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한일 투자협정과 WTO 밀레니엄라운드에 모라토리움을!
이창근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PICIS)
‘밀레니엄’, ‘새로운 천년’… ‘밀레니엄’이 벌써 갖가지 광고에 등장하고, 국내에서도 지자체들이 앞다퉈 ‘밀레니엄 행사’들을 준비하느라 번잡하다. 내용없이 형식만 요란하다는 비판이 보수일간지에서 등장할 정도로 ‘밀레니엄’이라는 화두 자체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휘잡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세계 민중과 한국 민중들에게 ‘밀레니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굳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뺀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민중들에겐 ‘밀레니엄’이 가져다주는 상징보다는 ‘새로운 천년에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더욱 절박한 문제이리라. 하루하루가 살기 힘든 시대에, 천년의 세월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벌써 ‘밀레니엄’ 준비가 한창이다. 새로운 천년의 해돋이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다는 뉴질랜드의 어느 지역에 대한 독점 중계권을 놓고 한판 경쟁하는 것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자유(화)’를 위한 체계적인 협상이 준비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탄생시켰던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올해 11월 미국 시애틀에서는 새로운 자유무역협상이 개시될 예정이다. 우루과이라운드는 전세계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이동의 자유화를 일차적으로 완성시켰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부(富)의 재분배’, ‘전세계적인 고용기회의 확대’라는 휘황찬란한 구호아래, 제국주의 국가와 초국적기업들은 자유화·개방화·탈규제 체제를 주장하고 건설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의 공언(公言)대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영향은 결코 공정하지 못했다. 부는 공정하게 재분배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소수의 초국적기업들에게로 집중되었고, 빈곤은 확대되었다. ‘부의 세계화’가 아니라, ‘빈곤의 세계화’에 다름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447명의 억만장자들이 소유한 부는 전세계 인류 절반의 소득보다 크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3인의 총자산은 전세계 국가의 약 1/4에 해당하는 48개 빈국들의 국민 총생산을 합한 것보다 크다. 세계적으로 225명의 부유한 개인들의 부를 합하면 1조달러가 넘는데, 이는 세계인구 중 가장 가난한 47%의 연간소득과 맞먹는 액수이다. 또한 ‘더 많은 고용창출·고용기회의 확대’도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100대 초국적기업의 산출량(4조달러 이상)은 전세계총생산의 약 15%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1,200만명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최소한 15억명 이상이 실업이나 불완전고용상태에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리고 1993∼1996년 사이 가장 큰 초국적기업들이 외국에서의 산출량을 26%나 늘린 반면, 총고용인수는 오히려 4%나 줄였다는 통계를 접하면서, 그들의 고용창출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자유무역지대의 대표적 형태로 일컬어지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의한 고용파괴 현실은 더욱 참혹하기만 하다. 미국에서는 적어도 40만개의 일자리가 이 협정의 직접적 결과로 사라졌으며, 미국 초국적기업의 85%는 메히꼬로 이전하기 위해 수천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메히꼬의 경우 약 2만∼2만8천개의 중소기업들이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으로 인해 도산했고, 그로 인해 약 200만의 공식부문 일자리가 사라져버렸다. 초국적기업들에게 이미 ‘투자’와 ‘고용’은 연계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투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고용을 창출하거나, 고용 기회를 확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시대에 초국적기업의 ‘투자’는 두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먹어치우는 M&A(인수합병)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과 부딪히지 않고도 단기간에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금융시장(외환,주식,채권시장)에 대한 ‘투기’이다. 전세계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에서 M&A가 차지하는 비율은 70%가량에 달하며, 선진국차원에서는 90%를 상회한다. 이러한 M&A의 달콤한 유혹뒤에는 필연적으로 고용조정이 뒤따르며, 그것은 결국 고용파괴로 귀결된다. 한편 1995년 기준으로 뉴욕, 런던, 도쿄 외환시장에서의 일일거래량은 거의 1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이중 실물거래(상품 및 서비스)에 수반되는 매매량은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세계 민중들은 금융시장에서의 ‘돈 놀음’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에 대해, 이미 82년, 94년의 메히꼬 페소화위기, 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및 연이은 러시아, 브라질의 위기 등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금융시장에서의 투기는 초국적자본에게는 순간의 이익을 향유하게 해 주지만, 그것의 충격은 세계 각국 민중들에게 “살아 남기 위한 수단들”의 박탈과 제거라는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 일자리는 없어지고, 공공서비스는 축소되고, 임
금은 삭감되거나 아예 ‘받을 권리’마저 사라져가고, 부담해야 할 세금액과 부채는 늘어만 간다.
민중들의 기본적 필요를 그마나 충족시켜 주었던 공공서비스, 공공지출은 세계 모든 국가들에서 축소되거나 철폐되고 있다. 공기업은 민영화되어, 초국적 기업들에게 또 다른 ‘먹이감’으로 등장하고 있고, 그 반대편에서 민중들은 ‘사유화된 공공서비스’의 접속을 위해 더욱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건전재정의 확보’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긴축정책은 결코 모든 계급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적이 없었다. 자본가들에게는 갖가지 재정적 유인책 및 조세감면을 제공해주는 반면, 민중들에게는 공공지출 삭감, 사회안전망 제거라는 결론을 내려주었을 뿐이다. 기본적 삶을 위한 필수적 서비스들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세계 민중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 ‘살아남기 위해’ 일국적·세계적수준에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에 강제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무리 열악한 노동조건이라도, 아무리 낮은 임금이라도 감수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밑바닥”이란 월급이 약 10∼20달러이고, 노동시장이 ‘탄력적’이며, 단결권이 존재하지 않는 준노예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가 하는 역할이란 것이 ‘국가경쟁력강화’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자본에 가장 매력적이고 노동에 가장 구속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해외투자자들’에게는 더 많은 권리와 특혜를! 각국 민중들에게 끝없는 나락으로의 경쟁!을 야기하는 체제가, 지금의 자유화·개방화 체제이다.
