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은 계속된다
유로마치(Euro March)
유럽행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우리 스스로 정확히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분명하게도 우리는 개척자이자,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는 사회운동의 일부이며, 사회의 다양한 불확실성, 특히 부의 재분배에 관한 문제를 채택하고 있다.
확실히, 완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고 있다. 우리는 또한 여전히 시험중이고, 슬프게도 우리의 계획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이러한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사회적 투쟁의 역사에서 97년 암스테르담과 99년 쾰른은 분명히 의미 있는 투쟁이었다. 실업과 고용불안으로부터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미래로 향한 문을 열어젖힌 사람들로 기억될 것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이 침묵시키려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며, 너무나 흔하게 거대노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무시당해왔다. 암스테르담과 쾰른 행진은 실업에 맞선 계속적 행진의 길에 디딘 두개의 발자욱이었다.
실업과 고용불안에 관한 유럽 대항의회의 두 가지 안
1999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의 쾰른 행진
5월 29일 대규모 집회 이후 세 개의 “대항 의회” 회의가 소집되었고 여기에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온 수 백명의 실업자 운동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제안들(토빈세 도입, [인력을 대치한] 기계에 대한 과세, 주 4일 노동제 등)을 많이 모아냈고, 이는 종합 토론을 거쳐 98년 브뤼셀과 99년 1월 쾰른에서 개최된 유럽 행진 네트워크 회의에서 이미 채택한 바 있는 강령들을 완성시켰다.
1999년 12월 수입 보장과 직업훈련제(workfare) 반대를 외치며 모든 곳에서 행동하라
1999년 하반기에 유럽연합(EU) 각국 정상들은 핀란드로 모일 것이다. 1999년 12월 헬싱키에서 EU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쾰른에서는 ‘고용 협약’과 ‘정치, 경제적 총괄 협상’이 (실업수당과 저임금을 더욱 삭감하는 방향으로) 갱신될 예정이어서 실업자들에게 완전한 일자리 상실을 수용하라는 압력이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헬싱키 EU 정상회담 첫째 날, 모든 실업 운동 단체와 연합체들은 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실업 수당을 관리하는 기관 사무실을 겨냥해 행동을 벌여야 한다. 처음으로 국경과 상관없이 동시다발로 모든 곳에서 벌어질 수백 개의 행동과 점거(상상해보라)!
강령의 원칙적인 주요 요구는 모든 사람이 공유했다. 97년과 99년의 유럽 행진의 초기 논쟁은 우리에게 매우 유효한 역할을 했다. 모든 강제된 노동관련 지침들(혹은 영국에서는 과거의 보수당 정부나 현재의 노동당 정부 하에서도 우리를 위한 일종의 시연으로 시행되고 있는 소위 직업훈련이라 불리는 정책)을 거부하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또 다른 긍정적인 요소는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운동들이 “연령, 성별, 출신지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수입”(실업, 고용불안, 사회적 배제에 맞선 유럽인들의 요구안에서 인용, 1998, 4, 브뤼셀)을 현재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특화된 요구안을 덧붙이긴 했지만 모두 공동 요구안을 지지하고 있다.
쾰른에서 열린 실업자 대항의회가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충분한 수입에 관해 수용 가능한 치수를 선택하는 사업을 찾아냈을 때 특화된 경험 사이의 유사성이 발견되었고 공동의 의견일치에 도달했다. 유럽의 모든 실업자들을 위한 실업수당액에 관한 의견은 750 유로(Euro)에서 1000 유로까지 다양하게 제출되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낮은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의 유럽 남부에서 온 활동가들은 1000 유로 지급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경제 체제의 차이를 넘어 적용 가능한 공동의 안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제안된 안은 최소임금(유럽 각국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이나 빈곤 수준, 혹은 국내총생산(GDP) 각각을 토대로 하여 규정짓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공동의 요구안은 실업자 운동 단체들이 제안한 내용들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5월 25일 유럽 행진 대표들은 EU 사회복지장관 대표로 있는 발터 리스터 독일 노동사회복지 장관의 초청으로 브뤼셀에 갔다. 대표들은 브뤼셀과 쾰른 유럽 회의에서 마련된 요구안을 설명했다. 의심할 바없이 이 요구안들은 우리의 투쟁으로 형성된 압력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1999년 유럽의회에 초청된다면 (1997년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그것은 유럽 각국에서 벌인 실업자들의 주요한 투쟁의 성과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2000 : 실업에 대항하는 제3차 국제시위의 해
이것은 실업과 고용불안에 관한 대항’의회’가 제안한 두 번째 회합이다. 국제 시위는 2000년 프랑스에서 있을 예정이고 최소한 암스테르담과 쾰른 시위의 참가자에 상응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가 2000년 하반기 EU 의장직을 맡아 되면 자신들의 사회정책이 특별한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프랑스 지배 계급이 감동받아 “꼬끼오”를 외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힘과 자주성 양자가 결합된 사회운동이 주도하는 강력한 반대세력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진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정열적인 제안과 행동을 통해 이 국제적인 시위를 준비하는 데 있어 우리의 상상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행진이 조직될 필요나, 투쟁의 새로운 형식이 짜여질 필요가 있을까? 규모가 더 커진 제 2차 실업 대항”의회”가 쾰른에서의 회의보다 더 많은 참가자를 포함시켜야 할까?
어떠한 제안이나 의견도 환영한다. 실업에 대항하는 중요한 제안들이 유럽의 거대기업이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든 사회적 투쟁과 모든 목소리들을 위한 시위의 초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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