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슈르케(Jeff Schurhke)는 ⟪블루칼라 제국: 미국 노동의 글로컬 반공 십자군 이야기⟫(Blue Collar Empire:The Untold Story of US Labor’s GlobaL Anti-Communist)을 통해 전 세계 노동 연맹과 운동을 분열시키고, 대체하며, 파괴하기 위해 AFL-CIO((미국 노동총연맹-산별노조회의)가 수십 년 동안 벌인 파괴적인 행동을 명확하고 꼼꼼하게 문서화한 설명을 제공했다. 이러한 공격은 항상 공산주의와 싸우고 자유 노동조합주의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다. 자유 노동조합주의는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노동조합을 의미했다. 그러나 실제로 AFL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슈르케는 AFL이 "노동운동을 워싱턴 외교 정책 기구의 부속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AFL은 해외 사업 자금을 미국 정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에 도전하는 노동 단체를 공격했다.
이 이야기가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언론인, 활동가 학자, 역사학자들이 AFL-CIO의 은밀한 관행을 폭로해 왔다. 예를 들어, 나는 1970년대에 칠레에서의 AFL-CIO 활동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며 AFL 고위 관리, 국무부 관계자, 그리고 국제노동비서국(International Trade Secretariats)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나 이 책은 거의 모든 AFL의 캠페인을 다루며, 이를 현재까지 연결짓는 보다 완전한 세계적 이야기를 제공한다. 또한 오늘날의 연대 센터(Solidarity Center)와 그 지속적인 전복 활동 및 반공주의와의 연계를 논의하고 있다.
슈르케의 연구는 지난 75년 동안 미국 노동조합의 힘이 쇠퇴한 원인을 이해하려면, AFL-CIO가 미국 대외 정책 목표를 고수하고 다른 나라 주요 노동운동에 반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노동 운동을 약화시켰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슈르케는 AFL이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활동했다고 지적한다. 국내 반공주의 캠페인은 전체 노조와 수만 명의 조합원을 제명하고, 진보적 노조를 습격하며, 대체 조직을 설립하고,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1947년 미국에서 제정된 노동법으로, 공식 명칭은 ‘노동관리관계법’(Labor Management Relations Act)이다.)에 반공주의 조항을 삽입하면서 미국 노동조합과 노동의 힘을 약화시켰다. AFL은 경영진에 협조한다는 명목으로 국내에서 전투적인 목소리와 행동을 억압했다. 한때 35%에 달했던 미국의 조직 노동력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 노동력의 10%만을 차지한다.
슈르케는 이 책에서 19세기에 시작된 중심 이야기를 다루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중점을 둔다. 그는 각 장을 시간순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제1부는 1945-1960년 자유 노동조합주의, 제2부는 1960-1973년 자유 노동 발전, 제3부는 1973-1995년 자유 시장 혁명을 다룬다. 결론에서는 연대 센터의 현재 관행에 대해 논의한다.
초기 연맹은 정부, 대기업, 대기업 노동이 함께 일하는 3자주의(trilateralism)의 신봉자가 되었다. 슈르케는 계급 투쟁이 아닌 계급 협력이 AFL의 활동을 주도했다고 설명한다. 제이 러브스톤, 어빙 브라운, 라틴 아메리카의 세라피노 로무알디 등은 AFL의 핵심 국제 요원으로,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한 AFL의 전략을 개발했다. 이 전략은 주요 노동 연맹에 들어가 친미 성향의 노조원들의 충성도를 파악하고 매수한 다음, 그들이 노조를 장악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만약 실패할 경우, AFL은 위장 재단과 유럽에 기반을 둔 국제무역사무국(ITS)을 통로로 삼아 미국 정부의 국제개발처(AID)와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또 다른 조직을 설립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일반노동총동맹(CGT)에서 AFL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포스 오브리에(Force Ouvriere)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조직은 회원 수를 크게 늘리지 못했다고 슈르케는 설명한다.
모든 핵심 인물은 노동 및 정보 기관에 이중으로 충성했으며, 종종 두 기관에서 고용 관계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로무알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 서비스국(CIA의 전신)에서 근무했다.
슈르케는 중남미와 카리브해에서 수행된 AFL 성전의 정점으로 1961-62년 미국 자유노동개발연구소(AIFLD)가 진보동맹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시점을 꼽는다.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하자, 노동계의 냉전 전사들은 교육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연구소를 통해 활동을 강화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AIFLD는 국내외에서 수천 건의 세미나와 수업을 개최하며 친미적인 노동자들을 훈련시켰다.
