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협하는 WTO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자유무역을 통한 전세계적 경제통합이 선진공업국가와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다수의 희생을 통해 특권적인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우려한다.

북이 남의 생산물과 원료를 위한 시장을 제공하여 한다면, 북의 자본가들은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해 훨씬 더 부유해져야 한다.

<세계은행 경제분석가들의 보고서에서>

당초 예상했던 대로 시애틀에서의 회담은 농업 부분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대륙간, 국가간 의견이 엇갈려 결국 선언문 채택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은 아니다. 이전 다자간투자협정(MAI) 때도 그랬지만 앞으로 이 부분은 반드시 다시 논의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관철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한판을 벌였던 민중운동의 성과는 무한경쟁으로 민중들의 씨를 말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총공세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전세계 민중

들이 더 이상은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 민중들은 우려하고 있다. 전면적인 국제무역기구(WTO)체제가 가져올 부작용들을.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버리는 환경을, 생명을, 대다수의 빈곤을. 강대국 몇몇 부자들을 위해 가동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WTO체제가 가지고 올 재앙은 다양하다. 이미 스크린쿼터 문제로 지난 여름 영화인들의 시위가 줄을 이었고 소주값이 내년부터 인상되는 등 벌써부터 자유화, 개방화의 입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자유화, 개방화는 필수이기 때문에 더 많은 문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우리 민중들은 자꾸만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유독 자유화, 개방화 체제 속에서 모순되게도 군사부분에서만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등의 예외를 두고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는 세계를 빈곤으로 빠뜨렸고, 쟁을 조장했으며, 생태계를 파괴시켰고, 문화적 다양성을 제거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전세계의 평화는 이뤄질 수 없다.

정부·기업·군부 간의 삼자관계는 특히나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단상황에서 군축이나 통일, 평화 등등을 운운하는 것은 간첩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문이다. 그래서 항상 한국의 군대와 군부는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었고 비리의 온상이었다. 이번 국감 모니터 과정에서도 보여졌듯이 군사기밀이란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삼성, 현대, 대우, 대한항공 등의 굴지의 기업들은 나름대로 국제 무기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의 지원금을 필요로 한다. 이런 지원금은 주로 군부를 통해 전달된다. 군부는 이런 기업들에게 고도의 기술을 의존하게 되고 그 비용은 정부가 지불한다. 최종적으로 정부는 연구·개발 지원, 세금 혜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군비 지출을 통해서 기업들로부터는 정치적 지지를, 강력한 군대를 통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이해를 다른 약소국가에 강요할 수 있는 국제적 지위를 얻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어느 날 이 삼자의 수뇌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굳건한 형제가 되자고 맹세한다. 잘 먹고 잘 살아보세. 셋 중의 하나가 제안한다. 좀 더 많은 무기들을 팔아치우려면 우리는 정부의 보조금과 보호정책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우리 무기를 수입하는 나라들에서는 이런 시덥잖은 정책으로 배짱을 튕기면 곤란하지 않수? 어떻게 하지? 뭐 뾰족한 수가 없을까?대답은 분명해진다. 자유 무역, 투자 협정 협상을 진행하면서 군비 지출은 협정의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오직 부유한 나라들만이 수십억의 군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기업들에 군수 계약을 통한 은밀한 지원을 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 우위의 산업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유한 나라들일수록 개발도상국가에 값비싼 최첨단 무기를 팔아먹기 좋고 우리 나라같이 그저 그런 나라는 더 못하는 나라나, 아니면 분쟁지역에 적은 돈으로 생산이 가능한 소형무기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재래식 소형무기는 오늘날 부분의 무력 분쟁에서 사람을 살상하는데 사용되고 있고 전체 희생자 중 90%가 소형 무기에 의한 것이라 한다. 소형 무기의 시장 규모는 매년 30억 달러 정도이다. 이런 시장성 때문에 군산복합체에서는 재래식 무기 생산을 줄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이런 심각한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군사안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신흥공업국과 후발 신흥공업국의 경제력이 성장하게 된 데 기인한다. 게다가 유럽처럼 지역적 안보체제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기 무역을 통제하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국제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 무기거래 부분을 비롯하여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정부 프로그램이나 정책들에는 예외를 두는 조항을 찾을 수 있다(MAI에 나와있는 조항을 인용하자면 협약당사국들은 필요불가결한 안보상의 이해를 위해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있다). 협정 상에 이러한 조항을 두게 될 모든 국가들의 장래는 전쟁과 빈곤이 만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대두되고 있는 국가가 개입해야 할 사회 공공영역들은 줄어들게 될 것이며 자국의 산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대신 구조조정, 시장화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국가가 개입하는 부분도 빌어먹을 시장화, 자유경쟁이라는 논리에 의해 점점 사라져갈 것이며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나라라도 이러한 경제 질서에 도전한다면, 금융부문에 있어 목줄을 죔과 동시에 군사적 행동이 금지된 행동을 막아낼 최종적 해결책으로 동원될 것이다.

