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따스한 ‘희망’과 함께 맞이하게 되는 새해 벽두부터 노숙자들
에게 또 하나의 날벼락이 내려졌다. 지난 1월 4일 밤 9시부터 서울시와 경찰의
연합작전으로 서울역와 을지로 지하도, 영등포역, 고속버스터미널 등지에 있는
노숙자들을 [자유의 집]에 강제 입소시킨 것이다. 노숙자들이 많은 지역을 ‘노
숙 금지구역’으로 지정한 서울시는 앞으로도 이곳에 점검초소를 설치하고 구청
직원을 상주배치해 노숙자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작년 11월 12일 오전 6시 30분에 이루어진 경찰의 작전은 노숙자에 대한 정부
의 시각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찰 작전의 대상은 노숙자, 장소는 ‘부산
보현의 집’, 목적은 보안사범 색출었던 것!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식당과 방을
집중 수색하고, 노숙자가 된 까닭을 신문하는 등 초법적인 경찰들의 태도는 곧
노숙자를 잠재적 범죄자 및 사회혼란세력으로 보고 이들에게는 인격도 인권도
없다는 억압적 발상 그 자체였다.
현재 노숙자, 합숙소 생활자, 사회복지 시설 수용자들은 5만여 명으로 추산된
다. 이중 노숙자는 2만여 명으로 짐작하고 있다. 물론, 정확한 수치가 될 수 없
다. 가령 보건복지부는 지난 해 7천 명의 노숙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억지주장하
였다. 이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지난 4월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에서 노숙자 51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
과 응답자의 50%인 257명이 IMF 이후에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고, 노
숙자의 출신 직업은 일용직이 35%인 17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 공무원 91
명(18%), 자영업 72명, 회사원 49명의 순이었다. IMF 이전부터 경제적 빈곤을
겪고 서서히 가정이 파괴되다가, IMF를 기폭제로 수입이 전무해지자 잠재적 노
숙자였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실업률이 증가할 수록 노숙
자의 증가가 우려된다는 정부의 말처럼 현재의 450만 실업자는 잠재적 노숙자인
셈이다.
문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노숙자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기껏해야 새벽에 공
권력을 투입하여 노숙자들을 선별, 가정이 있는 노숙자는 수용소로, 주민등록증
도 없는 노숙자는 갱생원으로 분리수거하겠다는 계획에서부터 노상방뇨나 고성
방가를 일삼는 노숙자들을 엄벌하겠다는 방침이 전부이다. 노숙자 수용소인 ‘희
망의 집’은 불행만을 심어주었다.
노숙자들은 일자리를 원한다. 또한 이 땅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구걸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생존권을 구걸할 수 있겠
는가. 지구의 무게만큼 무거운 생존권이 어째서 동정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숙자 대책은 인자하신 하나님이나 부처님의 손바닥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종
교계의 부조활동만이 노숙자 대책의 시작과 끝이다.
서소문 공원의 한 노숙자는 “이틀을 굶으니까 정말 망치라도 뒤에 차고서 잘
사는 동네에 가서 근사한 차에서 내리는 사람 뒤통수라도 치고 싶더라고요.”라
며 빈곤의 고통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노숙자를 위한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새날을 여는 실업자연맹의 전 회장인 윤여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실업대책
의 중심은 가장 밑바닥에 몰린 노숙자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
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힘내라’ 대부라고 해서 융자를 해주고 있는데 저희들
이 보기에는 ‘열받아라’ 대부입니다. 정부도 우리한테 무관심하지만 사회단체들
도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이대로 가다간 산적이나 해적이 됩니
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1930년대 실업대란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강화, 확충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실업사태는 극단적인
재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노숙자들은 그 첫 번째 희생자이다.
〈노동네트워크 주간뉴스, 99/01/04〉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