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각기 다른 날, “탈냉전시대”로 일컬어지는 기회의 창을 닫아버리는 두 가지 사건이 아시아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일본의회에서 통과된 신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 상원에서 인준된 “미-필리핀 기지방문협정(VFA)”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혀져야 한다.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은 ‘일본 내 긴급상황’으로 한정되었던 이전의 규정을 한 단계 끌어올려, 일본의 ‘주변지역’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자위대가 미국의 군사작전을 후방지원 할 수 있다는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주변”이라고 칭해진 단어에 명확하게 지정학적인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까닭에, 이 말은 매우불명료하고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한편 미군 및 필리핀 정부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로 마련된 미-필리핀 기지방문협정(VFA)은 필리핀에 대한 미군의 대규모 투입을 애매모호한 형태로 허용하고 있다. 7년 전만 하더라도 필리핀 상원은 미군의 기지임대 연장을 거부했고, 이러한 행동은 소련의 몰락이후 새로운 안보체계를 향한 지역의 열망을 표현하는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보여졌었다.
동아시아 해역을 미군의 보호령으로 재확인한 이 같은 역사적 결정들은 유럽에서 나토의 16개 회원국들이 UN의 승인 없이 미국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세르비아공습을 묵인하는 모습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사실, 현재 유럽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나 아시아가 보이고 있는 모습이나, 이런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이 평화를 보증할 수 있는 지역차원의 다자안보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에서, 이 같은 실패는 한때 다자안보기구로 각광받았던 OSCE가 보스니아에서는 나토의 평화유지(?)활동에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아시아차원에서 다자안보체제 구축의 역사적 실패는 ARF의 역할이 축소되었던 것으로 상징될 수 있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그들의 대화파트너들로 구성된 ARF는 동아시아의 안보 모색에 있어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ARF는 중국 및 미-일 동맹을 견제하는 제 3의 권력으로 각광받았으며,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행위자로 인식되었었다. 더운 중요하게 ARF는, 비록 미군기지의 철수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지역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그 주요한 과정으로서 무력의 사용 혹은 무력적 위협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다자적틀 안에서의 외교적 노력을 추구하기도 했었다. 몰론 ARF에도 결점은 많았다. 예컨대, ARF의 핵심멤버들인 아세안(ASEAN)나라들이 내적으로 겪고 있는 안보와 분쟁에 대해 논의하기를 꺼렸다는 점, 또한 ARF에 속한 여러 회원국들의 인권상황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한반도를 포함해 동북아시아의 분쟁을 전환하기 위한 뚜렷한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쌍무적 군사협정을 바탕으로 한 패권정치에 기반해 동아시아지역에 개입하고 있던 워싱턴이, ARF를 “말만 많고 하는 일은 없다(all talks and no teeth)”라고 격하했음에도 불구하고. ARF가 보인 이러한 시각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었다. 사실 클린턴 대통령은 ARF 혹은 다른 다자간 안보이니셔티브에 대해 그것은 “우리의 연맹과 군대주둔을 보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그것들(편집자 :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동맹과 미군의 주둔)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고해보건대, 아세안 “타이거(편집자 주: )”들의 경제적 번영이 ARF프로젝트에 그에 걸 맞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1997년에 아세안 경제가 몰락하자 ARF프로젝트의 신빙성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록 이 지역의 경제가 몰락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ARF 혹은 이와 다른 어떠한 다자안보체제라도 난항을 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편집자: 아시아에서의 다자안보체제구축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는) 중국 또한 나름의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군비삭감프로그램, 군사기지 철수, 집단안보 등을 수용하는 대신에, 중국은 가장 계산적인 방법의 현실주의적 정책에 따라 자국의 안보를 추구하는 듯 보였다. 중국이 취한 이 같은 확고한 현실주의적 정책은 동남아시아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이곳에서 베이징은 Spratly군도 분쟁에 대해 다자적 방법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아세안(ASEAN)의 노력을 무시하고, 분쟁지역중 하나인 Mischief Reef에 구조물 같은 것을 세우는 정책을 사용했다. Spratly 군도문제에 대해 중국이 보인 모습은 (분쟁이 일어났을 때 워싱턴이 필리핀 편에 설 것이라는 분명한 보증
이 없는 상태인데도) 결국 필리핀 상원이 미국과 상호기지방문협정을 체결하게끔 몰아가고 말았다.
권모술수적인 베이징의 현실주의적 정치는 동북아에서의 더욱 협력적인 안보체계의 출현을 가로막았다.
다자안보체제구축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사고되는 외국군의 철수문제를 중국이 지지했더라면,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잘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외국군의 철수를 지지하는 대신, 독립적으로 재무장하고 있는 일본의 증대된 위협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남한,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존속을 지지하고 말았다. 실제로, 중국군부의 영향력 있는 집단들에 있어, 미국과 함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의 의미는 일본에 대한 견제책으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결국 베이징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만 셈이 되었다. 미군주둔문제에 대해 중국이 동요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 펜타곤은 ,일본의 지배계급과 함께, 자위대의 후방지원 작전범위를 확장하고 지역적 “스타워즈” 프로그램의 공동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일본의 재무장을 더욱 강화시켰다. 전역미사일방어(TMD:Theater Missile Defense)는 이지스급 함선과 최첨단 레이더 기술, 그리고 여러 수준의 발사기지들로 구성되는 치밀한 네트워크로서, 그것의 목적은 미국의 동북아 동맹국들과 태평양지역에 “미사일 우산”을 건설하려는 계획이다. 만약 그것이 진행된다면, 페르시아 걸프전에 사용된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조잡한 장난감처럼 느껴질 만큼 강력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게다가 TMD구상의 주요한 타겟은 (북한이 아니라) 사실 중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이러한 오판만이 집단적 안보체제의 구축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 안보체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입지를 낮
추는데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태평양에서 신빙성 있는 적을 발견해내고 이에 대항함으로써, 유일 패권국가로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고, 소련이 몰락한 이후에는 중국을 새로운 전략적 경쟁자로 설정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물론, 미국이 더욱 뚜렷하게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적”을 필요로 했을 때, 특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진전되고 클린턴의 “건설적 동반자 정책”이 진행되는 듯 보이는 시점에, 북한은 그러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한가지 사례를 꼽아보자면, 작년에 평양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 미사일이 일본상공을 지나가자, 펜타곤은 이런 상황에 편승해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의 통과와 TMD 공동개발을 일본에게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펜타곤의 입장에서 평양의 위협은 워싱턴과 베이징사이의 전략적 대립에 비교해보았을 때 하찮은 것이다. 펜타곤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이후에도 이 지역에 미군이 주둔해야 하며 또 주둔할 것을 시사하는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해왔다.
