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시애틀, 무미아
제트넷(ZNet, http://www.zmag.org) 마이클 앨버트
WTO는 세계 각국에 있는 노동자 민중을 사적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조작가능한 재산으로 사고한다. 과테말라에서 남아공까지, 그리고 타이에서 사우스브롱크스까지 이것은 빈곤과 질병, 심지어 대규모 기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착취에 대한 저항이 잇따를 때, 착취적인 무역과 원조정책의 이면에는 언제나 강제적인 탄압이 있다. 우리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착취, 교묘한 조종, 탄압의 대상으로 우리를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정중하게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책으로 인한 그러한 고통에 대해 인도주의적 문제로 조금 양보할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라든가 자카르타의 15살 짜리가 하루에 1달러 50센트를 벌고 있다거나 말레이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근으로 인한 사망이라든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고위 경제관료들로부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관료들이 자신들의 정책 유지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러나 소름끼치는 정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운동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 근본적인 경제적 관계는 주어진 것으로 인정하면서 WTO 정책을 뒤바꾸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개혁을 궁극적 목표로 싸우는 것. (2) 즉각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훨씬 더 많은 진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이끌고 근원적인 관계를 궁극적으로 전화시키면서, 지속될 인프라와 조직을 형성하고 의식과 책임을 끌어내기 위해 유권자에게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유형.
이러한 폭넓은 접근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지배 엘리트들에게 현재의 정책항로를 바꾸지 않을 경우 정당성과 안정을 잃게될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서한이나 로비, 토론회나 리플렛, 집회, 강연과 행진, 시민불복종, 심지어 대중파업이나 보다 전투적인 단절을 수단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차이는 제쳐두자. 나는 모든 반WTO 활동가들이 공통점을 찾게 될 아주 단순한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반WTO 활동가들은 WTO의 정책과 경제적 곤궁, 억압을 거부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다른 모든 강제적 억압을 비롯하여 무미아 아부자말의 투옥과 사형집행에 저항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 억압의 효과를 선명하게 알리기 위해 무미아를 죽이는 데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과거의 교수형과 같은 사형선고는 반대 행동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미아는 죽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활동가들은 탄압이 치명적인 주사액에 의해 합법화되고 있는 상황을 그냥 좌시해서는 안된다. 사회에 대한 신실한 옹호는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 추구와 불공평에 대한 항의를 봉쇄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저항해야만 한다. 무미아 아부자말을 위해 구명 운동을 하는 것은 착취적 지구화에 맞서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무미아 아부자말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재심을 강제하기에 충분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양상과 형식의 활동을 필요로 하며 … 시애틀을 둘러싼 행동들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구화 반대 운동은 거대하고 가시적하며 최근에는 상당히 풍부한 자산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시대 운동이 가졌던 파괴적 특성(파벌주의과 단일이슈에 집착하는 편협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모든 운동이 언제나 다른 운동의 모든 요구를 받아 안을 필요는 없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광범위한 규모(그리고 국제 무역에 관한 의제나 미국 국내의 억압적인 의제들을 되돌리 수 있었던 것은 광범위한 규모에서 얻어낸 진보이다)로 주요한 진보를 획득하기 위한 전망은 운동 세력들 간의 연대와 특히 오래된 간극과 균열을 극복함으로써 약화되기보다는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순간 무미아와 WTO는 미국 내 정치 활동에 있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논쟁적인 두 가지 초점이 되고 있다. 무미아에 대한 사형 집행은 12월 2일로 결정되었다. 투쟁은 어떤 측면에서도 주변적이지 않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WTO와 무미아라는 두가지 사안 모두에 의식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고, 지배층에게 그들의 정책에는 (불공평에 대한 항의자들과 제휴)할 수 없는 또 다른 결과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더우기 지금까지 모든 지적들은 미국과 WTO에서의 조직화가 압도적으로 백인 활동가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 지원의 총괄적인 이익에 덧붙여 우리는 광범위한 백인 주도의 운동이 매우 걸출한 흑인 정치 인사들의 사형집행을 막는 것에 관해 흑인 사회와의 연대를 표현하는 데 있어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랠프 네이더나 노엄 촘스키가 사협집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들의 고난이 시애틀로 행진하는 이들의 의식과 가시적 표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미아의 경우 역시 그러해야 한다.
WTO 반대 세력들은 하나의 단순한 포괄 행동 속에서 정의를 위한 투쟁이 불가피하게 상호 연계되고 모두에게 가치있는 것이라는 점을 소통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떠한 장소에서 획득된 가치있는 진보가 그 노력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장소로부터 다양한 유권자들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을 만큼 매우 높은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WTO 정책을 극복하는 것이건 무미아를 석방시키는 것이건 단결해 싸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양자가 모두가 승리할 수 있도록. 최소한 미국에서는 백인이 조직한 프로젝트의 기회는 흑인 활동가들과 흑인 주도의 운동과의 연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시애틀에서 가져야 할 것은 더 좋은 대화와 더 좋은 활동을 위한 기회이다. 우리는 기회를 움켜쥐어야 한다. 사회적 변화가 수많은 형태와 의제로 끓어오른다는 것은 정당하고 이해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결국 정의를 쟁취하는 것이며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인 것이다.
시애틀로 가거나 시애틀의 정신을 당신의 지역으로 가져가라. 시애틀에 무미아를 포함시키고 무미아에 시애틀을 포함시켜라. 무미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강력한 제국에 저항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믿음은 인습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내일의 잿더미에 불과하다는 것,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는 것, 저항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묵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정신상태는 인간 정신을 억누르고 탄압하고 꺾어버리려는 힘에 저항하는 것이다.”
만약 무비아가 사형수 감방에서 연대와 상호관계를 실천할 수 있다면 분명이 우리도 밖에서 더욱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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