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무미아 석방 위해 수천명 거리 행진

노동자세계(Workers World) 5/6

“이것은 완전히 ‘미국이여 주목하라!(Attention America!)’이다”라고 ‘무미아 아부자말을 걱정하는 전세계 가족과 친구들의 모임’ 간사 팜 아프리카는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오늘 무미아를 지지하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로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우리는 무고한 한 사람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기 위해 이 도시를 마비시키고 있다”

2만 5천명에서 3만명의 사람들이 4월 24일 필라델피아 도심에서 양심수에 대한 역사적인 연대 행동의 일환으로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원주민, 그리고 백인 등 인종에 관계없이 젊은 군중들은 펜실베니아 사형수 감방에서 17년간 복역중인, 미국 아프리카인들의 자유 투사, 무미아 아부자말의 재심 요구를 위해 단결했다.

그들은 이유를 묻거나 간청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당당히 주장하기 위해 왔다. “사형집행을 중단하라!”

4월 24일은 무미아의 45번째 생일이다. 이날은 또한 독자적인 연방 재심을 받을 수 있는 사형수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사형촉진법’이 제정 3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흑표범당 당원이자 수상 경력을 가진 라디오 저널리스트였던 무미아는 필라델피아 백인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1981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해왔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인종차별적 경찰 폭력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인해 누명을 쓴 것으로 믿고 있다.

무미아 사건은 팬실베니아 대법원이 그의 상고를 거부한 지난 10월, 긴급한 위기에 빠졌다. 우파인 주지사 토마스 릿지가 언제든지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월 22일 무미아 변호단은 미 대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수많은 청년 학생들 모여 석방 요구

‘수백만의 무미아 지지자 운동’은 9시경, 시청 북쪽에서 청년 집회와 함께 시작되었다. 청년 활동가들은 4일 전, 콜로라도주 리틀톤에 있었던 피의 대량 학살을 가져온 소외와 도덕적 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교에 있는 경찰과 금속 탐지기가 아니라 정의를 위한 투쟁만이 이 문제의 해법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라고 느낀다”라고 무미아를 지지하는 무지개깃발(Rainbow Flags : 레즈비언, 게이, 동성애자, 양성애자, 전환성애자들의 조직-역자주-)과 함께 행진하던 토니 마틴이라는 학생은 이야기했다. “나는 가끔 무미아를 되새긴다. 인종과 성별로 어떤 집단에 사회적 불평등이 가해진다면 아무도 평등을 가질 수 없다”

100개 이상의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조직되었다. 군중 위로 올려진 현수막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무미아에게 재심을!, 노스 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 “무미아를 지지하는 브라운 대학 동성애자들”, “맨하탄시전문대는 무미아를 즉각 석방 할 것을 요구한다”, “무미아를 지지하는 아틀란타 학생들”, “1970년 5월 4일 켄트 주립대학-더 이상의 무미아는 없어야 한다. 무미아는 석방되어야 한다”. 미네소타 학생들은 수백명의 동료들과 함께 흰색의 대형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했다.

5백여명의 사람들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전환성애 지지자들의 대표단으로 무지개깃발에 결합했다. 푸에르토리코 독립 투사이자 양심수이기도 했던 라파엘 캔슬 미란다가 이끄는 라틴계 700명 이상의 사람들도 무미아를 지지하는 행진에 결합했다. “라틴계 사람들은 저 멀리 시카고에서 왔다”고 조직자인 카를로스 로비라는 말했다. 무미아 석방을 지지하는 아시아계 사람들도 두 대의 버스를 타고 뉴욕에서 왔다.

흑인의 힘(Black Power)이라는 단체의 한 지부는 1500명의 사람들을 조직해 행진에 결합했다. 자켓을 맞춰 입은 공공부문, 통신사업, 공공 근로 노동자들도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 다수가 무미아 사건을 경찰 폭력, 사형 제도, 그리고 발칸에서의 미국과 나토의 폭격과 연결시킨 피켓을 들고 있었다. 국제행동센터에서 가져나온 현수막에는 “무미아를 석방하고, 미국과 나토는 유고 폭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쓰여 있었다.

민중의 힘이 행진의 권리를 쟁취하다

흑표범당 지도자였던 캐슬린 클리버는 “민중에게 모든 권력을”이라는 구호로 시위 군중에게 인사를 하며 본 집회를 열었다.

‘수백만의 무미아 지지자 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민중의 힘이었다. 4월 초 에드 렌델 시장과 경찰은 행진을 불허하겠다고 위협했었다. 그들은 시위 조직자들에게 단지 500명의 사람들만이 ‘의식 행렬’로 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 관료들은 필라델피아 내외의 지역 공동체, 정치 지도자, 명사들의 항의를 묵살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뿐이었다. 렌델과 경찰국장 제임스 티모니는 물러설 수 밖에 없었고, 4월 24일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허가증도 없이 시내 전역에서 전투적인 행진을 벌이기 위해 거리를 점거했다.

어떤 이들은 단지 버스를 타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뉴욕 스태튼 대학 학생들이 학교 버스를 지역 공동체에 개방하자, 대학 당국은 십대의 학생들이 여행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학생들은 4월 23일 대학을 법원에 고소했고 승리를 쟁취했다.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거의 이틀 동안 버스를 타고 온 50명의 행진자들은 또 다른 종류의 투쟁을 벌였다.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텍사스 동맹은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당 125달러를 모아야만 했다.

