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의 올림픽을 넘어 저항의 국제연대로”

-뉴질랜드 아펙 반대회의 참가기- 이창근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무슨 무슨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들(NGO)은 ‘대항회의’를 연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대해서는 반-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대해서는 반-ASEM,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는 반-NAFTA 등등… 정치적 입장의 차이 때문에 두 개나 세 개의 대항회의가 동시에 열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NGO 국제회의’가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말만 많고, 어떠한 실천계획과 연속적인 사후프로그램에 대한 결론도 내오지 못한다고, “NGO 올림픽”이란 비판까지 듣기도 한다.

여지없이(?) 이번 9월 10일-12일까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는 ‘APEC반대회의’가 오클랜드 대학에서 열렸다. 아펙모니터링그룹(APEC Monitoring Group), 가트워치독(GATT Watchdog), 뉴질랜드노동조합연맹(TUF) 등의 주관으로 개최되었으며, 해외에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홍콩 등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가하였다. 필자도 이번 9월 15일에 정식 발족한 ‘투자협정·밀레니엄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의 차원에서 아펙반대회의에 참가하였다. 이번 국제회의는 규모로만 따진다면 아주 소규모였다. 해외 참가자가 약 10여명 안팎이고, 대부분은 뉴질랜드 시민들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여느 다른 ‘대항회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돈과 숙소, 회의 장소 등이 철저하게 시민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말고도, 무역·투자자유화에 따른 재앙의 구체적인 사례와 저항의 경험들이 교류되고 연대행동의 계획들이 폭넓게 논의되었다는 점에서이다.

이번 아펙반대회의에서는 ‘아펙’관련 문제들만이 논의되었던 것은 아니다. 아펙의 본질이 무역과 투자자유화를 촉진하는 핵심적인 도구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문제를 넘어 보다 포괄적인 문제-지구화, 자유무역, 투자자유화-들을 논의했다. 특히 올해 11월 30일부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게 될 WTO 밀레니엄라운드의 문제점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고, 일국적·국제적 수준에서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들이 제안되었다. 실제로 아펙정상회담의 성명서에서도 ‘보호무역주의의 지양과 WTO내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의 조속한 개시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는 사항이 핵심적으로 결의된 것을 보더라도, 이번 아펙회의가 단지 ‘지역내의 자유화·개방화 촉진’이라는 목적말고도 전세계적으로 ‘더 많은 자유화’를 위한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의 신속한 개시를 촉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 금융위기를 초래한) 투기성 단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국제적 감시체제를 갖춰야 하며, 예방적 금융지원제도와 같은 프로그램을 더욱 많이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작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아펙정상회담에서의 기조와 사뭇 달라서 눈길을 끈다. 이익만 뽑아먹고, 사회·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는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은 대단히 모순적이며 기만적이다. 한편에서는 ‘투기자본 규제’를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투기자본의 활동조차 합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각종 투자자유화협정을 ‘비밀스럽게’ 체결하려고 한다. 지난 95년부터 OECD에서 논의되다 전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저항에 휘말려 중단되었던 다자간투자협정(MAI), 또한 국내에서 스크린쿼터 존폐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불러일으킨 한미투자협정 모두가 ‘투자’의 개념을 대단히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어, 투기자본의 활동조차도 정당한 ‘투자’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도 김대중정부는 그러한 협정의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대통령이 진정으로 투기자본의 규제를 원한다면, 우선적으로 한미투자협정과 WTO 밀레니엄라운드에서 논의될 다자간투자규범(MFI)-다자간투자협정의 또 다른 이름-의 체결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IMF 이후 한국 민중들이 겪고 있는 자유화·개방화의 깊은 충격을 감안한다면, 김대중 정부는 ‘더 많은 자유화’를 위한 국제협정을 체결 기도를 즉각 중단하고, 그것이 미친 재앙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와 평가 작업을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 속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천년을 ‘재앙의 시대’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시대’로 개척할 것인가를 둘러싼 대결전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아펙반대회의는 비록 작지만 소중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회·경제활동 모든 영역의 자유화를 추구하는 WTO 밀레니엄라운드에 대한 거부와 그를 위한 저항의 국제연대를 합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아펙반대회의는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NGO 올림픽”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비판을 넘어, 지구적 저항운동의 촉발을 위한 소중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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