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의 탄압이 극심하던 86년 초, 은밀히 배포된 한편의 팸플릿이 대학가를 뒤흔들었다. 각종 지하 팸플릿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였지만, 이 팸플릿처럼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대학생들을 사로잡은 것은 없었다.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필자는 ‘강철’이란 가명으로 돼 있었다. 그 뒤 ‘강철’ 명의의 팸플릿은 계속 발행됐다.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금기를 깨고 대학생들 사이에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10년간, 흔히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의 준말)로 불리는 그룹이 운동권 주류를 형성하며 한국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데 이 팸플릿은 씨알의 역할을 했다.
복잡하게 얽힌 두개의 ‘간첩사건’
팸플릿 필자가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영환씨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86년 말 그가 구국학생연맹 사건의 총책으로 안기부에 구속되면서였다. 88년 12월 출소한 그는 올 6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발언은 NL계 학생운동권과 80년대 학번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던졌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사람의 자주성을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북한체제는 사람의 자주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사상과는 완전히 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국가를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인민을 굶겨죽이고 인민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타올라야 한다. 좌파일수록 김정일 정권 타도투쟁에 더욱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두달쯤 지난 8월18일, 그는 돌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체포됐다. 지난 91년 밀입북해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을 만나는 등 반국가활동을 한 혐의였다. 북한민주화 운동을 위해선 국정원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는 그가 오히려 국정원에 구속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변신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번 사건의 전체 얼개를 살펴보려면, 그가 체포된 바로 다음날 역시 국정원에 체포된 하영옥(36·서울대 법대 82학번)씨 사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씨의 구속은 김씨 구속처럼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건과 관련해 8월30일까지 구속된 사람은 김씨와, 그와 함께 밀입북한 혐의를 받는 조유식(35·인터넷서점 대표·서울대 정치학과 83학번)씨, 그리고 김씨 구속 직후에 붙잡힌 하영옥, 심재춘(29·학원강사·서울대 사대 88학번)씨 등 4명에 이른다. 안기부가 두명, 두명씩 따로 체포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엔 과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개의 ‘간첩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정원은 김영환씨의 밀입북 사실을 지난 97년 10월 체포한 남파간첩 최정남으로부터 진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정남은 국정원에서 “내가 공작원 교육시설인 모란초대소에 있을 때 김영환씨가 왔다 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에 기재된 김씨의 혐의사실은 대략 이렇다. “피의자는 89년 7월 ‘김철수’란 가명의 북한공작원과 접촉해 노동당에 입당하고 ‘관악산1호’란 암호명을 부여받았다. 91년 북한 지령을 받고 조유식과 함께 반잠수정을 타고 서해안을 통해 밀입북해 모란초대소에서 2주 가량 머물면서 두 차례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다. 92년 4월쯤엔 공작금 40만달러 등을 받아 간첩 활동에 사용했다.”
김영환은 정말 북한에 갔다 왔나
김씨와 조유식씨는 구속 당시 북한 밀입북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런데도 김씨의 구속영장을 보면, 피의사실이 최정남씨 한 사람의 진술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매우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 가령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김 주석이 김씨에게 한 훈시내용까지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런 내용은 일개 남파공작원인 최씨가 알기는 힘든 것이다. 김영환씨와 함께 북한민주화를 추진하는 잡지 <시대정신>의 한 관계자는 “최씨 이외에 누군가 북한의 고위 공작원이 김영환씨에 대해 깊숙한 내용의 진술을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게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발언이다. 그는 최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재임기간중) 간첩을 많이 잡았다. 그동안 잡지 못했던 000의 사무총장도 잡았다. 또 요즘엔 투항하는 간첩이 많다. 투항자 가운데는 북한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은 두 가지 추정을 가능케 한다. 하나는 국정원이 제시한 혐의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다. 김씨는 구속된 뒤 “강압에 못 이겨” 혐의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조서를 썼다가 다시 이를 부인했다고 그를 접견한 변호사들은 전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밀입북 사실은 김씨가 중국에서 귀국한 직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인정했던 부분이다. 김씨가 그러다 말을 바꿨다”고 일축했다. 국정원이 “김씨가 하영옥씨에게도 같이 밀입북하자고 제안했으나 하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지 못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이미 확보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김씨의 사상 변화를 확신하는 주변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이른바 ‘북한의 공작설’이다. 김씨의 ‘변절’을 괘씸하게 여긴 북한이 일부러 고위 공작원을 통해 김씨의 밀입북 사실을 왜곡해 국정원에 흘렸다는 것이다.
