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베네수엘라에는 헌법도 없고 대법원도 없으며 의회도 없다”고 제헌의회의 야당 의원인 호르헤 올라비라아는 말한다.

지난달 출범한 베네수엘라 제헌의회는 현재 입법, 사법 비상사태를 선포, 기존 의회의 권한과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부정 부패 등을 이유로 판사의 절반 가량을 해임하거나 정직시킬 수 있는 권한을 장악, 총체적 국정개혁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배후에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강력한 지휘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수 십년간 베네수엘라를 이끌어온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의 민주행동당(AD)과 중도우파적 기독민주주의당(COPEI) 양당체제는 세계 3대 산유국으로서 과거 남미 최대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의 족벌주의적 병폐와 거대한 제도적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54년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야구선수를 거쳐 직업군인이 된 차베스가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은 1992년이다. 당시 그는 공군제독의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 2년간 복역하게 된다.

당시 민주행동당의 대통령 카를로스 페레즈는 차베스의 석방을 약속하지만 오히려 본인은 부패상황과 결부되어 1993년 직위파면된다.

1996년 페레즈 정권에 이은 칼데라 정부의 개혁계획은 좌초하게 되는데, 그가 취한 경제의 자유화 조처는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법제개혁에 지나지 않았고 국가재정을 확보하려는 사유화 조처의 파도는 사회보장과 보건체계의 축소에 불과했다. 여기에 1998년 국제석유가력의 하락은 정부를 바싹 조이고 있었다. 작년 대통령 선거전 통계에 의하면 400만 아동들이 영양실조 상황에 처했고, 이른바 중산층의 구매력은 1978년에 비해 30% 줄었다고 한다. 정부관료의 부패와 뇌물수수는 일상적 일이 되었고, 국민의 70-80%는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석방후 카리스마적 성격과 웅변술에 유창한 차베스는 이러한 국가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한 부패척결운동인 ‘제 5공화국’ 운동을 벌이며 다시 정치무대에 복귀, 좌익민족주의적 세력(사회주의자, 공산당을 포함하고 카델라 정권에서 해임된 전직 5명의 장관을 연합함)들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한다. 차베스는 드디어 작년 12월 선거에서 57%의 지지로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게 된다. [임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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