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선정주의와 케네디의 추락
제마틴 맥클러플린.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7/19
마사스빈야드 해안에서 경비행기가 추락, 암살당한 대통령의 아들인 존 케네디 주니어와 그의 아내, 처형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는 슬픈 소식이었다. 케네디가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간에 폭력적인 죽음으로 많은 가족을 잃은 한 가정에 이러한 개인적 불행이 또 닥치리라고 바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 이번 재앙을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아직도 미국 대중매체의 작동방식에 놀라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토요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케네디의 비행기가 실종되었다고 발표했고 이후 정규프로그램을 미루고 추락 사건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 롱아일랜드해협의 항공사진과 성과없는 수색작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외에는 보여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언론”보도”의 대부분은 케네디가에 관한 추억에 잠기는 정치가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로 채워졌다.
텔레비전이 앞장서는 동안 토요일자 신문들은 전쟁 발발이나 정치위기에 관해 보도라도 하는 듯이 면마다 이 뉴스를 다루었다. 1997년 자동차사고로 영국의 황태자비가 죽자 앞다퉈 특집으로 다룬 것을 흉내내듯이, 언론은 케네디의 실종과 사망추정을 완전히 “다이애나” 사건처럼 만들려는 명백하고도 의식적인 노력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가장 이색적이면서 역겨운 사례는 최초의 달착륙에나 적합할 3인치 크기의 진한 대문자로 “카멜롯왕자의 실종”이라는 6단짜리 전면 헤드라인을 달았던 일요일자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앤뉴스(Detroit Free Press and News)]였을 것이다.
대중매체들은 조작된 이미지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를 벌이고 있다. 논평가들은 마치 사회가 가슴아픈 죽음을 견뎌낸 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케네디 주니어의 명백한 죽음에 관해 말했다. 그의 경력과 성취에 대해 할 말이 적을수록 더 많은 방송시간이 그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들의 격동의 역사를 열거하는 데 할애되었다.
이 사건에 관한 대중매체의 보도를 기념비적인 인물의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가 암살당한 전대통령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케네디 주니어가 38년
동안 이룩한 것 중 어느 것도 특별한 관심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분별력보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한 상류계급의 개인이라는 또다른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마감된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뉴욕시 사법시험을 세 번만에 통과한 평범한 학생이었던 케네디 주니어는 뉴욕에서 지역검사보로 몇 년을 보낸 후 법률이나 정치직을 포기하고 자신이 잘 아는 유명인사와 정계를 다루는 잡지인 [조지(George)]의 발행인이 되었다.
케네디 주니어는 비행교육을 받고 지난해 비행면허를 획득했다. 그는 계기비행 자격이 아직 없음에도 300시간을 비행했고 따라서 기상조건이 좋은 상황에서만 비행하도록 제한받았다. 금요일 밤 옅은 안개와 저시도(低視度)라는 조건에서 뉴저지에서 마사스빈야드와 하이아니스포트로 비행하겠다는 그의 계획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모함 아니면 그릇된 판단이라고 조언하였고 결국 그와 그의 동행자들은 목숨을 대가로 치뤘다.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의 죽음은 1960년대의 정치적 격동 속에서 이루어진 암살의 결과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계속된 케네디가의 불행(채퍼퀴 딕섬 자동차 사고, 약물 과용이나 스키장 사고로 인한 죽음, 강간이나 간통과 관련된 스캔들)은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이들은 부와 유명세에 쉽게 접근하면 고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인물들에 가까웠다.
이번 케네디 주니어 사건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미국의 지배 엘리트와 노동대중 사이의 사회적 격차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이다. 수색 및 구조작업과 추락 원인조사에는 거대한 자원이 동원되었는데 이는 평범한 시민이 해상에서 실종될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이 모든 언론의 선정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여론을 크게 움직였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이보다 훨씬 더 선전된 다이애나의 죽음도 영국 대중의 의식 속에서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2년 후인 지금 그녀의 기억으로 여행객을 유도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만큼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언론은 현실과 조작된 사건을 구별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대중을 보도의 홍수에 빠뜨리고 놀라게 하는 언론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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