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정치권의 후보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Rafał Trzaskowski)는 폴란드의 중도적이며 친유럽적인 대통령이 되기에 완벽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극우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Karol Nawrocki)에게 패배했다. 이 패배는 자유주의 기성 권력이 중산층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지지를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카롤 나브로츠키(Karol Nawrocki) 페이스북
폴란드 안팎의 논평가들을 놀라게 하며, 도날트 투스크(Donald Tusk) 총리가 지지한 고학력에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자유주의자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Rafał Trzaskowski)는 폴란드의 차기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유럽의회 의원, 장관, 바르샤바 시장, 시민연단(Civic Platform, PO)의 부대표를 지낸 트샤스코프스키는 1989년 이후 이 지역에서 서방 엘리트들이 찬양해 온 모든 것을 구현했다. 그는 기술관료적 능력, 대서양주의적 자격,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대표했다.
그의 상대였던 카롤 나브로츠키는 선거운동 내내 대체로 ‘밈’처럼 취급받았다. 국영 기관인 ‘국가기억연구소’(Institute of National Remembrance)의 수장인 그는 수년 동안 집요한 반공주의 아젠다를 밀어붙였고, 종종 폴란드의 양차대전 사이 및 전후의 극우 저항 단체들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역사 수정주의에 그치지 않았다. 나브로츠키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구설수 많은 과거를 지녔다. 그는 1990년대 그단스크 마피아와의 연루 의혹, 축구 훌리건 조직과의 연결, 불법 아파트 탈환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쨌든, 그는 TV 토론회 내내 스누스(snus, 무연 씹는 담배)를 씹으며 등장했고, 트샤스코프스키가 대표하는 깔끔한 자유주의 전문 계급과는 정반대의 인물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결정적인 승리였다. 이 선거는 단지 하나의 선거 캠페인 패배가 아니라, 1989년 이후 중부유럽이 자유주의적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는 서사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트샤스코프스키는 훨씬 더 큰 선거 조직과 공영 언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자유주의 진영은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Jarosław Kaczyński)가 이끄는 민족보수 정당인 법과정의당(PiS)은 형편없는 후보를 내세웠지만, 그래도 승리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자유주의가 이 지역에서 얼마나 붕괴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흐름이 어떻게 반전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루마니아에서 친EU 성향의 보수파 니쿠쇼르 단(Nicușor Dan)이 승리한 일처럼 중도파들에게는 희망적인 신호가 있을 수 있지만, 보다 넓은 지역적 추세는 이를 감추지 못한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세르비아는 더욱 권위주의로 향하고 있고, 러시아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1차 투표에서 20% 이상의 폴란드 유권자들이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푸틴 지지 성향의 후보들에게 투표했다.
그렇다면 카롤 나브로츠키는 누구인가? 그는 지역의 역사가에서 정치 조직가로 변신한 인물이며, 그단스크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 관장을 지냈고, 2021년부터 국가기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혐오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 저속함, 연줄 정치, 반동적 향수다. 그는 그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의 슬로건은 “폴란드 우선, 폴란드인 우선”이었다. 그의 페르소나는 “살과 피로 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자수성가형 남성이었다. 최종 TV 토론에서 그는 트샤스코프스키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역대기>(구약성경)를 인용했다.
그는 결국 승리했다. 그리고 그 승리는 대부분 트샤스코프스키가 스스로 선거운동을 망친 탓이었다.
자유주의 연합의 실패는 여러 가지였다. 투스크의 팀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회복을 내세워 선거운동을 펼쳤지만, 2023년 10월 정권을 잡은 지 몇 달 만에 그들의 행정부는 각종 스캔들에 휘말렸다. 이 스캔들은 영어권 언론에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폴란드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폴란드 주요 뉴스 포털 중 하나인 <위르투알나 폴스카>(Wirtualna Polska)의 기자 슈몬 야드차크(Szymon Jadczak)는 검찰청이 로만 기에르티흐(Roman Giertych) 같은 투스크계 정치인(이전 극우 활동 경력 보유자)에 관한 문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영 또는 국가와 연계된 재단들(예: 악차 데모크라차 Akcja Demokracja)은 공공 자금 배분 방식에 대한 질문을 회피했다. 선거 개입 관련 보도는 법적 기술성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전 PiS 정권의 선전기관을 대체하겠다고 세운 새로운 공영 방송은 독립 언론 대신 당파적 허위 보도를 내보냈다.
법치와 투명성을 약속하고 집권한 연합에 이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친정부 성향의 학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예외 상태(state of exception)’ 이론을 인용하며 이런 위법 행위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그들이 내세운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법은 유예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투스크가 약속한 신자유주의식 ‘완전한 규제철폐’도, 보다 근본적인 경제 개편도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급진적 변화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은 수사 이상의 것은 얻지 못했다.
예상대로, 투스크가 총리가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지지율은 코로나19 위기 당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Mateusz Morawiecki,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총리를 지낸 인물)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브로츠키 같은 후보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의 승리와 함께 1989년 이후 이어진 중부유럽 자유주의의 꿈은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2025년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나브로츠키가 예상을 깨고 승리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언제나 그렇듯 계급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 언론과 국제 언론이 보인 충격은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전혀 놀랍지 않은 사건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대중 계급에 물질적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는 자유주의 정권은, 언젠가 그 모순의 무게 아래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공백 속에서 질서, 정체성, 허위의 민족 공동체를 약속하는 극우 세력이 번성하게 된다.
