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우리는 제3의 길로 가지 않는다”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6/15
15개 회원국에서 지난 일요일 끝난 유럽연합 선거 결과는 노동자·민중과 공직 정치 관료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냈다.
1979년부터 실시된 유럽의회 직접선거 사상 투표율이 가장 낮았는데,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영국에서는 25%도 안 됐다.
언론 매체의 사설은 이를 “유럽에 대한 관심 결여”의 탓이라고 논평했다. 유럽의회가 대중으로부터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유럽의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고소득층 및 의원들의 특권과 반비례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유럽연합 기구들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은 단지 선거 결과를 설명하는데 있어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선거 결과는 유럽을 통치하고 있는 사민주의 정부의 정책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주고 있다.
단독이건 혹은 제휴이건 간에 현재 유럽연합 15개 회원국 중 13개국에서 집권하고 있는 사민당은 유럽의회 626개 의석중 단지 180석을 차지했을 뿐이다. 지난 회기에서는 단일 최대 정치 블록을 형성하면서 214명의 의원을 가지고 있다고 으시댔었다. 사민당은 영국과 독일에서는 완전한 참패를 기록했다.
독 일
독일 사민당이 야당 생활 16년 만에 연방 선거에서 승리, 정부에 입성한 지 단 9개월 만에 완패를 당했다. 31%의 득표율을 얻어 지지율은 거의 10%나 하락했다. 절대적 수치로 봤을 때 이 결과는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가을에는 약 2천만 명의 유권자가 사민당에 표를 던졌지만 지난 일요일에는 단지 8천 3백만명이 지지했을 뿐이다. 그나마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6.4%로 자신들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득표수에서 봤을 때는 이 당도 7십만 표를 잃었다. 1994년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10% 이상을 획득한 바 있다.
기독민주주의 계열인 기민련(CDU)과 기사련(CSU)은 합계 49%를 얻어 최대 승자가 되었고 독일 의석의 과반수를 가지게 되었다. 기민련 당수 볼프강 쇼이블레는 이 결과가 언론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보수적 정책에 대한 확신이며 정부가 좀더 분명한 우익적 방침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를 더 자세히 고찰해보면 다른 결론들이 나올 수 있다. 보수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어떤 새로운 득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도 이전의 연방 선거에서의 득표수 보다 적은 약 6백만 표(3분의 1)를 획득했다. 분명히 말해 기독민주주의 계열은 사민당의 표를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한 것이고 그들의 승리는 단지 수많은 사민당 지지자들의 기권으로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사민당과 녹색당 고위 간부들도 말했듯이 코소보 전쟁에 독일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 여론이 존재했었다. 올해 초 라퐁텐 재무부장관의 떠들썩한 사임 이후 슈뢰더가 시행한 재정, 사회 정책의 급격한 우선회는 계속적인 반대에 부딫혀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에 대한 반대는 기권으로 드러났을 뿐 대부분의 사민당 지지자들은 독일 의회에서 유일하게 전쟁 반대를 얘기했던 민사당(PDS, 구 동독의 스탈린주의 당을 계승한 정당)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사당은 처음으로 5% 장벽을 넘어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자민당(FDP)은 가까스로 3%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당수가 외무장관직에 있으며, 1969년부터 1998년까지 독일의 역대 모든 정부의 연정 파트너였던 이 당은 하나의 분파 수준으로 전락했다. 자민당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독일 내 유일한 정당이며 그들은 슈뢰더가 자신들의 경제 프로그램을 도둑질했다고 비난해왔다. 그들의 선거 결과는 이 경제 정책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선거 결과가 슈뢰더가 보다 더 우익화되는 것을 막기에는 여전히 충분치 않은 것 같다. 그는 외교에서처럼 국내 정치에서도 일관성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전쟁을 이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전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영 국
투표율은 23%에 불과했는데 이는 1984년의 유럽의회 선거와 비교해 약 10%가 하락한 것이다. 2년 전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던 노동당은 보수당에 다시 자리를 내주었다. 노동당 득표율은 44%에서 28%로 폭락했고 단지 29석만을 확보했다. 1994년 노동당은 사민당 블록인 “유럽 사회주의당” 내에서 가장 많은 62석을 가지고 있었다.
보수당(Tories)은 36석으로 거의 2배 이상의 의석을 얻었다. 자민당은 2석이 올라간 29석을 확보했고,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것을 주장하는 영국독립당은 지난 선거에서는 1석도 얻지 못했지만 이번에 3석을 획득했다. 민족주의적인 웨일즈당(Plaid Cymru)와 스코틀랜드국민당이 각각 2석씩을 얻었고 녹색당도 2석을 차지했다.
처음으로 도입된 비례대표제가 보수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의 경우처럼 광범위한 노동당 기권표가 승리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보수당 거점 지역은 북부쪽에 편재해 있는 노동당 강세 지역과 비교해 투표율이 약 10% 이상씩 상회했다. 보수당은 10년만에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유럽의회 의석을 얻었다. 1997년 보수당은 스코틀랜드에서 단 한명의 하원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노동당에 대한 인기 하락은 단지 유럽의회 선거에서만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데릭 팻쳇 외무장관의 사망 이후 리즈(Leeds)에서 실시된 보궐선거는 20% 보다도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영국에서 실시된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베테랑 좌익 인사인 토니 벤의 아들이자 블레어주의자인 노동당 후보 힐러리 벤은 당선은 됐지만 2만표였던 표차이가 2천표로 좁혀졌다.