이처럼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자유화·개방화·탈규제의 대가는 세계 민중들에게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이제 ‘더 많은 자유화’를 위해 새로운 협상을 개시한다고 한다. 거기에 새로운 천년이란 상징적 의미를 갖다 붙이고, ‘새로운 천년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환상까지 내포하도록, ‘밀레니엄라운드’라 덧칠까지 해대고 있다. 그러나 세계 민중들에게 자유화·개방화는 ‘재앙’ 그 자체였다. ‘더 이상의 자유화’는 ‘더욱 심각한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자유화가 가져다준 재앙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도 없이, 최소한 그것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조사하고 평가하는 진지함도 없이, 그들은 또 다른 ‘자유화 라운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밀레니엄 라운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유화 영역들이 논의된다는 점과 초국적자본의 권리헌장으로 악명 높았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이 재논의된다는 점이다. 정부조달영역, 경쟁정책 등이 새로운 자유화의 영역으로 가세될 것이며, 전세계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라는 암초를 만나 좌초되었던 다자간투자협정이 전세계국가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WTO체제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다른 것을 모두 다 차치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자간투자협정(MAI)이 ‘밀레니엄라운드’에서 논의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것의 성격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 초국적금융자본의 ‘투기’도 정당한 ‘투자’로 인정되며, 국내에 투자한 초국적기업에 대해 노동, 인권, 환경 기준을 부과하는 것은 절대 금지되며, 만약 그러한 기준들이 부과되어 초국적기업의 이윤축적활동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발생한다면 기업가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리가 부여된다. ‘초국적자본의 권리헌장’, 이것이 다자간투자협정이다. 따라서 전세계 NGO로부터 노동조합, 급진적 좌파정당들까지 이념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다자간투자협정에 대한 대응은 ‘거부’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헌장(!)이 또 다시 의제로 올려지고, 논의되어질 테이블이 바로 ‘새로운 천년의 라운드’이다.
한국 민중들도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OECD가입, 그리고 IMF체제를 지나면서 자유화, 개방화의 효과를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가용외환보유고가 IMF구제금융 신청 당시의 88억달러에서 현재 573억달러로 늘었고, 종합주가지수는 200대에서 700대선까지 회복되었으며, 내수판매는 지난해보다 8.7%증가하고, 드디어는 설비투자까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각종 경제지표의 화려한 통계뒤에는 4백만에 달하는 실업자, 임금의 엄청난 하락, 공공요금의 인상과 공공서비스의 축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라는 암울한 배경이 상존한다. 누구를 위한 경제회복이며, 누구를 대가로 한 경제회복인가를 뚜렷이 보여준다.
주식시장은 이미 20%이상을 외국인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주가의 등락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매달 외국인투자자들의 동향을 분석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미 주식시장은 그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으며, 정부는 그들 눈치보기에 바쁘다. 그들은 벌써 올해 들어서만 67억 8천만달러에 달하는 이윤액을 자국으로 송금했고, 종합주가지수 상승폭인 27.5%를 훨씬 웃도는 45.3%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1일부터는 1단계 외환거래 자유화조치가 취해지면서, 국내에 거주하지도 않는 외국인이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려 국내 금융시장에 맘껏 ‘투기’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알짜배기 공기업인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등은 초국적기업의 먹이감으로 전락해버렸다. 국내재벌은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전략적 제휴’라는 호화스런 구호 아래 초국적자본의 하위파트너로 기생하는 한편, 열위의 경쟁국가 민중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 개발에 한창이다. 또한 자유화, 개방화 체제 속에서 떨어져만 가는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해 국내재벌이 거의 유일하게 갖고 있는 수단인 노동비용 축소를 위해 정리해고라는 무자비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또한 ‘초국적자본의 권리헌장’으로 악명높은 다자간투자협정(MAI)과 똑같은 조항들로 가득 차있는 한미·한일투자협정이 너무도 ‘비밀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OECD, IMF로 이어지는 자유화, 탈규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많은 자유화’를 논하는 ‘밀레니엄라운드’, ‘한미/한일투자협정’을 한국 민중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자유화, 개방화가 한국사회 및 민중들에게 던져준 충격과 영향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도 충분한 평가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어떠한 ‘무역 및 투자자유화협정’을 우리는 거부해야 한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자유화 체제의 ‘재앙’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외자도입만이 살길’이라는 구호아래 ‘더 많은 자유화’를 단행하는 지배계급의 기획은 어떠한 역사적·현실적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 그들에게는 벌써 ‘밀레니엄’이 다가왔겠지만, 세계 민중·한국 민중들에게 ‘밀레니엄’은 ‘또 다른 천년까지 지속될 재앙’으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전세계 68개국 600개 이상의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이 WTO밀레니엄라운드에 대한 거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과의 연대가 ‘종이쪽지 위의 부가적 서술’로 전락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국적자본이 갖고 있는 보다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곳, 보다 자유롭게 착취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밀레니엄’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국적자본의 무제한적 이윤착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자유화·탈규제를 촉진하는 모든 ‘무역 및 투자자유화협정’에 모라토리움을선언하자! 한미·한일투자협정에 대한 거부! WTO 밀레니엄라운드에 대한 거부! 진정한 밀레니엄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가능성은 바로 이것에서부터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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