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선거 성공 거둔 극좌파
주간녹색좌파 7/7
이글은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niste Rev-olutionaire; LCR, 이하 혁공동) 몽뺄리에 성원인 스타니슬라프 테미주크가 쓴 글이다.
프랑스의 극좌파인 노동자투쟁(Lutte Ouvriere; LO)-혁공동 공동후보단이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다섯 명의 유럽의회 의원 당선으로 상징화된 하나의 이정표였다. 이는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가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중요하고 안정적인 정치세력으로서 공고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몇해 동안의 완만한 불만(la lente impatience; 수천의 남녀들이 지속적이고 헌신적으로 전투적 활동
을 벌인 것)은 결국 거의 백만의 프랑스 시민들로 하여금 명확히 반자본주의적이고 혁명적인 공산주의 정치강령에 표를 던지게끔 확신시켰다.
투표가 의무적이지 않은 프랑스에서 53%의 기권율은 유럽 전역의 보편적인 흐름을 반영하였다. 유럽선거는 전통적으로 그다지 대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르조아지와 테크노크라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거리낌없이 하기 위해 유럽선거의 중요
성을 최소화시켜 왔다.
투표에 참여한 천 오백만 정도의 프랑스인들 중 백만 명 이상이 백지표를 던졌다. 이러한 기권과 백지투표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전통적 정치정당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결과였다.
합리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하지 못한 우파와 극우파의 실패는 결국 빈약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사회당은 (우세를 유지하긴 했지만)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했었고 이제는 프랑스를 통치하는 연합정부에서 약화된 지위와 싸워야만 한다.
녹색당은 상당한 진보를 이루며 이전의 공석에서 아홉 석을 획득했지만 이제는 극도로 야심적인 대중매체 스타인 공동지도자 다니엘 꽁방디와 동거해야만 한다.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전쟁을 지지했던 이 자유주의자는 자신이 사회민주주의 여당보다 우파에 더 가깝다고 가차없이 선언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가 깨끗하고 “생태적으로 올바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최대의 패배자는 공산당이었다. 공산당은 동일한 이슈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 공산주의, 비공산주의 후보로 이루어진, 이해하기 힘든 후보단을 내세웠었다. 공산당 서기장 로베르 위(Robert Hue)는 6.78%라는 역사상 최저의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재앙적인 “개방(open to anybody)” 전략을 여전히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노동자투쟁-혁공동 후보단(명확히 혁명적, 트로츠키주의적으로 규정된 선거연합)이 획득한 5.2%는 놀라운 업적이다. 공산주의, 계급투쟁, 맑스주의, 혁명 등의 종언을 떠들어댄 예언자들은 뺨을 맞았다. 개인주의가 유일한 진리이고 디즈니랜드가 가능한 유일한 유토피아라고 선언하는 탈정치적, 반정치적 분견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6개월 간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 노동자투쟁과 혁공동은, 공동으로 혹은 독자적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200여 회의 대중집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 참여한 3만 5천 명이라는 수는 다른 어떤 정당도 능가하는 것이었다. 빠리에서 열린 선거운동 마감 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6천 명이었다.
혁공동과 노동자투쟁의 지도자 알랭 크리빈(Alain Krivine)과 아를레뜨 라귀예르(Arlette Larguiller)가 참여한 몽뻴리에의 노동자투쟁-혁공동 공동집회에 모인 600여명 중 절반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님므의 경우에는 500여 명의 청중 중 60%가 그러했다. 이러한 모습은 도시 지역이건 농촌 지역이건간에 전국적으로 보여졌다. 이것은 선거 결과에 관계 없이 중요한 정치적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자투쟁-혁공동 후보단의 전국 득표율은 5.2%였지만 9개 도(道)와 31개 현(縣)에서는 6% 이상이었고 북부 지역인 빠드깔레(Pas-de-Calais)도의 경우 7.22%에 이르렀다. 전통적으로 공산당이 우세한 빠리 교외 지역들을 보면, 센생드니 7.41%, 생드니 9.73%, 몽트뢰이유 9.39%, 오베르비예르 9.69% 등이었다.
노동자투쟁-혁공동 후보단은 5개 도, 21개 현, 그리고 빠리, 리용, 릴르, 스트라스부르, 보르도, 뚤루즈, 몽뻴리에, 렌느, 루비오, 됭께르끄, 루엥, 메츠, 베상꽁, 디종, 끌레르몽페랑 등 50여개 대도시에서 공산당을 앞질렀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랑생뜨, 게스냉 등의 소도시에서는 각각 11.4%와 14%를 얻기도 하였다. 이는 공산당 당원과 지지자의 상당수가 노동자투쟁-혁공동에 표를 던졌음을 보여준다.
점진적인 저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삶의 질과 권리를 보유한 한 나라에서 거의 백만 명의 사람이 급진적인 사회주의 프로젝트와 강령, 진정으로 민주적인 유럽, 그리고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프랑스에 표를 던졌다.
다섯 명의 혁명적 의원들(한 명의 남성과 네 명의 여성)은 이제 유럽의회에 자리를 잡고 다른 혁명적 의원들과 강력한 유럽의회 그룹을 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공동활동을 통해 힘을 얻은 혁공동과 노동자투쟁은 2001년의 지방자치 선거를 공동으로 준비하기로 결의했다. 두 그룹은 새롭고 폭넓은 기반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 혁명주의 운동을 만들어내고 이를 단결시키고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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