노동당의 유럽의회 선거운동은 총리이자 당수인 토니 블레어의 명성에 중심을 두었다. 1983년 포클랜드-말비나스전쟁 이후 마가렛 대처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코소보 요인”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대 유고전에 대한 응집력있는 정치적 반대 세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는 것은 유고전이 거의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프 랑 스
리오넬 죠스뺑이 당수로 있는 사회당 또한 단지 22%의 지지만을 얻었다. 투표율도 47%로 역대 유럽의회 선거 중 프랑스에서 최저를 기록했다.
조스뺑의 연정 파트너인 공산당은 1994년의 득표율과 동일한 7%를 얻어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 결과도 거의 트로츠키주의세력인 “노동자투쟁(Lutte Ouviere)”과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nis- te Revolutionaire)”과의 공동 선거운동에 의해 가능했다.
프랑스에서 실질적인 선거 승리의 주역은 녹색당이었다. 이전 급진적 학생운동의 지도자였던 다니엘 꽁방디를 제1의 후보로 앞세우면서 10%를 얻어 공산당을 앞질렀다. 꽁방디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행정부에서 오랫동안 녹색당 활동을 했었다. 독일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는 그의 가장 절친한 동료로 알려져 있다. 꽁방디는 언론 플레이와 함께 정치적 도발을 자극하면서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대 유고전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는 지상군 파견을 계속 주장했었다.
최대의 실패자는 자끄 쉬락 대통령이었다. 그의 드골주의 정당은 단지 13%만을 가까스로 얻었으며 전 내무부장관 샤를르 빠스꾸아와 우익 지도자 필립 드 빌리에르에 의해 주도된 반 유럽분열주의에 뒤쳐저 제3당으로 전락했다. 드골주의의 전통적 연정 파트너인 프랑스민주연합(Union pour la democratie francaise)은 독자적으로 출마하여 9%를 얻었다.
지난해 두 개의 파벌로 분열된 극우파 국민전선(Front National)은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국민전선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장마리 르뼁 분파는 6%를 간신히 얻어 유럽의회에 재진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부뤼노 메그레의 “국민운동(Mouvement National)”은 4%를 얻어 단 하나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국민전선은 1994년 약 11%의 득표율을 차지했었다.
CPNT운동(Chase, Peche, Nature, Traditions, 사냥, 낚시, 자연, 전통)은 놀랍게도 공산당과 거의 같은 지지율을 얻어 유럽 의회에 진출함으로서 프랑스 우파들의 혼란 상태를 확연히 드러냈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처럼 이탈리아도 정부와 야당 진영 모두 파편화되고 분열되어 있다.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80%를 기록했다. 1994년 유럽의회 선거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큰 모든 정당들이 다른 군소 정당에 표를 빼앗겼는데 이는 군소 정당이 다양한 정치적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진영과 블록을 형성해서라기 보다는 대규모 정당들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를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언론 귀족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으로 25%의 득표를 얻어 차기 유럽의회에서 이탈리아의 가장 큰 분파가 되었다. 이는 지난 선거와 비교해 5%가 하락한 것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전 연정 파트너였던 극우파 국민동맹(Alleanza Nazionale)과 분리주의 세력인 북부동맹(Lega Nord)은 2%씩을 잃어 각각 10%, 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맛시모 달레마 총리의 민사당은 1% 하락한 18%를 얻었으며, 가장 지지율이 폭락한 당은 기독민주국민당으로 10%에서 4%로 떨어졌다. 대신 유럽연합 위원인 엠마 보니노를 앞세운 후보단은 2%에서 10%로 상승했다. 유럽연합위원회 집행위원장 로마노 프로디의 자민당은 8%를 얻었다. 프로디는 현재 연정내 제1당인 민사당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민주당을 만들었는데 보니노 후보단 및 대중당의 합계와 거의 동등한 득표를 얻었다.
정부 참여의 문제를 두고 분열된 전 스탈린주의당들은 지지율이 조금 상승했다.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재건공산당(Rifondazione Comunista)은 4.3%의 득표를 얻었고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공산당은 2%를 획득했다. 지난 번 5석을 차지했던 이들은 이번 선거로 유럽의회에서 공동으로 6석을 가지게 되었다.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오스트리아
유럽연합 15개국에서의 결과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다양한 양상들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국가(영국와 프랑스의 극우파들)는 “유럽연합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를 선거 기간 내내 강한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덴마크에서는 유럽연합 반대파들이 16석을 얻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의 선거는 주요하게 국내적 문제에 의해 좌우 되었다.
벨기에에서는 유럽연합 선거와 병행하여 총선을 치뤘다. 사민당과 기민당 연정은 완전히 참패를 기록하였고 자유당과 플랑드르의 극우세력인 플랑드르연합당(Vlaams Blok)이 승리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집권 연정인 사민당과 자유당이 야당인 기민당과 함께 지지율 하락세를 보였다. 이전 공산당에서 나온 좌파인 녹색좌파(GroenLinks)와 마오주의 세력인 사회주의당은 강한 지지를 얻었다. 녹색좌파는 지지율이 4%에서 12%로 상승했고 사회주의당은 5%를 얻었다. 그들은 공동으로 5석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전 총리 빔 코크의 노동당보다 단지 1석이 적은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여당인 민중당이 여전히 단일 최대정당 지위를 유지했다. 야당인 사민당(PSOE)은 공산당 탈퇴세력들이 형성한 “좌파연합”과 비슷한 의석을 얻었는데 지지율은 14%에서 6%로 하락했고 의석은 9석에서 5석으로 줄어들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민당과 기민당 연정이 1석을 추가하는 약진을 기록했다. 극우주의자들인 오스트리아자유당은 1석을 잃어 사민-기민당 연정에 처짐으로써 제3의 당으로 전락했다.
전체적으로 유럽은 불안정한 상황이며 이것의 원인은 노동자, 민중이 정치적으로 계속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1월 유로의 출범과 코소보 전쟁의 재정적, 정치적 결과는 이러한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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