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어떻게 투표를 조작하려 했는가
주간녹색좌파 9/8
8월 30일 총투표에 참가한 451,792명 중 78%가 독립에 찬성하며 인도네시아의 자치 제안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특히 인도네시아 정권이 투표를 가로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를 고려해보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민중들의 용기가 거대했음을 보여준다.
스티븐 막스가 독립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권이 사용한 수많은 다양한 전술에 관해 보도한다.
3개월 전 처음으로 동티모르 남서부를 여행할 당시 나는 독립투표를 앞두고 있는 지역에서 집집마다 붉은색과 흰색의 인도네시아 국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도로 중간중간 중요 교차로마다 보이던 기다란 대나무 장대와 오두막 또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 동료는 그것이 “검문소”라고 설명해주며 “도로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민병대가 설치해놓은 거지”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남서부에서 발발한 주택방화와 살인, 그리고 검문소와 인도네시아 국기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나는 동티모르의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통치하는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하비비의 자치 제안에 관한 “국민 협의” 발표 이후 인도네시아 군은 20여개의 민병대 그룹을 전시 편성하였다. 하타락, 라카사오, 아블리아 등과 같은 민족주의적 이름을 지닌 이들 민병대는 반(半)합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들은 지역사회 감시위원회 혹은 심지어 서비스 단체라고 자칭하면서 종종 자신들이 잡초 제거 같은 공공작업에 헌신하는 척하고 있다(가끔 나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 그들이 기다랗고 날카로운 밀림용 칼로 풀을 베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무도 속지 않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들의 진정한 역할이 인도네시아를 위해 투표 조작을 돕는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은, 만약 40만 명으로 추정되는 투표자들 중 60%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친독립파 지도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24만 명은 독립에 표를 던지고 16만 명은 자치에 투표할 것이라는 점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4만 명에 이르는 독립 지지자들이 감언이설에 속거나 겁을 집어먹고 혹은 농간당해서 자치쪽에 표를 던지거나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야 격차가 없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군과 민병대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냈다. 우선 이들은 동티모르인들의 투표 등록을 단념시키고자 했다. 이 노력은 실패하였다. 무장 행진과 주택 방화, 구타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인들의 투표 등록수는 놀랍도록 높았다(45만 명).
나는 투표 등록을 위해 신분증을 꼭 쥔 채 유엔동티모르파견단(UNAMET)의 투표소 직원들 앞에 오래도록 줄서 기다리던 동티모르인들(그들 대부분은 문맹이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관료들은 분명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줄서 기다렸고 수많은 노인들은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1975년 이전에 발부된 포르투갈어로 된 서류를 가슴에 품고 왔다.
이와 같은 동티모르인들의 열망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당국은 위협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은 투표 등록자수를 축소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동티모르의 군과 경찰(그리고 그들의 부인들)이 자신들의 투표 등록카드를 제출하라고 명령받았다는 사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카드는 상관들에 의해 복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는 동티모르인들의 투표 등록을 단념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또한 기표 내용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협박한 사례에 관해서도 수없이 들었다.
투표 절차에 관해 사람들을 혼란시키려는 시도들도 많았다. 가령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표 용지의 인도네시아 표식을 지워야 한다는 루머가 퍼진 적이 있다. 이는 기표면 양쪽에 표기토록 함으로써 독립 지지표를 무효표로 만들려는 음모였다.[독립 찬반 투표는 인도네시아 표식과 독립 표식에 대해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또다른 조작은 잘못된 독립 표식을 인쇄한 투표용지 샘플을 배포하는 것이었다. 가장 더러운 술수는 일방적인 선거운동이었다. 든든한 국가자원을 가진 인도네시아 지지자들은 8월 15일의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훨씬 이전부터 자치 투표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선거운동 개시일에는 민병대의 티셔츠와 모자, 통합찬성 티셔츠의 물결이 동티모르 전역을 뒤덮었다. 나는 새로운 인도네시아 국기를 나눠주기 위해 가가호호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또한 친자치 티셔츠를 트럭에 잔뜩 실은 채 행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는 경찰의 보고를 들은 적도 있다. 소문에 의하면 인도네시아는 이 선거운동에 2천 5백만 달러를 퍼부었다고 한다. 8월 17일의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축제를 위한 리허설들 또한 “애국”의 열정을 결집시키는 술잔치에 좋은 변명이 되었다. 공무원들은 자치 찬성 집회와 행진에 참여를 강요받았는데 이 행사들은 사실 내가 머무르던 곳만을 얘기하자면 민병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친인도네시아적인 관계당국들의 메시지는 자치에 던지는 한 표는 안정과 국가예산 확보, 저렴한 수입쌀(인도네시아 관료들은 많은 지역에서 헐값에 쌀을 팔았다), 보건 및 의료서비스 유지 등을 위한 투표라는 것이었다. 친인도네시아 선거운동원들이 아무런 견제 없이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벌이는 한편 독립지지파 활동가들은 많은 지역에서 선거사무소를 차릴 수조차 없었다. 사무실을 열 때마다 매번 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수아이의 경우 투표 직전까지 2천여 명의 난민이 교회 앞마당의 플라스틱 오두막에 피신해있었다. 이들은 8월 6일 내가 사메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사건이 벌어질까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었다. 그 날의 사건은 지역 민병대가 난민들이 피신해있던 교회를 습격해서 미처 도망치지 못한 한 노인의 오른팔을 절단해버린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바로 옆에서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이 공격은 학생들이 이 마을에 선거사무소를 만들려 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8월 11일 비케케에서 선거사무소를 세우려한 또다른 시도는 결국 두 명의 활동가가 총격을 받은 것으로 끝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부와 남부의 많은 지역에서는 친독립파의 선거운동이 지하에서 은밀히 진행되거나 아예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총투표를 표현하는 어휘를 자의적으로 활용하였다. 내가 참석한 친통합 선거운동 집회에서는 이를 아주 교묘하게 써먹고 있었다. 연사는 자치 하에서 동티모르가 보다 “독립적”일 것이라고 말하며 투표에 착수한 인도네시아를 칭찬하였다. 그에 따르면 자치 체제의 동티모르는 유럽연합의 포르투갈과 같은 것이었다. 친인도네시아 연사들이 오스트레일리아가 동티모르를 자국의 식민지로 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 다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결국 인도네시아가 우리를 식민지배에서 해방시킬 때까지 또 포르투갈”이 이 기사의 제목이었다.
자치 제안을 거부할 경우 나타날 결과에 관한 친독립파의 견해에 관해서는 어디에서도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 유엔은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될 것이며 자신은 독립으로의 이행과정을 감독할 것이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대량학살의 위협은 아마 인도네시아의 가장 강력한 카드였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분명했다. “독립에 표를 던지면 1975년과 같은 대규모의 전쟁을 맞이할 것이다.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독립쪽에 표를 던진 수천명의 사람들이 투표일 다음 날 산으로 도주했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가 자신의 위협을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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