아프리카계인 도로시 킨시라는 여성은 남편 케빈이 헌츠빌에서 5년간 사형수로 복역 중인데, 그년는 무미아와 사형 집행에 직면한 미국 내 3,500명의 사형수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지지

무대에는 무미아의 초상과 ‘정의는 무미아의 석방을 요구한다! 사형 집행을 중지하라!-사형촉진법안을 즉각 페지하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원주민 주권을 위한 전국 동맹’ 의장 빌리 타이악은 ‘무미아와 레너드 펠티어는 정치범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이곳은 점령된 땅이다. 그들이 우리의 형제 무미아 아부자말을 죽이도록 하는 권한을, 우리는 가지지도 않았고 주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지지자들을 대표해 60명이 왔다. 4월 22일 무미아를 만나기도 했던 유럽 의회 의원인 알리엔느 빠이에르는 “직면해 있는 사형 집행은 코소보와 이라크에 폭격을 한 계급차별주의와 인종차별 체제의 징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장 삐에르 빠주는 프랑스 최대 노조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을 대신해 연설을 했다. “무미아는 단지 자신의 삶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곳과 전세계의 인권 존중을 위해 싸우고 있다.”

프랑스공산주의청년동맹(CYLF)의 마리나는 “프랑스 청년들은 무미아와의 강력한 연대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공산당 대변인과 전 퍼스트 레이디, 다니엘 미테랑 대변인 도 인사말을 했다.

전국운동본부(National People’s Campaign)의 모니카 무어헤드는 군중에게 ‘무미아 석방’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수백 대의 버스와 트럭이 여전히 모이고 있다고”고 그녀는 군중들에게 말했다.

무미아의 수석 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는 연단으로 걸어와 법원이 세들어 사는 위압적인 시청 건물이 자신의 뒤에 있는 몸짓을 했다.

“17년 전 무미아는 손과 발에 수갑이 채워진 채 이 빌딩으로 잡혀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형대로 보낸 판사 앞에 재판을 받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여섯명의 전직 검사들은 법정에서의 선서를 통해, 어떤 피고인도 알버트 사보 판사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무미아는 그의 사형집행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존재하는 유일한 사형수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조사관들은 ‘무미아를 죽이는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왜인가? 그들에게는 시장이 있다. 그들에게는 주지사가 있다. 그들에게는 판사와 의원이 있다”. “그러나 무미아에게는 당신들이 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힘든 전쟁을 치르게 하고 있는 이유이다”

하스나 무하매드 박사는 그녀의 부모인 배우 오시에 데이비스와 루비 디를 포함해 자신의 가족을 대신해 메시지를 읽었다. “모든 세대는 도덕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무미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데이비스의 말은 행진 선두에 있었던 현수막에 쓰여졌고 집회에서 나눠준 유인물의 제목이기도 했다.

무미아의 아들 마지 자말(21세)의 이야기로 인해 집회 군중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그 유명한 사진을 상기시켰다. 집회에 있었던 몇몇 피켓에는 그 사진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남겨두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당신들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민중들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자유를 얻는 것,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 이 모두는 당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잭 데 라 로차는 “죄는 죄다. 그것이 베오그라드 상공을 폭격하는 B-2 폭격기든, 필라델피아에서의 부끄러운 재판이든”이라고 말했다.

신아프리카해방전선의 지도자이자 정치범이기도 했던 허먼 퍼구슨은 “사형 집행 영장이 서명된다면 하늘에서 불이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12·12운동의 비오라 플러머는 “우리는 필요한 모든 수단을 통해 무미아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무미아 아부자말을 걱정하는 전세계 가족과 친구들의 모임’의 청년 조직자 레슬리 존스는 이전에 양심수였던 활동가들을 무대로 맞이했다.

라파엘 캔슬 미란다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크공화국, 과테말라, 메히꼬, 그리고 파나마에서, 깃발을 들고 무미아를 지지하기 위해 온 라틴 대표단들과 같이 연단에 섰다. “무미아의 영혼을 죽일 수 있는 힘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민중의 영혼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프로리베르타드(ProLibertad)의 프랭크 벨거라는 미국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16명의 푸에르토리코 정치범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16명 각각의 이름이 불려 내려갈 때마다 군중들은 독립투사와 무미아와의 연대를 상징하기 위해 ‘네!’라고 외쳤다. 흑인해방군의 투사이자 뉴욕무미아석방운동의 의장이였던 사피야 부카리는 “펜실바니아주 루이즈버그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무미아를 지지하기 위해 감옥을 점거했다”라고 발표했다.

작가인 바바라 스미스는 무지개깃발을 대표해서 말했다. 레즈비언 노동활동가인 마타 그레뱃은 레스비언, 게이, 양성애, 전환성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내 조직인 ‘긍지를 갖고 일하라(Pride At Work)’의 인사말을 전했다.

“국내 및 국외에서의 전쟁을 중단하라”

노동자세계당의 지도자인 래리 홀름스는 “정치범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정치범들을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금 이순간 클린턴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나토의 다른 수뇌들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민중을 학살할 지상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함께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 반대 투쟁을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제국주의의 동전의 양면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6월 5일 워싱턴에서 있을 펜타곤 행진에 무미아의 지지자들이 결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수백만의 무미아 지지자 운동’은 4월 24일부터 힘있는 투쟁을 건설할 것을 행진자들에게 긴급 요청했다. 6월 3일 필라델피아에서는 대규모 시민불복종 행동이 리버티 벨에서 열릴 것이고 뒤를 이어 6월 4일에는 행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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