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이 사퇴하기로 맘 먹었으면 그냥 사퇴하면 그만이지, 대의원들에게 여부를 또 묻는 이유가 뭐냐.” “집행부는 사퇴의사를 정확히 밝히라.”
민주노총 제15차 대의원대회가 열린 지난 23일 영등포 구민회관. 네 번째 안건인 임원선거 토론이 시작되자 대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6개월 뒤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놓고도 다시 대의원에게 묻는듯한 태도를 취한 이갑용 위원장과 사퇴의사가 정말 있느냐고 따지는 대의원 사이에 설전이 오간 것이다.
이날 이 위원장은 애초 2월까지였던 임기가 6개월 연장된 것이 ‘선거보다 투쟁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던 점을 되새기고 이에 대한 ‘조직차원의 격려’를 바랐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대의원들은 그럴 ‘여유’가 없는 표정이었다.
결국 다음달 17일 차기임원 선거를 치르고 이 위원장과 고영주 사무총장은 차기 지도부가 확정되는 시점에 사퇴하는 것으로 선거 문제는 일단락됐다. 집행부의 사퇴문제가 이렇게 예민해진 것은 민주노총 2기 집행부의 평가와 관련이 깊다.
현 집행부는 올해 상반기 투쟁을 무리하게 이끌었고 성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투쟁에만 몰입한 나머지 대정부 교섭을 소홀히 한 탓에 일각에선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쟁의국’이란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이 격렬한 공방이 오갔던 재벌개혁이나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구체적 대안을 내지 못한 채 ‘구조조정 반대’ 등 당위적인 구호로 일관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이날 경북에서 올라온 한 대의원은 “문제는 지금부터다”라며 “위기에 봉착한 지도력과 무너진 조직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에 민주노총의 명운이 걸려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IMF체제라는 ‘불가항력적 상황’을 감안하다라도 이 위원장체제에 대한 조직적 불만이 위험수위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민주노총의 한 실무자는 “조합원이 수십만명에 이르는 대중조직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급박하게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선 때로 소수의 긴급한 결정이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그동안 산하 산별연맹들과 일부 대기업 노조들이 조합원의 요구와 동떨어지는 결정을 할 때 이를 조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치명적인 것은 이같은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현 집행부도 답습해왔다는 점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해 위원장 직선제를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조직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단병호 금속연맹 위원장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점은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의 고민이다. 설사 단 위원장이 입후보 하더라도 러닝메이트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내부 결속력은 달라질 수 있다. 대기업 노조들의 ‘몰표공세’도 적잖이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이갑용 위원장체제가 ‘투쟁을 위해’ 들어선 집행부였지만 ‘투쟁만 있었고, 교섭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만큼, 민주노총은 지금 내부 결속과 현장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강력하고도 유연한 지도부를 필요로 하고 있는 셈이다.
<배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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