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정치
시류에 저항하여(ATC), 7·8월호, 말릭 미아
흑인들이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경험하게 되는 일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차
를 몰고 집에 가거나 직장으로 가는 도중에 아무런 이유 없이 경찰로부터 차를 세우라는 명
령을 받는 일이 그것이다. 당신은 아무 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차안에서 기다린다(당신은 절
대 먼저 내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온몸에 긴장이 감돈다. 당신은 손을 보여지게 내놓
은 채 억지웃음조차 짓지 못한다. 단지 교통 위반 딱지를 떼는 걸까? 아니면 더 나쁜 무엇
일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왜 고혈압에 시달리는지 이제는 알게될 것이다.)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1970년 어느 늦은 밤에 고향인 디트로이트 웨인 주립대학
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나는 시의 북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는데, 경찰차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멈춰 세
웠다. 나는 곧 인종차별로 악명높은 디트로이트 경찰들로 인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행스
럽게도 경찰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나와 자동차를 샅샅히 조사했다. 나는 마치 범죄자
처럼 심문을 받았지만 그들을 자극시킬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편이 낫다
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대해 가장 기억나는 것은 내가 그들이 떠난 후에 다시 살아난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신고를 했을까? 물론 하지 않았다. 내가 흑인이자 젊은 남성으로 배
운 한 가지는 늘 일어나는 인종차별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싸워야 한
다.
미국적인 극히 미국적인
사실 인종차별은 극히 미국적인 것이다. 시민권 운동으로 법적 인종차별이 종식되기 전까
지 정부와 고용주, 그리고 경찰들은 흑인들을 농락하고 잔혹하게 다뤄도 죄가 되지 않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고용주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취업과 직업훈련을 거부하면서도 정부
나 법원의 제재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않았다. 교외에 사는 백인 경찰들은 노상에
서건 공원에서건, 그들이 마음먹기만 하면 흑인들, 특히 흑인 청년들에게 언제나 테러를
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경찰(물론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찰을 포함
해)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백인과 흑인에 대한 경찰의 인식 차이
는 흑인이 이류 시민이나 그 이하로 다뤄지고 있다는 확연한 근거이다.
“흑인이 운전하기(Driving While Black, DWB)”는 그러한 체제가 어떻게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급소다. 중산층 흑인들과 라틴계 사람들은 자신들도 예외가 아니
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 또한 표적이다. 포드(Ford)를 타는 가난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
닌 것이다. 시민권 운동 기간 중에 일어났던 것처럼 중산층 흑인들도 분노하고 있다. 그들
은 소송을 거는 것뿐만 아니라 경찰의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항의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항의(이 사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로 인해 언론 매체 및 클린턴 행정부는 물론
이거니와 주와 시정부까지 이 사안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ACLU(미국시민자유연합, 이하 시민연합)에 따르면 수십 개의 주에서 인종차별 관련 자료
수집법이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6월 9일 클린턴은 연방법 시행기관들에게 행정명령을
내려 흑인들의 생계활동에 대한 인구통계자료를 수집하라고 요구했다.
법제화 및 인종차별 종식을 위한 로비와 소송은 최근까지도 이렇다할 결과를 얻지 못했
다. 오히려 변화는 경찰 책임을 요구하는 대중적 항의들이 가져왔다. 가장 의미 있는 항의
는 지난해 뉴욕시에서 일어났다.
경찰 폭력에 대항한 시위
비무장한 서부아프리카 이민자, 아마두 디알로가 살해당한 후, 사법 정의를 요구하는 시
위가 벌어졌고 이는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런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은 디알
로에게 41발의 총을 쏜 뉴욕 경찰들은 그가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시민권과
시민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경찰 본부에서 경찰을 비난하며 연일 폭력 시위를 벌였다.