분명 미군은 이차대전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워싱턴의 정책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지적했듯이,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있어 핵심적인 전제는 지역적 차원, 더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의 출현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 따라, 펜타곤과 민주, 공화 양당의 핵심부는 부시와 클린턴이 주창한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혹은 “협력정책”에 따른 적이 없다. 다만 부시나 클린턴의 정책은 미국 재계에서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너의 전략적 라이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너는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 같은 견제론자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협력정책”의 전제와 배치되며, 지난 10년간 대 중국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한번도 일치된 적이 없는 워싱턴의 모습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대 중국정책의 기본적인 핵심은 “협력”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도, 실제로 펜타곤을 움직였던 대 중국전략은 나이보고서(1995)에 기초하고 있었다. 나이 보고서는 냉전직후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지던 미군감축의 흐름을 공식적으로 반전시켰으며, 미국으로 하여금 동북아에 대한 군사적 접근권을 강화하고 그것을 추구하게끔 인도했다. 그 결과 미일안보조약과 같은 문서에 의해 옹호되는 군사행동범위의 확장 혹은 불안정했던 필리핀과의 관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조처들이 취해진 것이다.
공화당 보수파들과 함께, 펜타곤은 클린턴의 협력정책에 대해 중심적인 비판자였다 ; 그들은 베이징이 파키스탄이나 그 외의 나라들에 대해 극비로 핵 제조기술을 판매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고, 민주당 선거기금에 중국정부가 기부금을 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로스 알라모 기지에서 중국이 스파이활동을 전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오산과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펜타곤의 독단만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미국의 일방주의야말로 아시아의 지도자들과 엘리트들 이 새로운 안보 레짐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어떤 분석가는 이 지역에서의 미군의 존재야말로 아시아 나라들 사이의 보다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핵심적인 장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점은 물론 사실이 지만, 또한, 50년이 넘게 주둔해온 미군이라는 존재가 아시아의 지도자들과 엘리트들로 하여금, 이차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불신, 의혹, 증오와 같은 유산을 극복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을 유보하게끔 만들
었다는 점 또한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
여기에 유럽과의 공통성이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만약 미국이 유럽의 안보체제 안에서 계속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 유럽인들의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독일이 다시 증대된 경제력을 강력한 군사력으로 변형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유럽인들의 두려움, 혹은 독일이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에는 지난 50년이 너무 짧다라는 걱정 같은… 만약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존재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부분적으로 그것의 이유는 일본의 주변국들이 일본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주변환경이 허락할 경우 일본은 다시 군사적 팽창
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아시아인들의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인들의 이 같은 우려는 일본의 지배층이 보이고 있는 모습, 다시 말해 이차대전 당시 일본이 보였던 무자비한 행위에 대해 일본의 지배층이 사회적 기억상실증을 유포하고 있으며, 일본이 저지른 죄와 책임에 대해서는 그것의 청산을 유보하려는 모습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특별하게 취급되고 있는 “독일문제” 또는 “일본문제”를 훨씬 뛰어넘는데, 그것은 유럽과 아시아의 지배층과 중간계급에 널리 퍼져있는 생각으로, (만약 미국의 도움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평화를 건설하려고 했을 때 어쩌면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상황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평화를 보증(?)해줄 수 있는 “온화한” 패권국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은, 총과 전함이라기보다는 바로 이렇게 널리 퍼져있는 자기불신과 의존성이다. 우리들 내부에 있는 이러한 자신감의 상실이 결국에는 탈냉전시대에 걸 맞는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 결정적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기대 지역적, 세계적 평화를 유지한다는 발상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더 큰 동요와 갈등으로 이어지는 길일뿐이다. 왜냐하면, 절대권력이라는 것은 분명부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외교, 그리고 무기감축에 기반 해 대안적, 다자간 안보체제로 이동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아시아인들이 금세기 초부터 이어 내려오던 해결되지 않은 분쟁, 상호불신, 서로에 대한 두려움들을 진실한 대화, 상호이해, 집단적 행동 등의 방법을 통해 화해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희망은 공수표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한다면, 나토와 같은 다자간 협약 또는 미일 동맹과 같은 쌍무적 방위협약으로 가장한 미국의 일방주의는 계속해서 현재를 지배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한다면,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과 같은 이데올로기들이 우리의 면전에 대고, 계속해서 이런 거만한 말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미국자체가 세계이기 때문에 미국은 없어서는 안된다” “미국이야말로 인자한 강대국이며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하고 있을 뿐…” 이라고…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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