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5월 1일, 민주노총 주최의 제109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에 참여하고 돌아 왔습니다. 오후 2시, 가수 안치환씨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함께 시작했던 그날의 집

회는 3시간 동안의 지루한 도보행진을 거쳐,저녁 8시, 명당성당에서의 마무리 집회가 끝날 때까지 무려 6시간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지만, 전체 행사는 대

체로 무사히끝난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우선 경찰들이, 노동절 행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있는 행사장 안에까지 최루탄을 쏘아 댔던 작년과는 달리, 금년에는 여성경찰들을 대거 동원하고 눈에 보이는 경찰들 – 행

사장 근처의 뒷골목에는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음 – 도 정장을 입고 행렬의 안내에만 치중하는 등, 한마디로 시위행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자세는 일단

매우 진일보한 정치상황이라는 평가를 드립니다.

하지만, 뻔히 시위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차량을 일찌감치 우회시키지 않고 무려 3시간동안 지루하게 기다리게 했던 것은, 그 길을 지나가던 차량

들과 서울시민들로 하여금 우리 노동자들에대한 짜증스러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난 번 지하철파업 때 보수언론을 동원하여 서울시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최대한 여론으로 조장했던 것이 상기되었습니다. 한 때 노동자들의 동지라던 김대중대통령의 노동절 선물치고는 그렇게 썩 반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노조 관계자분들과 함께 뒷풀이를 가졌습니다. 모두가 지쳐있는 모습들. 결국 저는 안치환씨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다시한번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되는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진실을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겉모습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이웃을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아니 최소한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 이웃사랑, 이웃을 위한 ‘고통분담’을 기꺼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스스로의 임금을 삭감하여 동료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MF의 원흉이면서도 자신들의 재산이나 이권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하는 재벌들과는 달리, 우리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것인데, 국민의 정부는 그런 우리들의 ‘사랑’을 철저히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김대중대통령이 ‘실천하는 양심’이라면, 그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어느 TV 토론회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리해고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서 얼마든지 피할 수 있

다고 대답했던 것과 같이, 진작에 자기의 그공약을 실천해야 했던 것입니다. 노동절 행사 내내 우리 노동자들이 외쳤던구호가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었던 것과 김대중대통령의 공약이 전혀 다르지 않는데, 우리 노동자들이 왜 이토록 절규해야 하는 겁니까!

저는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시절감옥에 갇혀 그런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김대중대통령은 그 진실을 깨달을 때까지다시 한번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부디, 김대중대통령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을 고이 받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년의 노동절 행사에는 김대중 대통령도 참석하여 우리 노동자들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사랑과 실천하는 양심의 선물을 꼭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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