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지난 8월19일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정치방침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진보정당 추진과정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경상대 정진상 교수는 발제를 통해 “진보정당 건설운동이 기존 정치판에 영향을 끼칠 만큼 바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의 형식적인 추진과정으로는 진보정당운동이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 건설운동의 성패는 거의 전적으로 민주노총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성공 경험한 울산은 붐
사실 그렇다. 민주노총은 57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대중조직이다. 민주노동당이 가장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이다. 민주노총도 창당발기인 모집 목표를 6720명으로 잡고, 지역별 간담회와 노조대의원대회를 통해 창당의 당위성을 조합원들한테 알렸다.
울산은 가장 모범적인 곳으로 꼽힌다. 지난 4월부터 현장 조직과 지역노동사회단체 간담회가 5차례씩 열렸다. 현대자동차, 현대정공에서는 노조대의원 대회 때 진보정당 창당에 적극 나서자는 뜻을 모았다. 그 결과 546명이 앞다퉈 기금을 내고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진보정당 ‘바람’이 분 배경을 현대정공 김호규 수석부위원장은 “노동자가 밀집해 있고, 지난 지방선거 때의 경험이 살아 있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 민주노총이 지원한 후보가 울산 북구청장과 동구청장에 당선됐고, 10명이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그런 경험과 함께 내년 총선에서 어느 곳보다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맞물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곳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정치개혁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직접 참여는 주저하고 있다. 절대 다수가 관망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김태일 공공연맹 정치위원장)
창당발기인 모집도 애초 목표치에서 절반이 조금 넘은 3500여명에 그쳤다. 사무금융노련은 1500명을 목표로 했지만 711명, 공공연맹은 2천명 목표에 600여명이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사무금융노련 김형탁 사무처장은 “내년 총선 때 많은 표를 얻지 못해 또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며 “민중당 등 진보정당의 실패 경험이 많아 조합원들이 쉽게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설명이다. 진보정당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업장도 많다고 했다.
지역에 따른 차이도 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는 다른 어느 곳보다 진보정당 창당에 열심히 나섰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창당발기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DJ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있어 신당 창당과 재벌개혁 과정을 더 지켜보자고 한다. 내년에 총선을 치르면 사라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한다. 정치판에 나가 출세하려 하느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지역본부 안수석 정치위원장의 말이다. 노조 간부들도 이후 조합활동에 장애가 될까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민주노총은 조합원 1274명한테 지지하는 정당(정치세력)을 물었다. 결과는 국민회의 24.6%, 국민승리21 21.6%, 한나라당 5.3%, 자민련 2.1% 등의 순이었다. 무응답은 23.9%였다. 진보정당 창당을 추진한 국민승리21을 지지하는 조합원이 꽤 많은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민주노총도 지난 8월23일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창당에 적극 참여해 정당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할 것 등을 결의했다. 또 지역별로 발기인대회를 열어 창당 작업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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