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추진위원회가 8월29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치렀다.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결정했고 상임대표서리로 권영길씨를 선출했다. 결의문을 통해 △실업문제 해결 등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 20% 확보 △재벌해체 특별법 제정 △군축 및 군사비 삭감 투쟁 △그린벨트 해제 저지투쟁 등을 다짐했다. 추진위원회는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전환해 연말까지 정식 창당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실험이 본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한국형 혼돈의 정치’에 새 바람 기대

진보정당의 출현은 정치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지역적 기반의 차이말고는 정체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여야 정당들이 뒤얽힌 ‘한국형 혼돈의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 일색의 정치구조를 ‘진보 대 보수’의 경쟁구도로 바꾸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실험은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무수히 시도됐고,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보다는 ‘해봤자 되겠느냐’하는 회의론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추진은 두 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첫째는 왜 지금 다시 진보정당이며, 과거의 진보정당과는 어떻게 다른가. 둘째로 이번 진보정당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의 천영세 사무총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IMF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이었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바람 속에서 실직자가 쏟아졌고,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당연한 결과로 보수 기반의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극에 이르렀다. 이제는 노동자와 민중이 자신들을 대변할 정당을 스스로 만들 때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설득력이 있는 편이다. 집권당인 국민회의조차 경제위기가 초래한 사회 해체에 주목하고 ‘중산층과 서민 중심 노선’을 강조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주·객관적 여건에서도 88년 13대 총선 때의 민중의 당(대표 정태윤), 92년 14대 총선 때의 민중당(이우재 김낙중 백기완 공동대표)과 다르다.

민중의 당과 민중당은 민중없는 민중정당이었다. 민중의 당은 좀더 급진적 성향의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출신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서둘러 구성했다. 민중당도 비슷한 인사들로 51개 지구당을 구성했으나 국회의원 당선자를 1명도 못 내고 해산했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과 조직적으로 연결을 갖고 있다. 이갑용 위원장이 민주노총의 결의에 따라 당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으로 들어갔고, 창당발기인(전체 6215명)으로도 노조간부 3213명이 1인당 3만원씩의 기금을 내고 참여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97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내세웠던 진보적 이념의 정치단체 ‘국민승리21’이 양대 기반을 이루고 있다.

“계급정당이냐 아니냐” 논란 벌여

노동관계법이 개정된 것도 진보정당 등장에 유리한 여건이다. 98년 6·4 지방선거에서 울산의 현대그룹 관련 노조들은 국민승리21이 추천한 무소속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북구·동구 두곳의 구청장 당선자를 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은 “노조 정치활동 금지조항 폐지는 진보정당 건설에 걸림돌이 됐던 법적 제약을 해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기성 정당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과거의 진보정당보다는 재정과 조직 형편이 한결 낫다. 8월29일의 창당대회를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국제회의장을 빌려 비교적 멋들어지게 치른 것도 그만한 능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정당은 단순히 돈과 사람이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선거에서 표를 모으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즉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순탄한 편이 못 된다.

첫 번째로, 민주노동당은 참여세력의 면면에서 노동조합 간부 내지 노동운동 출신 인텔리들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런 까닭에 민주노동당은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노동자 중심을 분명히 하는 계급정당(당명을 노동당류로 하자)이냐, 아니면 여러 계층이 연합하는 정당을 표방해 폭을 넓힐 것이냐(당명을 진보당류, 사회당류로 하자)를 놓고 격렬한 내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29일의 발기인대회에서 9개의 후보를 놓고 4차례의 투표를 벌인 끝에 최종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결정했다(표3).

그러나 국민승리21이 지난 3월 실시한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의 정서와 민주노동당 추진세력의 인식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표1,2) 이 조사에서는 ‘진보정당을 만든다면 어떤 세력이 주도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68.6%가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단체 세력’을 꼽은 반면에, 11.8%만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주기반으로 하는 노동계 세력’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같은 시민단체들이 어느덧 기성 정치의 대안이 될 만한 존재로 떠오른 반면 민주노동당의 주축인 노동운동 세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밑받침한다는 이야기에도 맹점이 있다. 노조 간부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광범위한 노조원들이 따라서 진보정당에 투표하리라고 기대할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권영길 국민승리21 후보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원을 받았지만 실제 득표는 50여만 조합원의 그것에도 못 미치는 30만6천표에 그쳤다.

이런 결과는 우리 정치의 기본지형이 계층이나 이념보다 지역을 중심으로 짜인 현실 탓이 크다. 일반 유권자들은 말할 것 없고 노조원들도 상당수가 노동자의 이익을 누가 대변하느냐라는 기준보다 출신 지역 등을 위주로 투표하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선거제도 바뀌면 의석 확보 가능

일부 재야 및 노동계 인사들은 이런 현실을 들며 진보정당 시기상조론을 펴기도 한다. 섣불리 독자 정당을 했다가 거듭 실패해 ‘양치기 소년’꼴이 되지 말고 차라리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기성 정당 안에서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1+알파’의 알파 자격으로 여권 신당논의에 참여한 재야 인사들이 그렇고, 실제로 이해찬·임채정·이길재씨나 김근태·방용석·김영환씨 등은 같은 논리로 각각 88년과 95년 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다만 이들이 소속 정당 안에서 애초 표방했던 대로의 제구실을 했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궁한 편이다.

어쨌든 민주노동당 관계자들도 눈앞에 닥친 내년 4월 총선 전망이 불투명함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현행 소선거구제로 총선이 치러질 경우 당의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정당법은 총선에 참여한 정당이 1석도 당선시키지 못하거나 총투표 합계의 2%를 얻지 못할 경우 자동해산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의사를 밝힌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노회찬 위원장은 “두 제도가 모두, 또는 한 가지라도 채택된다고 가정하고 여론조사 결과와 지방선거 당시 국민승리21 추천후보의 성적 등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최소 2∼3석에서 최대 10여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고 밝혔다.

박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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