AIFLD는 가장 '유능한'(즉, 친미적인) 노동자들을 미국 버지니아주 프론트로얄에 위치한 교육 센터로 데려와 훈련을 시켰다. 훈련을 받은 노동자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슈르케는 AIFLD가 단체 교섭, 미국 노동 역사, 경제학에 중점을 두면서도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와 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AIFLD의 대표직을 맡았던 빌 도허티(Bill Doherty)는 1996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 교섭을 하고 노조를 결성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하지 않는다. 우리는 CIO 시절과 AFL 초기에 노조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어떻게 몰아내야 했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AIFLD의 교육 이사였던 빌 더글러스(Bill Douglas)는 "우리는 독립 노조와 함께 일하려 했으며, 실제로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AIFLD는 노동자들에게 주택과 신용 조합을 제공하기 위해 사회 프로젝트 부서를 설립했다. AFL-CIO는 이 사업이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홍보했다. 슈르케는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유익한 점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1964~65년 동안 평화를 위한 식량 프로그램 수립을 담당했던 조셉 팔리시(Joseph Palisi)는 AIFLD의 주택 프로젝트를 "가장 추악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팔리시는 "그들이 보낸 설문지를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설문지는 지역 노조와 노동자의 정치적 성향, 조직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그는 AIFLD의 주택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인사가 군 출신 대령이었다고 덧붙였다. 팔리시는 "퇴역한 공군 대령이 인사 담당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군 정보 업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슈르케는 AFL-CIO와 CIA 정보 기관 간의 긴밀한 관계를 잘 설명했지만, 군 정보가 수행한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AIFLD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친미 및 반미 노동자들의 명단을 수집했고, 이를 해당 국가의 우익 세력과 공유했다. 이로 인해 대개 군사 쿠데타와 독재 정권이 수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칠레의 경우가 가장 많이 기록된 사례 중 하나이다. 슈르케는 AFL-CIO가 쿠데타 세력과 직접 협력했으며, 파업을 조직해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슈르케는 AIFLD의 활동이 AFL-CIO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사악했음을 시사한다. AFL-CIO가 지원한 독재 정권 아래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가 살해당하거나 투옥된 국가들은 브라질, 가이아나, 도미니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이 포함된다. AFL-CIO의 냉전 전사들은 우익 세력과 협력하며 작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노조와 노동자들의 이름을 파악하고 이를 정보 수집과 작전 수행에 활용했다.
AIFLD에 이어 AFL-CIO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사한 프로그램과 목표를 가진 두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하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 센터였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자유 노동 연구소였다.
미국의 대다수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지금도 대부분 모른다. 그러나 일부 노동자들과 노조는 이를 알고 나서 항의했다. 슈르케는 1980년대 초 엘살바도르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지하는 전국노동위원회(NLC)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NLC가 어떻게 AFL-CIO의 관행을 폭로하고, 주요 AFL 대회에서 대립을 촉발시켰는지를 설명한다. 전국 대회에서 켄 블레이록(Ken Blaylock, AFGE(미국 연방 정부 직원 노조) 위원장)은 연맹을 비판하며 "이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를 보라. 우리 정부가 한 번만이라도 국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FL을 겨냥해 "미국 노동운동이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TV 진행자이자 미국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회장인 에드 애스너(Ed Asner)는 “노동조합이 잔혹하고 억압적인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은 전 세계 노동 연대의 시금석이었다. 서부 해안의 항만하역노동자(Longshoremen)들은 남아공 화물의 하역을 거부했다. 그러나 AFL-CIO는 보이콧 및 투자 철회 운동을 지지하지 않았고, 기업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입장을 취했다. 연맹은 1986년에야 입장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소와 캠페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AFL과 CIA의 협력, 제3세계에서 AFL 활동이 초래한 살인적인 결과가 끊임없이 폭로되고, 의회와 국무부의 비판이 거세지자, AFL-CIO는 외형적 변화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화는 뉴보이스(New Voices)가 AFL-CIO의 지도부로 부상하면서 이루어졌으며, AFL은 1996년에 세 개의 연구소를 해체하고 이를 통합하여 미국 노동연대센터(American Center of Labor Solidarity)라는 새로운 기관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이니셔티브 자체는 AFL 내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슈르케는 넬슨 배스(Nelson Bass)의 연대 센터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는 AFL-CIO가 지역 연구소를 새로운 단일 글로벌 연구소로 통합하고, 전 세계적 및 특정 지역 내에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노동 프로그램의 감독을 개선하고, 기관의 우선순위에 따라 관리 및 할당하려는 USAID의 자체 노력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강조는 필자)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 노동자의 권리와 일자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자, AFL은 대외적인 초점을 인권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AFL-CIO의 국제 담당 이사인 바바라 셰일러(Barbara Shailor)는 전미전기노조(International Brotherhood of Electrical Workers)의 정치국장 크리스 타운센드(Chris Townsend)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무부는 석유 자원이나 이슬람 반군이 있는 나라에서 연대 센터의 활동을 통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진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AFL은 정부로부터 독립하여 "자유 노동조합주의"를 주장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오늘날까지 AFL-CIO는 전 세계와 미국 내 노동조합 및 노동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 외교 정책 우선순위와의 관계를 끊지도 않았다. 슈르케의 문서에 따르면, AFL-CIO의 국제 활동은 여전히 주로 미국 정부의 원조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CIA의 전선 조직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기부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연맹은 미국에서 가장 확고한 반공주의 기관이기도 했다"라고 슈르케는 결론짓는다. "노동계 고위 관리들은 기업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군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고, 국내외에서 진정한 노조 민주주의를 장려하기보다 워싱턴의 외교 정책 기구 및 때로는 미국 기업과의 불건전한 동맹을 유지함으로써, 전 세계 계급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자 운동을 약화시켰다."
노동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AFL-CIO의 파괴적인 관행에 대한 이 이야기를 수업에 포함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출처] 블루칼라 제국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루스 니들먼(Ruth Needleman)은 인디애나대학교 노동학 명예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