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록(인문학자)
사(思)월과 오(悟)월 그리고 권력을 쥔 싸이코패스?
그날 1960년 4월19일 그 시각 그 장소에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가 성립한다면 고령화 사회의 일원이 되셨겠구나… 그렇다면 이 외 조카와 함께 1987년 6월 군독(군부독재)타도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그곳 시청광장에서 최루탄을 쏘면서 추적해오던 전경 덕에 남산까지 쫓겨 가 타워에서 무심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대화를 했을텐데… 대나무를 배경으로 묵묵히 청년의 얼굴로 사진틀에 갇혀 사철나무의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196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뚝섬 철길 옆 외가댁… 외삼촌과 함께 역사적 사건의 운명을 공유한 단아한 그 여고생은 자신을 닮은 딸을 1980년 5월18일 무렵 광주 민중항쟁에서 잃어 “애별리고”(: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함으로부터 비롯하는 고통)를 겪고 있을는지도 몰라…
5.16이 찬탈한 4.19 혁명 영령들의 사진을 봉안해놓은 건물 앞에서 이런 생각이 방문합니다.
산천초목 뭇 생명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서 인간 시각의 진화에, 아찔해지도록 만드는 봄의 짙은 향기와 한적한 절간 같은 봄의 은은한 향기에 인간 후각의 진화에 경탄하는 한편 유혈이 낭자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고 역겨운 남한 역사의 풍경과 냄새의 기억이 삶의 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자유-평등-형제애는 종이 속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프랑스의 정치체제는 정확히 말해서 사실상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다. 그것은 과두정 이다… 새로운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프랑스 혁명이 타도한 절대군주체제. 구체제-낡은 체제를 뜻함)이 은밀히 길을 닦고 있다…”. 1968년(박정희가 3선 개헌을 획책하고 있는 가운데 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 음모가 총통시대의 도래를 초래하리라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던 시절) 파리의 거리에서 자본주의 타도를 외쳤던 학생들 중 한 사람인 로랑 조프렝은 <
>(2011-05-12~18자)지에서 오늘날 프랑스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젊은이의 21%가 빈곤선 이하의 곤경에 빠져있답니다. 프랑스 전체 평균치가 11%이고 퇴직연금 생활자들의 그 비율이 8%임을 생각한다면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남한의 젊은이들과 함께 “분노한 정의감의 운명공동체”입니다. 젊은이들의 고용불안은 이런 곤경의 원인이며 파리 대학생들의 주거 난은 그 결과입니다.
“소득에 따라 의료보험료를 내고 필요에 따라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1945년에 정착된 사회보장제도가 파괴되어 가고 있으며 연대의 논리를 “사(私)보험의 논리”가 삼키고 있습니다. 프랑스 농촌의 의료 서비스가 악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 역시 낯설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평균수명에 계급 간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35세인 간부는 82세, 35세인 노동자는 76세이며 65세 이전에 사망할 위험성이 간부의 경우에는 10명에 1명꼴인데 비해서 노동자의 경우에는 4명에 1명꼴입니다.
남한의 “지도자층”(사실은 지도계몽 받아 마땅한 놈들이 다수이며 소수의 암-수컷들은 극형에 처해야함)의 비루한 언행에 대한 화살로 사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부와 권력 그리고 지위를 누리는 만큼 사회에 공헌하는 고결함)가 이 사회에서 정당한 가치의 지위를 누리고 있을까요? 특히 세계화 이래 부르주아에게는, 남한 지식인들에게는 “선비정신”이 5 천 원 권 지폐의 기표(記標:기호학의 용어로 記意와 짝을 이룬다.)로나 남아있는 상황과 프랑스의 같은 패거리들의 언행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석공의 아들로 엘리트 과정의 하나인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출신인 베르해게는 오늘날 상황을 조프렝과 마찬가지로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 직전과 유사하다면서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특권유지에 안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립행정학교 역시 붕괴되고 있는 의료보험 제도처럼 1945년 “레지스탕스 정신”으로 설립되었는데 오늘날 그런 정신은 “개인적 성공의 탐욕”에 의해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지성인들은 오늘날 엘리트 과두체제의 실력자들이 공직을 떠나면 사기업에 몸을 담는 삶(Golden Pantouflage)을 지향하는 경향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이 프랑스의 “청화대”(請禍隊)는 엘리트 과정인 국립행정학교, 폴리테크닉(공대), 시앙스포 파리(국립 정치학대)등 출신들로서 기득 권력의 편협함에 사로잡혀 혁신에는 당달봉사이자 귀머거리라는 것입니다. 금융위기 이래 여론이 은행체제를 개혁하고 금융거래자들과 지도급 인사들의 소득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전문가들이 그런 개혁을 권고하고 선출된 자들이 원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개 닭 보듯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의 “청화대”가 주둥아리로는 국민과 국익을 염불하면서도 잿밥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과 정확히 동일합니다. 제 놈들 끼리 “회전문 인사”(Nepotism)를 하는 작태 역시 잡것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학력의 세습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 역시 그렇습니다. 이런 경향은 의회의 계급적 구성비의 극단적 불균형 경향과 합류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은 겨우 1%에 불과한 반면에 80% 이상이 자유 전문직 종사자들, 고용주들, 다양한 직종의 고위 간부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형태를 띤 욕심(貪)-증오감(瞋)-어리석음(痴)으로 말미암아 “불 난 집”(火宅)인 프랑스는 1788년 혹은 1789년 대혁명의 직전처럼 사회적 모순이 확대-심화되고 있으면서도 “급격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공화주의적 도덕”의 회복이야말로 프랑스 정치의 주된 관심사(Enjeu)라고 조프렝은 진단합니다.
권력을 쥔 “불한당들”, 싸이코패스?
사르코지 정권의 신자유주의로 프랑스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한국은 “민간 파시스트 정권” 탓에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대학생들이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참다 참다 못해 사회 공론화를 하고자 평화적 거리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헌정 파괴적 개소리를 하는 나라. 이 나라의 TV 뉴스와 신문은 하루도 빠짐없이 “불한당들의 활동소식”으로 가득합니다.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사태는 물론이거니와 부산 저축은행의 온갖 범죄행위와 도둑고양이 새끼들 집합소 같은 금융감독 위원회 그리고 현대 자동차의 부품 하청업체 유성기업에 대한 “청화대 수괴”와 그 똘마니 새끼 지식 경제부 장관이라는 수컷들이 현실을 왜곡하는 “말로 짓는 악업”(口業)을 보면 이 잡것들이 “싸이코패스”(Psychopath:정신병질자)가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 “인간의 얼굴을 하였으되 심심산천(心心山天)이 짐승 보다 못한 수컷들”(암컷 정신병질자의 수는 수컷 보다 적음)의 두드러진 특이성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지난 글 “카이스트, 아인시타인의 심심산천을 본 받으라”에서 강조한 “감정이입”(Empathy) 능력의 결여입니다. 이것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줄 모르는데 태연자약하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조종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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