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와 탈규제가 부른 열차사고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10/14 줄리 힐라드·크리스 마스덴
30∼40명 가량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패딩턴 열차사고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민영화된 철도 회사의 이윤추구에 있다. 국민들의 분노가 널리 퍼져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정부는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건을 최소화시키는 데 급급하고 있다.
존 프레스코트 부총리는 런던 지하철과 영국 공항 관제 시스템의 민영화 계획에 대해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적 혹은 산업쟁의의 목적”으로 철도 사고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 당수인 윌리엄 헤이그와 열차 사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협정의 근저에는 패딩턴 사고가, 보수당에 의해 시작되고 노동당이 승계하고 있는 영국 국영기업 민영화의 사회, 정치적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양당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는 보수당 정부가 가장 마지막으로 민영화시킨 국영기업이었다. 이로써 한 때 영국 경제의 40%를 차지했던 국영 산업과 서비스 부문을 공공의 소유에서 민간으로 이전시키려는 보수당의 야욕이 완성되었다. 보수당은 경쟁 도입을 통해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면 엄청난 투자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소수 기업과 주식시장의 활황을 위해 주요 공공 자산을 도매금으로 팔아 넘기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철도 민영화는 고용 감축과 서비스 합리화를 근간으로 하여 단 3년만에 해치워졌다. 영국철도(BR)는 새롭게 창립된 민간 기업인 레일트랙(Railtrack)으로 가는 철도망으로 나뉘어졌다. 거기에 세 개의 화물운송 회사와 25개의 열차운영 회사가 만들어졌다. 전반적인 규제 시스템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보수당이 국민들로부터 지지지를 잃어가고 있던 시기였던 민영화 초기에 정부가 벌어들인 수익금 총액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 감면으로 부족해진 재원을 조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영국철도는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레일트랙의 자산은 장부 가격인 45억의 절반도 안 되는 단 19억 파운드였다. 철도 서비스를 인수한 기업들은 29억 3천만 파운드의 자산 가치를 지닌 주식, 시설, 장비들을 단 19억 파운드만 지불하고 사들였다. 정부는 또한 레일트랙의 부양을 위해 16억 파운드의 빚 중 10억 파운드를 탕감했으며 그 빚을 주의회로 이전시켰다.
철도 서비스 부문을 사들인 기업들은 향후 3년 간 약 50억 파운드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을 보장받았는데 이는 1980년대와 1990년 초까지 영국 철도에 제공된 것의 두 배에 이르는 것이다.
민영화는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엄청나게 상승시켰다. 런던시는 단일 민영화 수입으로는 최대를 벌어들였다. 초기에 소유권 인수를 통해 만들어진 민간철도 회사는 18개월 후 대규모 이윤을 내며 주요 대기업에 팔려나갔고, 이에 따라 수많은 백만장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영국 상위 100대 기업 중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들은 이전에 모두 국영기업들이었다.
철도망의 모든 측면은 주식 가치를 최대화시키는 데 종속되었다. 예를 들어 레일트랙의 경우 모든 이사들에게 스톡옵션과 이윤 증가에 연동된 장기 수당이 제공되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안전에 영향을 미쳤다. 레일트랙의 안전국장인 로드릭 무트람조차도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집행되면 그에게 약 4만 2천 파운드의 이익이 돌아간다.
고비용이 들어가는 철도망을 개선하는 작업은 이윤 추구에 의해 억제되고 있다. 이윤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열차를 운행하는 데 있어서도 낡은 차량이 그대로 사용되고 다른 비용 절감 조치를 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패딩턴 사고 당시 운행된 첼튼햄 고속 열차에는 7명이 사망했고 150명이 부상당한 2년 전 수트홀 사고 열차에서 떼어낸 객차 3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행은 시스템에 있어 구조적 결함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1990년 캐논가
사고에서 부상을 입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전의 사고 차량에서 떼어낸 객차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인원 감축으로 인해 기관사들의 운행 시간은 증가되었고 열차 사고의 수준은 극적으로 증가(민영화 1년 전의 989건에서 민영화 이후 1864건으로 증가)했다. 사망률도 1995년∼1996 사이의 28건에서 1997년∼1998년에는 48건으로 증가했다.
