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을 잊지 말자
권리는 꿈꾸는 자의 것, ‘젊은 이웃’, 신성호
재외공관 100미터 반경 안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다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집시법 때문에 주변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집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곳은 초국적기업 볼보의 한국지사와 국방부장관, 외통부장관 공관 앞이었다.
집회는 버마의 대표적 양심수인 밍꼬나잉과 아웅산 수지의 사진을 들고, 헌화식과 발언, 묵상 등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용산역에서 시민 서명운동이 계속되었다.
1962년 7월 7일 버마 랭군대학교에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지, 대학을 폐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후 5시 30분 군용차 2대가 도착했다. 이렇게 난입한 군인들은 최신형 소총 M16을 학생들을 향해 실험했다. 평화적인 집회를 하던 학생들을 기숙사 방까지 쫓아가서 학살했다. 총에 맞아 부상당한 한 학생이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피로 학교건물 벽에 7월 7일을 잊지말자 라고 쓰고는 실신했다.
부상자들을 비롯한 학생들이 피신한 학생회관, 군부는 이곳을 포위하고 폭발물을 설치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버마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을 폭파하여, 1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폭사했다.
어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버마 군부독재는 현재까지도 대학교육을 정상화 하지 않고 있다.
버마 민중들이 당하고 있는 폭압의 현실은 이루 다 말 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는 아직까지도 구금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리의 군부독재 시절을 생각해본다. 우리의 현실을 누가 알고 있었으며, 누가 함께 했었던가.
버마 민주화에 대해서 김대중 정권은 아태재단 등을 통해 관심을 표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버마 학생민주전선 활동가를 초청해 놓고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홍보용 이슈의 하나로만 이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2000여명이 넘는 한국의 버어마 사람들은 불법체류자이다. 이들이 불법체류자인 이유는 버마 군사독재가 철저한 감시와 통제속에 외국에 나가는 것을 막고 여권과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태국이나 인도로 국경을 넘어 탈출한 난민이거나 망명자이다.
이들은 한국정부나 아태재단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한국사회의 진보단체와 사람들과 함께 하길 바라고 있다.
집회 중간에, 이제 막 인권과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혼자 버마 대사관 앞에서 헤매고 있다고, 이 친구는 서명운동 장소인 용산역으로 먼저 가 있었고 뙤약볕 밑에서 열심히 유인물을 나눠주고 선전을 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덥냐고 물어보는 저 열대지방 버마 사람들과 왜 함께 할까?
뒤풀이 자리에서 이 친구는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들과 함께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다.
올림픽 열기로 시끄럽던 1988년 8월 8일 버마는 우리의 광주항쟁과 같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1999년 9월 9일이 있다.
7월 7일을 잊지 않고, 8월 8일에 다시 한번 전세계에서 버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함께해야 한다. 11년 1개월 1일이 지난 99년 9월 9일 전세계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한 열기를 모아내야 한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버마 군부독재와 같은 반 인권 반 민주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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