이렇게 한편으론 세계화, 자유화를 다른 한편으론 국가의 정당한 개입과 지원을 쥐고 흔드는 WTO 체제는 기존의 여러 협정이나 라운드와는 차별화된다. 이 WTO를 낳게 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을 보자면 투자, 서비스교역, 지적재산권, 비관세방벽 등과 같은 문제의 해결까지도 포괄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즉 WTO는 지금까지의 국제적 경제협정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WTO의 최우선 목적은 전 지구적 차원에 있어서 아무런 제한없이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국의 특정 부분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한 국내법이나 지역적 환경체계들과 같은 장애들은 해체되어져야만 할 무역장벽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그 속에 매우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의 포함하고 있는데, 널리 알려져 있는 국가 규제를 대체하는 시장적 조절, 자본에 우호적인 경제적 재분배 이외에도 이상화된 가족을 핵심에 담고 있는 도덕적 권위주의, 자유무역의 원리(위에서 보이듯이 때때로 모순적으로 적용되기도 하는) 그리고 노조에 대한 철저한 불관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병든 세계를 치유할 불가사의한 힘을 “시장”에 부여한다. 또한 때에 따라서 경기 변동에 영향을 주기 위해 종종 국가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시장의 힘을 억제하기보다는 그 힘을 보다 더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 국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게 압력을 행사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노동비용, 특히 노동계급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단순히 경제적으로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소득격차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으로부터 자본가 계급으로의 소득 재분배가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자본과 부유층에 부를 집중시키는 전세계적 소득 재분배는 가속화되어 1960년부터 1991년 사이에 전세계 인구의 상위 20%가 점유한 전세계 수입은 30%에서 60%로 두 배나 증가했다. 이제 백만장자가 아닌 억만장자의 수가 미국에서만 1982년 13명에서 1996년 149명으로 늘어났으며 45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계 억만장자 클럽’은 세계 인구의 56%를 거느린 저소득 국가집단의 국내총생산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적 유통회사 월마트를 소유한 월튼가의 사재는 270억 달러로 1억 2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방글라데시의 국내총생산액과 맞먹는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소수의 부를 위해 무한경쟁을 조장한다. 이것은 WTO와 같은 국제기구에 의해서 보장받고 있다. 세계의 식량공급에 대한 독점적 통제를 획득하기 위해서 초국적 기업들은 국제사회에 압력을 행사하고 WTO와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생명특허의 도입을 통해 유전자 자원을 통틀어서 장악하고 있고 동식물과 인간의 일부분, 그리고 유전자와 같은 생명형태들을 포함하는 지적재산권의 도입 등 상식을 넘어선 행동들이 부를 위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중을 보다 소수의 자원들, 소수의 일자리, 적은 토지 등으로 더욱 심각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지구적 자본의 분열적인 본성은 우리 민중들의 단결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시애틀에서 드러난 강대국과 제 3세계 NGO사이의 이러한 의견의 차이들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먹고 살기 힘든 입장에서 환경이나 문화적인 문제 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러한 남과 북 양쪽에서의 지구화는 다양한 운동 형태로 표출된다. 이러한 다양화는 우리의 강점임과 동시에 우리의 약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상이함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대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불타고 있는 시애틀과 전세계 주요 대도시 화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유독 조용하기만 한 서울을 본다. 이런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적인 힘이 아닐까 한다. 공동으로 잘 살기 위해서 소수만 잘 사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없어져야 한다. 모두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들은 꼭 필요한 것이며, 인간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태계와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무조건적인 개발보다는 생태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우리 인간들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자유화, 개방화 과정이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 여성,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렇게 경제지표는 올라가고 있지만 과연 우리 서민들의 생활은 나아지고나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