론을 지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교착상태에 빠진 평화적 진행을 진전시킬 필요를 인식한 EZLN의 전술적 도박이다.

함께 준비한 수천 명의 사람들

국민투표를 기획, 준비하면서 2만 명의 활동가를 포함하는 약 천오백 개의 준비단과 준비위원회가 설립되었다. 6만 이상이 투표 당일의 활동에 관계했으며 이는 사빠띠스따의 대의명분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모아낸 것이다.

그러나 투표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EZLN이 5000명의 대원들-그들의 절반은 여성-을 치아빠스에서 메히꼬 전역으로 파견했다는 것이다. 이들 원주민 활동가들의 존재로 인해 지역 활동가들은 투표 전 일주일 동안 치아빠스 문제를 메히꼬인들의 정치적 생활의 전면에 다시 부각시키기 위한 말 그대로 수천 가지의 활동을 벌여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메히꼬市에 있는 우리 지구에서 1주일도 안 되는 기간동안 이웃 집단, 노조와의 만남에서부터 시민 사회의 다른 영역과의 대화까지 40가지의 다양한 외부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사빠띠스따는 학생, 노동자와 함께 한다

사빠띠스따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메히꼬국립자치대학(National Autonomous University of Mexico, UNAM)-메히꼬 최대의 고등교육기관-에서의 투쟁 그리고 국가 전력 사업의 부분적인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투적 메히꼬전력노동조합(SEM)의 싸움에 함께 한다. 사빠띠스따 원주민들은 3월18일 십만의 격렬한 시위에 참석했으며 노조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4개월이 넘는 활동과 전국에 걸친 활발한 치아빠스 봉기의 파장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와 대중매체 그리고 카톨릭 교회 사제단은 하나가 되어 EZLN 특히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는 TV와 라디오 방송국에 국민투표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도록 계속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국민투표를 둘러싼 캠페인은 정부의 감독과 우익 준군사단체, 군 그리고 몇몇 농촌 지역에서 국민투표를 취소하려했던 제도혁명당(PRI)의 지부를 포함한 7개 주에서의 탄압(그밖에 다른 곳에서의 사소한 탄압)과 싸워야 했다.

인상적인 투표인수 이외에도 네 가지 안건(메히꼬 사회 내 원주민들의 지위, 원주민들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 산 안드레아스 평화협정을 승인하는 것, 그리고 치아빠스 무장해제에 관한 안건)에 대한 결론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국민투표는 비록 그것이 시민사회와 과우떼목 까르데나스의 민주혁명당과 같은 중도좌파 야당들의 지원을 받은 것이긴 하나 EZLN의 공식적인 활동이었으며 주류 언론과 당국에 의해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봉기 대의의 지지자가 되는 경향(안건에 대해 반대투표를 던진 이들은 겨우 2%에 지나지 않았다)이 생겼다. 대부분의 경우 투표수는 사빠띠스따에 대한 지지율과 EZLN의 동원력을 가늠할 수 있다.

EZLN 지도자는 이번 국민투표가 치아빠스 평화에 대한 요구, 민중봉기의 약진 그리고 시민사회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투표 결과가 지니는 정치적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내무성은 이것이 정부가 무장조직의 대원들이 국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는 인내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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