김씨의 사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첫 계기는 95년 <말>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가졌던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태도의 오류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그 직후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말지 사호 기사 보았음. 기사에 긍·부정 있음. 총책의 진의도 련락원 통해 보고 바람”이란 지령문을 내렸다. 또 98년 6월에는 “(김영환씨의) 베이징서신이 임시 보안책이 될 수 있으나 운동권에 끼치는 나쁜 영향의 파장은 클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지령문을 내렸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도 부분적으론 북한이 그를 의심했던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또 하나의 ‘간첩사건’은 지난해 12월18일 남해안으로 침투하던 북한 반잠수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격침된 사건이다. 3개월 뒤 인양된 이 반잠수정 안에선 엔화 등 공작금과 공작원 수첩, 그리고 남한의 실존인물인 ㅇ씨 명의의 주민등록증이 발견됐다. 공작원 수첩엔 집 주소와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 등이 쓰여 있었는데, 이 숫자에서 ‘2’를 빼니 조유식씨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다는 게 국정원쪽 얘기다.
“김영환, 국정원에서 가혹행위당했다”
수첩과 함께 발견된 위조된 주민등록증도 중요한 단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 주민등록증의 발급대장을 조회해본 결과, 하씨와 심씨가 지난해 말 이 주민등록의 등·초본 발급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50대 고정간첩이 ㅇ씨 이름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ㅇ씨의 주소지와 가족관계 변동 등을 확인하기 위해 하씨와 심씨에게 등·초본 발급을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사건은 김영환씨와 조유식씨의 ‘밀입북 사건’과, 하영옥·심재춘씨의 ‘간첩혐의 사건’이란 두개의 사건이 얽혀 있는 셈이다. 김영환씨와 하영옥씨는 89년 발족한 반제청년동맹에서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 따르면, 하씨는 90년 김영환씨에 의해 노동당에 입당하고 ‘관악산2호’라는 암호명을 받은 뒤 김씨로부터 1억여원을 받아 조직원 관리 등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와 하씨가 갈라선 것은 97년 9월 무렵이라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씨가 반제청년동맹을 해체하려 하자 하씨는 “당신은 조직을 이끌 능력이 없다. 조선노동당의 현지지도원과 무전기, 자금을 나에게 넘겨라”고 요구했다고 한다.(하씨는 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선 이 부분을 부인했다)
어쨌든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씨와 하씨가 운동노선을 싸고 오랫동안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게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다. 하씨는 지난 7월 월간 <말>을 통해 김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김씨의 행적을 “등에 칼을 꽂는 행위” “단순한 변절이 아니라 배반”이라고 비난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서로 대립했던 두 사람이 이젠 하나의 사건에 연루돼 함께 국정원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국정원이 서로 별개인 듯한 두 사건을 하나로 묶어 다루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씨와 하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살펴보면, 국정원의 추정은 대략 이런 것 같다. “김씨와 하씨 등이 주축이 돼 89년 반제청년동맹이 발족했다. 김씨는 이 조직을 바탕으로 해서 91년 밀입북하는 등 북한 지시를 받고 간첩 활동을 벌였다. 반제청년동맹이 해체된 뒤에도 하씨 등은 최근까지 반국가단체 활동을 계속해왔다.”
이런 정도면 국정원으로선 오랜만에 딱 떨어지는 ‘대형 사건’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김씨는 구속 직전에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협조하면 사법처리되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정원이 그의 진술을 토대로, 80년 말의 NL조직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친북한 활동조직을 엮는 ‘큰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의혹을 들게 한다. 국정원이 하영옥씨 등의 검거를 김영환씨 체포 이후로 미뤄온 사실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국정원은 김씨의 진술을 받아내려 강한 회유와 협박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접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김씨가 매일 기합을 받고 있으며 기합 도중 자세가 흐트러지면 발로 배나 옆구리 등을 마구 채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변쪽은 “김씨 다리 정강이 부분에 피가 난 자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쪽은 “가혹행위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운동 정리한 사람이라도 신변 조심!
김씨는 구속 직전인 8월16일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잔존한 친북세력 일망타진에만 관심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판단하는 친북세력은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 느낌으로는 내 진술서만 받으면 곧바로 간첩단 사건을 터뜨릴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김씨와 하씨 등을 조사하면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 다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변 등에서 “자칫 최대 규모의 조직사건이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국정원이 어느 정도까지 사건을 확대할 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가령 지금은 운동을 정리한 사람이라도 80년대 말 반제청년동맹에 가입했던 사람이라면, 국정원 판단에 따라선 언제든지 반국가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를 씌울 수 있다”고 말했다. 1차로 국정원에서 수사 발표를 한 뒤 경찰에서 후속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김영환씨가 8월16일 월간 <말>과 인터뷰를 갖고, 8월18일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다 붙잡힌 것은 국정원의 ‘회유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인 것으로 보인다. 김씨와 함께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대정신>의 한 편집진은 “김씨는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출국하려다 공항서 붙잡힌 건 일부러 그런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이 국정원에 모든 것을 발설한 ‘배신자’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북한과 김씨가 통신 암호해독용으로 외국 소설책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나는 너에게 장미의 화원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 소설의 이름이다. 운동권 일부로부턴 ‘전향’했다는 비난을 받고, 국정원에선 아직도 ‘간첩’이란 의심을 받는 그에게, 진정한 ‘장미의 화원’은 어디에 있을까.
박찬수 기자 pcs@mail.hani.co.kr
황상철 기자 rosebud@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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