디알로 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격분은 지난 해 경찰 폭력 사건에 대한 분노가 일부분 작용
한 것인데, 아이티 흑인 이민자인 애브너 루이마가 브루클린 경찰서에서 폭력과 고문을 당
했던 것이다. 그 사건은 마침내 뉴욕의 연방 배심원단에까지 올라 갔으며 경찰들이 죄를 시
인한 후 구타에 관여한 한 경찰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 두가지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은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그리고 황인종), 특히 남성들
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경찰이 인종차별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
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민권과 시민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인종차별을 입증
하고 있는 통계 자료를 요구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윌슨 전 공화당 주지사가 긍정적차별
정책(affirmative action programs : 소수민족 차별 철폐, 여성 고용을 추진하는 계획-역자
주)이 끝나자 제일 먼저 하나의 결정을 내렸는데(이는 데이비스 민주당 주지사 후임으로 집
권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인종 자료에 관한 모든 수집(소수자 차별, 그리고
공직 고용, 계약, 교육 등 모든 기회에 있어서 백인 우선주의의 사실들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중지시키는 것이었다.
흑인 남성이 대학보다 감옥에 더 많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백인들이 보통 흑인들을
볼 때 죄를 지을 소지가 있는 사람들로 본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경찰과 정부의 행위는
유색 인종이 정말로 범죄를 저지를 경향이 있으며 신뢰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주입
시킨다.
디알로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는 경찰이 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로 들어오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4명의 경찰은 단지 그가 흑인 남성이라는 이유
로 용의자로 지목하고 일단 총을 쏴 죽였다.
루이마도 흑인 남성이고 이민자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했다. 경찰
들은 폭행을 가하면서 그의 인종에 대해 비아냥거렸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
야 피해자가 없어질까?
제도화된 인종차별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은 뉴욕경찰이나 미연방수사국(FBI), 혹은 주(州) 경찰만이 아니다.
세관 당국이 유색인종을 선별해 따지듯 캐물으며 굴욕함을 주는 행위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
다. 이슬람식 이름을 가졌거나 아라비아인처럼 보여도 밀폐 공간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그들 스스로도 “일을 저지를 만한” 어떤 유형, 즉 대부분은 유색인종에 초점을 두어 사람들
을 선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 밖에 누가 마약 소지자거나 테러리스트이겠느
냐는 것이다.
뉴저지 고속도로에 있는 주경찰이 단지 피부색만으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흑인들과 라틴
계 사람들을 멈춰 세우는 것 또한 일상적인 일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제
지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내가 추측하기로 이 곳 경찰들은 뉴저지 흑인들이 인
종차별적 가혹행위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뉴욕 사람들보다 자신들을 더 진보적으로 볼 것
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흑인 월간 잡지「일어나라(Emerge)」6월 호에 실린 DWB에 대한 특집 기사에서 마리아 데
이비스 기자의 기사는 인종 차별이 미국 전역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널리 퍼져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인종차별을 종식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민연합은 개인이 경험한 참
혹했던 사건과 정보들을 데이비스에게 제공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남미, 라틴, 히스
패닉계 운전자들은 수십년 동안 분명한 이유도 없이 경찰로부터 제지를 당하면서 살고 있
다. 이제 그런 일들은 최소한 전국의 일부 지방에서만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불만들이 심각
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 도전들이 DWB 문제 뿐만이 아니라 치안과 형법 체제에 녹아있는
고질적인 편견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통제수단으로서의 인종차별
물론 문제의 근원은 형법 체제에 있다. 이 체제는 우리를 보호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을 일차적인 임무로 삼지 않는다. 그것의 목적은 통제를 유지하
기 위해 주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통제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무기가 된
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정의(사형제도를 유지하고 다양한 흑인 마약사범들에게 백인보다
심한 선고를 내리는 것)는 사회의 모든 계층의 백인들에게 흑인과 다른 소수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경향이 다분하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우리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하게 다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백인들은 인종차별이나 DWB라는 단어를 들
을 때 과장은 되었겠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형법체제(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한 중요한 수단)는 물론 계급에 근거하고 있다. 이 체
제로 인해 중산층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공간에서 살 수 있는 민주적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대부분의 중산층 흑인들은 경찰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노동
자 계급과 가난한 흑인들을 자신들의 이웃인 중산층 백인들만큼이나 두려워한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내에서의 계급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종차
별주의적인 경찰관이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정지시킬 때는 수
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피부색을 본다. 심지어 흑인이나 황인종 경찰도 제복을 벗으면 이
인종차별주의와 만나게 된다.
