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장에서 만난 사람

서울택시노조 고려운수분회 최문기씨

“먼저 깨어야 세상도 바꾸죠”

전면파업 186일째…”노동자 멸시하는 정부 용납 못해”

“그간 많은 집회를 참석하고 봐왔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집회는 처음입니다”.

고려운수에서 2년 동안 택시핸들을 잡아온 최문기(30)씨가 노동자대회·민중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밝힌 소감이다. 파업현안 때문에 참가하게 됐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됐다는 최씨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런 자리가 마련돼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들과 얘기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야제가 열린 중앙대에도 갔지만 행사에는 거의 참가하지 못했다. 투쟁기금마련을 위한 문화주점에서 일하느라 눈코뜰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려운수주점의 장사가 가장 잘 돼 최씨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노조(분회장 정지구)는 오늘로 전면파업 1백86일을 맞았다. 엄연히 법제화된 택시월급제를 회사쪽(사장 송현준)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이 두 번째”라는 최씨는 “길어도 3개월을 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조합원들이 생계곤란으로 힘들어 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최씨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과거 노조간부였던 사람들이 구사대에 끼여 노조탄압에 앞장섰던 일이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하나의 밀알이 되더라도 내 직장을 지키는 일에 나서겠다고 마음먹었죠” 30여명의 동료조합원들과 함께 파업현장을 지켜온 최씨의 마음가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먼저 사람들이 깨어야 합니다. 나이가 적건 많건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죠”.

올 추석전 생계해결을 위해 귀향했던 조합원들로부터도 꾸준히 전화가 오고 있다. 노조는 변화된 상황이 있을 때마다 편지로 소식을 전한다. 어려운 생계로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하나였다.

“예전에는 정부가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으려니”하고 생각해왔다는 최씨.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자기 사심을 채우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노동자를 말살하고 멸시하는 정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최씨의 마음은 현정부로부터 한참 떠나 있었다. “도대체 차기 대통령감이 있느냐?”고 묻는 최씨의 말에 대회장 옆의 국회에 대한 짙은 분노가 배어나왔다.

대회가 마무리되는 대로 최씨는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다. 상당수 조합원들이 노동자대회에 참가해 내일모레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이 파업현장을 지키고 있다. 오늘 고려운수 조합원들의 술자리에서는 최씨가 풀어놓은 노동자대회·민중대회 얘기로 꽃을 피울 것 같다.

재능교육교사노조 김폐한씨

“여러 노조가 함께 싸울 수도 있네요?”

큰 집회 처음참가…”얼마전 만든 노조 잘 됐으면”

“김대중정부가 들어서고는 좋아진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네요”.

대학 졸업한 뒤론 처음 집회에 참가해본다는 재능교육 상담교사 김폐한(35)씨. 노동자전야제에서 만난 그는 10여년전 재학당시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이렇듯 많다는 게 사뭇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오랜만이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에 참가자 모두가 ‘동지’라는 느낌이란다. 또 하나, 노조들이 기업의 울타리에서만 활동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노조가 힘을 모아 함께 싸운다는 것도 새롭게 깨달았다.

그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재능교육교사노조(<노동과 세계> 11월12일치)는 설립신고 뒤 13일 2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설립보고대회를 치렀다. “권리를 대변할 단체(노조)가 생겼으니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그도 선뜻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물음에 말을 아껴가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원래 상황에 순응하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부당한 걸 언제까지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지요. 하루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난 날은 말그대로 ‘파김치’가 됩니다”. 그가 노조에 가입한 것은 현재 ‘관리’해야 하는 회원학생수가 너무 버겁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가 생각하는 적정인원은 하루 20명선. 그 이면에는 물론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땐 ‘선생님’이란 의무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입사 1년반이 지난 지금은 내가 과연 선생님인지 솔직히 회의스럽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려다보니 ‘애정을 갖고 충실하게’ 가르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회사는 ‘마감수치’라는 이름으로 목표치를 주어 회원을 늘리도록 은연 중 압력을 넣는다. 게다가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교사가 회비를 채워넣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교사가 아니라 ‘영업사원’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재능뿐아니라 다른 학습지회사 상담교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노조의 선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선 일이 잘 될지 불투명한데도 노조가입이 급증하는 건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지요” 내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삼키곤 하던 그가 차가운 새벽공기속으로 나서며 ‘마지막 말’을 남긴다.

“사실 관리인원 문제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계약직, 도급제 등 풀어야 할 게 쌓여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모든 게 다 풀리리라 생각진 않아요. 그러나 반드시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신재걸 민주노총 문화국장

“대회를 이끄는 실제 힘은 문선대”

10번째이자 ‘마지막’ 총진행…곧 노동문화센타로 옮겨 정책연구

11월 노동자대회 때면 언제나 무대 한켠에서 이어폰을 꽂고 무전기를 든 신재걸(41) 문화국장이 보인다. 신국장은 지난 89년 당시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문화국에서 일하던 중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에 파견돼 노동자대회를 총괄했고, 90년 전노협 문화국장을 맡은 뒤에도 이 일을 계속해왔으니 꼭 10번의 대회를 총괄한 셈이다. 신국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89년 대회를 꼽는다. 경찰의 봉쇄를 뚫고 짧으면 다섯 시간, 길게는 아홉 시간씩 관악산을 넘어서 서울대 대회를 사수했던 힘들지만 치열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신국장에게 이번 대회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10번째 대회라는 점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2000년 1월 창립하는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 까닭에 노동자대회 총괄책임을 맡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신국장은 “10년간의 경험을 이번 대회에 쏟아붓고자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야제, 노동자대회, 민중대회 등 대회가 많다 보니 기본적으로 할당된 시간이 적어서 연설만으로도 시간이 꽉 차버렸기 때문에 전국에서 어렵게 모인 조합원들이 집회에서 내용을 충분하게 확인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갖지 못한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기획과정과 당일 행사에는 2백50여명이 풍물, 율동, 노래, 음향, 조명 등에 동원된다. 신국장은 “이들 문선대가 실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대회가 끝나면 온 몸이 쑤시고, 목이 퉁퉁 붓는 등 녹초가 되지만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매년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문선대에 참가해주는 동지들이 있어 노동자대회를 힘있게 치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국장은 “대회를 이끄는 또 하나의 큰 힘은 물론 참가한 조합원 전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매년 행사 총책임을 맡아 대회를 이끄는 신국장이지만 대회를 마친 뒤 엄마아빠 손을 놓쳐버린 아이들과, 주인을 잃은 가방, 휴대전화, 지갑을 찾아주기 위해 대회장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꼼꼼’하고 ‘자상’한 사람이기도 하다.

90년 전노협 창립, 95년 민주노총 창립을 같이한 신재걸국장은 “노동자 삶의 튼튼한 밑거름이 되는 노동문화에 대한 전문적 연구와 정책개발이 시급하다”며 “그러나 노조 문화국은 일이 많아 그런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전문적 구조에서 일할 생각”이라며 센터로 옮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 문화국에 11년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관성화되고 정체되는 느낌이 있다”며 “이제 후배들이 노조 문화사업을 맡아 창조적이고 새로운 활동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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