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학살에 대한 한 주한미군의 회상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11/19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는 11월 17일 기사 “한국전쟁 미군 학살의 생존자들은 (한국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경에 벌어진 노근리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기를 원한다”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의 편지를 받았다.
저는 1963년 6월부터 1964년 7월까지 13개월 의무 복무차 한국에 있었습니다. 저는 제7보병지구 사령부인 한국 케이시 캠프에 주둔했으며, 81밀리 박격포를 다루는 중병기 보병 소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을 예절바르고, 마음도 잘 맞으며, 부지런한 일꾼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은 산지(山地)가 많았고, 땅이 척박하며 황폐한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나무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연료가 너무 귀했기 때문에 농민들은 나무를 모두 베어 땔감으로 쓰곤 했습니다.
한국 농민들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매우 다재다능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용했지요. 야전 훈련시 우리는 사격 연습을 했습니다. 기관총은 총구에 유도관을 장착하지 않은 채 불을 뿜었고, 파편이 포문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2피트 떨어진 곳에서 한 한국인 남자와 여자가 흐느적거리는 바구니에 파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걸 집으로 가져가서 녹였고, 군인이나 그밖의 다른 사람에게 팔 놋쇠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다재다능하다는 사실은 다른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도둑질이 한국 전역에 만연했습니다. 그들은 도둑을 “미꾸라지같은 놈”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들이 쓰는 방법이 굉장히 감쪽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도심에서 19세나 20세 된 남자가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조심해라. 하루 종일 그가 찾아다니고 있는 대상가 오고 있는 것이다. 왼손으로 신호를 보내려는 오른손잡이 운전수가 모는 군용 차량이 그것이다. 군용 차량은 깜빡이등이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선 손을 내밀어야 하고, 그는 그 몇 초 안에 손목에 있는 시계를 낚아챈다.” 미꾸라지같은 놈은 라디오를 훔치면서 음악은 남겨놓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비참한 가난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도둑질은 굉장히 흔했습니다.
내가 본 유일한 도시인 서울을 제외하고, 다른 부락 대부분은 마루가 더러운 오두막 이삼십 채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나라였지요. 서울에서는 현대식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건 농민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잠기지 않은 게 있다면, 그들은 그걸 훔쳤습니다. 남자들은 55갤론의 디젤유가 든 드럼통을 등에 지고 훔쳐갔습니다.
한국전쟁 초기 노근리 다리 밑에서 미군이 피난민 수백 명에게 총을 쏘았다는, 얼마 전에 이루어진 폭로는 실로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전쟁 초기에 한국인 민간 피난민 수백 명을 죽였던 유사한 학살들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주둔할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왜 여기 있소?” 우리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든지, “거대한 PX의 땅”인 미 대륙에서 가능한 한 전쟁을 멀리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우리가 왜 정말 거기 있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점령군이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식민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우리는 미국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남한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해 거기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살펴보자면,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한 노동계급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10년간 아시아 어떤 나라보다도 GNP가 급속하게 증가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거기서 이익을 통제합니다. 미국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여전히 군사력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한국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1949년 중국 혁명이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자원과 노동력 착취 능력을 위협하면서 전 한반도를 수렁에 빠뜨렸던 사실을 두려워했습니다.
미국 군사 공격의 사상자는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이 피난민들을 학살할 때, 노동 대중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보호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얼마든지 희생시키려 합니다. 민주주의와 진정한 자유를 위한 전쟁이 다 무엇입니까?
저는 이러한 학살이 이뤄진 지역들 중 한 지역 가까이에 주둔했던 전 중위 윌리엄 칼루프가 이렇게 말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게 전투<후주1>와 똑같았다. 내 의견은 그 이야기를 무시할만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는 평범한 군인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는 그들 모두를 쏴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장교는 피난민 중에 게릴라가 숨어있다고 생각했고, 그 문제를 다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들 모두를 쏴버리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장교와 사병 사이에 계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군 복무 정책은 일반 사병의 감수성을 피폐화시키고 낙후하고 인종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킵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합니다. 독일군들은 보통 독일인이 모든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군에서 장려되는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은 정치인과 민간 지도자들이 내뱉는 말에 불과합니다. 전장에서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복잡한 계급 갈등을 다룰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장교들은 다음과 같이 훈련받습니다. 장교는 사병들보다 더 좋은 숙소, 더 좋은 음식, 더 많은 특권을 소유한다. 이런 특권들은 공짜가 아니다. 너는 체제와 체제가 옹호하는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사병들과 장교들 간에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대의를 열심히 지키는 것은 장군이 된다는 것, 콜린 파월과 노먼 슈워츠코프같은 참모총장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계속 이 학살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항상 그 행동과 정책에 대해 비난을 받았던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 정부도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조소하면서, 이 잔학 행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당시에 그랬고, 여전히 미국의 애완동물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전쟁에서의 미군의 용감성에 대한 이야기, 민주 정부는 결코 잔학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번 폭로는 이러한 주장들이 거짓임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번 사례로 인해, 전쟁 기간 중 민간인에게 가해졌던 공격 유형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도 아닙니다.
잔학 행위는 제국주의 정책이고, 그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외에 어떤 것으로써 이 끊임없는 스캔들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엄청난 민간인, 비전투원이 한국과 베트남에서 학살당했고, 오늘날까지 유고슬라비아에서 행해진 미군의 폭탄 공격으로, 이라크에 재차 투하된 폭탄으로 민간인 수십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미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근리 학살 희생자들의 가족과 다른 많은 이들에게 동정심과 연대감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순박한 남자, 여자, 아이들을 죽인 직접적 원인이 미국 정부의 정책이었으며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나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경험을 회상해야 하며,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노동자도 인정머리 없이 다룰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후주1> 1944년 12월부터 1945년 1월까지 벌어진 2차대전 중의 유명한 전투로 독일군의 최후의 반격이었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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