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의회문을 나서면서
토니 벤(체스터필드시 하원의원) 가디언 6/28
국회에서 근 5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나는 지난 시기 동안 나를 뽑아준 사람들을 대표하고 “반역자”나 “좌익 노병”이라고 평해지는 끊임없는 위험(이는 내가 행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색하게 만든다) 없이 나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성찰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과 자유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당선된 1997년, 나는 일정한 정책을 위해 활동할 것이고 이러한 방향을 지속시키기 위해 자유롭고 싶다고 선거구민들에게 분명하게 맹세한 바 있다.
한 예로, 나는 국민보험에 기반한 복지국가를 유지시키고 수입조사(means test; 생활보호 대상자에 대한 자산 및 소득조사-옮긴이)를 재도입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고자 헌신하였다.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소득세의 인상을 주장했으며 민영화에 반대하였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이 일원이었던 노동당 내각에 의해 도입되고 새처 여사에 의해 폐지된 소득연동제(link with earnings; 소득과 사회복지연금 과표를 연결시키는 제도-옮긴이)의 복원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연금생활자들에게 약속하기도 하였다.
모든 체스터필드 주민은 내가 빼앗긴 노동조합 권리의 회복을 지지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나는 현재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정 아래서 우리가 한 약속들이 영국에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점을 항상 알고 있었으며, 나는 안보리의 정식승인이 없는 전쟁을 금지하는 유엔 헌장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이러한 점들은 여전히 나의 신념이며, 야당일 때 말하는 것과 정권을 잡을 때 현실화되는 것이 동일하기를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럽에 관해서는 나는 이를 민주적인 문제로 보지 민족주의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프랑크푸르트의 중앙은행에 권력을 준다면, 이를 통제하는 사람들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민주적 권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피상적인 방식으로 보도되기 때문에 이러한 나의 견해를 당장 의회 내부로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어렵고 도전적이며 흥미롭다 – 그리고 정치적 담론의 차원에서는 피상적이고 독설적이며 인신공격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삶의 동기와 노동당, 노동운동,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지속적이고 깊은 헌신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나는 1935년 10살의 나이로 전단을 배포하면서 운동을 시작했고 1945년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며, 1942년에 노동당에 입당하여 1950년에는 국회의원으로, 1959년에는 전국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나는 11년 동안 노동당 각료를 지냈고 1971년에는 당 의장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이(차기선거 불출마 선언-옮긴이)를 노동당에 대한 거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몇몇 이들이 좌절 속에서 당을 떠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들 모두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다.
새로운 세기 앞에 놓여진 거대한 문제들 속에서,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는 단결된 노동당만이 1930년대 독일에서 목도한 강경우파의 복귀를 저지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분명, 개인적으로 볼 때, 마지막으로 의회문을 나서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나는 내 생의 남은 25년 동안 의회가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메시지를 튼튼히 하는 데 더욱 많은 공헌을 할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 의회는 언제나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최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는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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