내가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듯, 폴란드 여론조사 기관들은 계급을 일관적이거나 구조적으로 추적하지 않는다. 특히 교육과 정체성(더 정확히는 전반적인 생활양식)의 측면에서 계급을 정의해야 할 때, 생산수단과의 관계만으로는 계급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직업 분류와 교육 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패턴을 추론할 수 있다. 이번 TVN24 등 방송사 연합이 의뢰한 입소스 출구조사는 드물게도 아주 분명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 자료는 계급 간 명확한 구분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교육만 받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나브로츠키는 73.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직업학교 교육을 받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68.3%를 얻으며 우위를 점했다. 트샤스코프스키에 대한 지지는 고등교육 이후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해당 계층에서는 두 후보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오직 대학 교육을 받은 집단에서만 트샤스코프스키는 62.6%로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 이 패턴은 익숙하다. 정규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유주의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권위주의적 극우로의 전환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직업군 분류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브로츠키는 농민(84.6%)과 육체노동자(68.4%)들 사이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실업자(64.7%)와 연금 수령자(50.5%)들 사이에서도 그는 우위를 점했다. 반면 트샤스코프스키는 도시 중산층—전문직, 관리자, 학생—들 사이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 흥미롭게도 자유주의자들이 자주 공략하려 하는 소상공인 집단에서도 나브로츠키는 57.1%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그의 진짜 지지 기반이 단순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상대적 지위가 위협받고 자유주의 질서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 분절된 하위 중산층임을 보여준다.
몇몇 폴란드 좌파 지식인들은 ‘민중의 정치’에 대한 향수에서 나브로츠키의 승리를 민주주의적 균형 회복이라고 환영했다. 이는 카친스키의 정당이 민중주의적이고 반엘리트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비슷하게, 동유럽의 일부 반동적 좌파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어떤 향수를 품는다). 이런 좌파는 특히 1990년대 전환기에 권력을 잡았고 ‘보통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경멸하는 경우가 많았던 자유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은 민중 권력의 급등이 아니라, 소시민적 분노의 정치적 표현이다. 나브로츠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조직 노동이나 집합적 노동계급의 주체가 아니라, 시골의 고립된 개인들, 위협받는 재산 소유자들,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상승 경로를 잃은 이들이었다.
이는 권위주의의 돌파 시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전적 패턴이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상향 이동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굳어진 엘리트에 의해 실질적 경제 참여에서 배제된 소부르주아지는 결국 우익으로 전향한다. 이런 점에서 나브로츠키의 승리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사례와 같은 역학을 반영한다. 이는 대중의 반란이라기보다, 사회주의가 아닌, 성과를 제공하지 못한 자유주의에 의해 ‘버림받은’ 지방 계층의 공포 반응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선거는 의제나 비전의 경쟁이 아니었다. 나브로츠키는 상징으로 출마했다. 그는 민중의 사내, 싸움꾼, 엘리트를 경멸하는 민족주의자로 나섰다. 그의 슬로건 “폴란드 우선, 폴란드인 우선”은 박탈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트샤스코프스키는 기술관료로서의 자격을 갖췄지만, 그가 대표한 것은 오직 ‘지속’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지속이란 곧 정체였다. 그의 캠페인은 스캔들, 위선, 법적 기술성을 이용한 공적 검열 회피로 얼룩졌다. 유권자들은 법과 정의당(PiS) 집권기 이후 “법치 회복”을 약속받았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은 동일한 불투명함과 회피, 단지 얼굴만 바뀐 시스템이었다.
결선 투표 시점에는 이미 투스크 정부가 정당성을 잃은 상태였다. 개혁은 멈췄고, 약속은 사라졌다. 유럽식 입헌주의, 예의와 합의를 통한 통치라는 자유주의의 꿈은 시험대에 올랐고, 실패했다. 그 결과는 반발이었다. 그것은 파시스트 대중이 아니라,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조건부 충성만 해오던 계층이 일으킨 반동이었다.
폴란드가 국제 극우 흐름으로 기울어졌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나브로츠키의 승리에 도널드 트럼프는 “축하한다 폴란드, 승자를 뽑았다!”는 트윗으로 응답했다.
그가 이상으로 삼는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었다. 개표 결과가 발표된 밤, 나브로츠키는 <역대기하> 7장 14절을 인용했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많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 이 선언은 신성모독에 가까웠지만, 이는 이 지역 극우 지도자들의 공감을 끌어냈고, 그들은 나브로츠키에게 따뜻한 축하 인사를 보냈다.
이 결과는 단지 폴란드 내부 정치의 충돌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지역적 현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가을 체코 공화국 총선이 예정된 가운데, 여론조사와 사회 분위기는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가 이끄는 극우적 소부르주아 운동이 승리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1989년 이후 자유주의 질서가 보여준 깊은 위기를 강조한다. 이 질서는 소외된 이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급진적 대안들에 의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출처] In Poland, Liberalism Takes Yet Another Hi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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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시슈토프 카트코프스키(Krzysztof Katkowski)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평론가이자 사회학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