“흑인들을 멈춰 세워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 흑인 경찰 중 90%가 검문 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플로리다 대이드 카운티에서 근 30년간 경찰 생활을 해온 에론 캠벨
주니어 총경은 말했다. 1997년 어느 날 밤 노스플로리다에서 건축 중이었던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던 날 그는 차 밖으로 끌어내졌다.
“캠벨이 인종차별적 사기극이라 부르며 폭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며 비디오테입
에 녹화된 이 사건은 오렌지 카운티 경찰관과의 난투로 끝이 났다. 캠벨은 최루가스와 스프
레이를 맞고 체포되었다.”[출처 : 시민연합]
1998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다니는 넬슨 워커라는 라이베리아인 학생이 메릴랜드 I-95
를 따라 운전을 하던 중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며 주 경찰로부터 정지를 당했다. 경찰은
두 시간 동안 그와 두명의 동승객들을 구금했고 불법 마약이나 무기 혹은 밀수품을 찾아 차
를 샅샅이 뒤졌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그들은 차를 해체시키기 시작했고 문과 의자의 패널 부품과 채
광창을 뜯어냈다. 역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자 경찰관은 워커에게 드라이버를 건네면서
“이게 필요할거야”라고 말했다.(1998년 6월 11일 뉴스엔옵저버, 노스캐롤라이나주 랠리, 출
처: 시민연합)
자니 개미지는 “운”이 없었다. 그는 1995년 10월 12일 피츠버그 교외에 있는 브렌트우드
에서 친척의 재규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검문을 당했다. 다섯 명의 경찰관은 개미지가
세 번이나 신호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그 중 한 명의 경찰이 개미지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했고 그가 “무기”를 내밀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휴대폰이었다. 경찰관은 그의 손에서 그것을 쳐낸 다음 손전등과 경찰봉, 그리고
가죽채찍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개미지는 수갑에 채워
져 무릎관절이 부러진 채 사망했다. (1996년 1월 15일, 피플스매거진, 출처 : 시민연합)
[비록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배심원이 다섯 명 모두에게 일급 살인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모두 백인이었던 배심원들은 다섯 명 중 한 명에게 미필적고의로 무죄 방면을 선
고했고 다른 두 명에 대해서는 배심원의 불일치로 미결정 심리가 선고되었다.]
시민연합 워싱턴 지부 대표 로라 머피는 클린턴이 재심리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후에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단지 통계를 수집하라는 명령일 뿐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명령은
아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고싶지는 않다. 이것은 중요한 첫 걸음이다.”
장기적인 과점에서 결정적인 것은 대통령, 주지사 혹은 시장이 누구든지 간에 대책을 세
우도록 대중적인 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뉴욕에서 연일 벌어진 시위는 시장과 경찰서장에게
경찰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적당한 통제책을 취하도록 하는 압력이 되었다.
1960년대 시민권 운동이 승리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의 타도 없이
는 결코 전복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중 행동이 낡은 인종차별을 종식시켰고 유색인
종의 처우에 있어 진정한 변화의 문이 열렸다. 이 변화들의 직접적인 결과는 중산층 흑인들
이 증가하고, 흑인들이 좀더 나은 임금과 기술을 가지고 직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체제의 급진적인 변화가 아직 가능하지 않지만 긍정적인 개혁을 쟁취할 수는 있다. 인종
차별은 뉴욕에서 보여진 것처럼 대중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에 의해 종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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