안전성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영국 철도망에 있어 자동정지체계(ATP)를 도입하지 않은 것이다. 1989년 클랩햄 열차 사고 이후 계속해서 제기된 ATP는 적신호시에 달리고 있는 테임즈 기차를 멈출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 보수당은 그 비용이 민영화에 저해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장치의 도입을 반대했다. 노동당 또한 이것의 전면적인 시행에 대해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패딩턴역으로 진입하는 모든 고속 열차는 결과적으로 ATP를 장착한 기준으로 속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첼튼햄 고속 열차에는 ATP가 부착되어 있었지만 스위치가 켜져 있지는 않았다. 테임즈 터보 열차는 기관사가 노란 신호든 빨간 신호든 똑같은 소리를 내는 원시적인 경적 경고 장치를 갖췄을 뿐이다.
패딩턴 사고에 대한 건강 및 안전 위원회의 중간 보고서도 다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사고로부터 안전 교육을 끌어내는 책임과 준비성에 대해 레일트랙 내의 관심이 요구됨.
* 레일트랙의 한 기구인 안전 및 규준 이사회(SSD)와 관련된 이윤 분쟁의 소지가 있으며, 상업적 논리에 의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음.
* SSD의 이사가 레일트랙의 이사라는 사실과, 그 결과 신용상의 책임을 주주들에게 부담시키고 있음.
* 레일트랙이 안전 기준을 하향 조정하거나 우선 순위를 낮추고 있다고 차량 건조업자들이 불평하고 있음.
이러한 모든 비판들은 패딩턴 재앙은 준비된 것이며, 민영화와 이윤추구가 사고에 있어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단 한가지의 구체적인 대응은 레일트랙이 이익 분쟁의 가능성 때문에 승객 안전을 살피는 데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뿐이었다. 레일트랙은 이전에 “철도산업 비용 증가”에 비현실적인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며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의 모든 노력은 민영화를 필요하고 부득이한 것으로 다시 정당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공항 관제 체제의 민영화를 계속 진행시키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프레스코트는 민영화만이 서비스를 현대화시키는 데 필요한 자금을 유입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보수당의 주문을 되풀이했다.
노동당은 몇 달 전 최소 3년간 매각을 연기해야 한다는 의회의 운송선택위원회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1996년에 개통 예정이었던 스완위크와 햄프셔의 새로운 컴퓨터 공항 관제 시스템이 가장 빨라도 2002년까지는 건설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이 그 이전에 진행된다는 것은 “이익을 위해 안전을 냉동댕이치는 것”이라고 위원회는 경고했다.
프레스코트의 대응은 “완벽한 독단”으로 민영화 반대를 묵살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부는 새처에 의해 시작된 시장주의 정책이라는 하나의 독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 대회의 최근 연설에서 블레어는 “자유”와 “현대화” 세력은 “지구적 금융, 통신, 언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영국이 경쟁의 장에 나섬으로써 “적대의 시대가 가고,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가 마침내 함께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며 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패딩턴 사고가 있기 바로 몇 일 전 블레어는 “현대화”와 “경제적 효율성”의 최고의 예로서 민영화된 철도 산업을 꼽았었고 “앞으로 10년 동안 지난 100년간 철도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유치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민간 철도 체제를 감독하기 위해 건설된 정부 기구인 철도전략국을 치켜세웠다.
패딩턴 사건은 시장의 무방비적 역할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와 화해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철도의 안전이 시장과 양립할 수 없다면 계속되고 있는 건강과 교육과 같은 중요한 공공서비스 부문의 민영화가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어떠하겠는가?
사회의 모든 부분이 자본주의적 시장의 원리를 통해 조응될 수 있다는 블레어의 주장은 현대 정치의 쇠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전 시기, 이윤 체제를 가장 옹호했던 세력들조차도 경제 계획과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해야만 했다. 1947년 철도 국유화는 사회주의적 조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 경제의 주요한 부분이 단기 수익성의 측면에 완전히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배계급의 정치 대표들은 시장의 무정부상태 이전에 자신들의 무능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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