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배우자 ‘오류’ 처리했던 인구주택총조사… 올해부터 달라진다

오는 22일 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실시되는 ‘2025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성별이 같더라도 가구주와의 관계를 ‘배우자’ 또는 ‘비혼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로 응답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20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와 가구주의 관계를 ‘배우자’로 선택하고 두 사람이 같은 성별이라 기재했을 때 ‘오류’ 메지가 노출되도록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어 ‘동성 배우자’의 존재를 응답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인구주택총조사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인구·가구·주택을 대상으로 5년마다 실시하는 국가 기본통계 조사로, 국가 정책 수립 및 평가, 학술연구 등에 필수적인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는 10월 2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전국 가구의 20%를 응답 표본 가구로 선정해 인터넷·전화조사와 방문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2월 14일, 헌재 앞에서 열린 '혼인평등헌법소원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성소수자 시민의 존재와 삶 지워온 국가 기본 통계 

동성 배우자와 7년 차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소성욱씨는 21일 <참세상>에 “한국사회에 어떤 시민들이 어떻게 관계맺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살펴야, 그들의 삶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성소수자 시민들은 ‘우리는 여기 있다’라고 존재를 밝히려 노력해도, 국가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통계에서조차 우리의 삶을 집계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존재를 지우고 정책에서 배제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씨는 이번 변화가 “동성 부부뿐만이 아니라 국가 통계가 집계하지 않아 왔던 다양한 이들의 삶을 더 면밀하게 조사하고, 이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들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요구하고 함께 싸워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라며 “(응답가구로 선정된) 많은 성소수자 가족들이 자신들의 삶과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답해서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통계로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론 한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대법원의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국가 정책에 모든 이들의 삶을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

이 변화는 혼인평등을 위한 시민사회 캠페인 조직인 ‘모두의 결혼’과 함께 혼인평등 소송을 진행 중인 ‘동성 부부’ 당사자들 중 이번 인구주택총조사의 응답가구로 선정된 이들을 통해서 확인됐다.

‘모두의 결혼’ 이호림 활동가는 <참세상>과의 대화에서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해 국가가 여러 정책 목적으로 수행하는 조사들은 정책 대상인 사람들의 사람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동성 부부를 비롯해 비혼 동거인 등 실제 존재하는 여러 삶의 관계들을 응답에서 배제하면서 “이들의 존재와 삶 자체를 정책에 반영할 여지가 완전히 닫혀 있었던 것”이라며, “이번 조사의 변화된 방식은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가구들의 삶을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한편, 이 활동가는 “동성 부부, 성소수자 가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관계를 이번 조사에서 있는 그대로 기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을 텐데, 통계청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하고, “이 사실이 더 널리 적극적으로 알려져 동성부부, 비혼 동거 커플 등 동성이든 이성이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살아가고 있는지가 국가의 기본 정책 자료에서 가시화 된다면, 이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동성혼 법제화나 생활동반자법 제정 등의 변화들을 더 적극적으로 정부가 추진 해야 한다는 근거를 사회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변화가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동성 배우자 응답을 제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의 문제는)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통계청이 지적을 받았던 부분이고,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을 비롯해 시민사회에 꾸준히 사회조사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문항들을 포함하고 인구주택 총조사에서의 가족 관계에 관련한 항목에 동성 부부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도록 하라는 요구를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온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 국감서 “국가 정책의 근거가 되는 통계”의 명백한 차별” 지적돼 

지난 2020년 10월 당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강신욱 통계청장에게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배우자의 성별을 동성으로 응답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국가 정책에 근간이 되는 인구주택총조사가 우리 사회의 차별을 걸러내지는 못할망정 차별적인 인식에 휘둘린다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가” 질의했다.

이에 대해 강 통계청장은 “인구주택총조사의 내검 규칙을 보니 동성 배우자라고 대답하신 분들이 추가 입력이 안 되게 설정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그 부분은 저희가 전자조사 시스템을 설계할 때 세심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강 청장은 “저희가 통계를 통해 누군가를 차별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라며 “배우자의 성별을 어떻게 대답했냐에 따라서 다른 응답까지 반영하지 못하게 된 점은 시스템 설계상 사려 깊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향후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도 이야기했다.

장 의원은 당시 “가장 극단적인 차별 중 하나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면서 “통계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통계를 근거로 수집되는 보건, 주거, 교육 등 모든 국가 정책에서 소외된다는 뜻이고 예산으로부터 소외된다는 뜻”이라고 지적하고, “성소수자 국민도 평범한 국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동하고 세금을 내면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며 “국가 정책의 근거가 되는 통계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법적 혼인 여부, 가구주 성별과 관계없이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가구에 대한 특별조사를 내년 중 시행하고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는 가구주와 배우자 성별이 같은 가구가 ‘기타 동거인‘이 아닌 ‘배우자’로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를 직접 지휘해달라”고 촉구했었다.

성별 선택지 개선과 차별금지법 제정 과제도

장혜영 전 의원(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은 <참세상>에 “이번 인구주택총조사의 변화는 대한민국 사회에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성 부부 혹은 배우자가 얼마나 있는지 공식적인 성소수자 인구 통계가 생긴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이런 변화는 “성소수자인 시민에 대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그 정책의 언어인 통계가 필요하고 그 통계를 만들기 위해서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이 함께 노력해 왔었던 것이 마침내 반영된 것”이라고 배경을 짚었다.

또한 가구주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실제 성소수자 인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성별 통계에 있어서도 남성과 여성만이 아니라 그 밖의 성별도 응답할 수 있는 선택지를 두는 것도 이번에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변화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말 중요한 정책을 만들 때 성소수자 시민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통계가 없으면 정책의 대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관련 통계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인구주택 총조사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 행정 작용의 하나인데 어떻게 보면 이번 변화는그동안 국가 통계 시스템에 존재해 왔던 성소수자 차별을 해소하는 것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차별금지법의 굉장히 중요한 파트 중 하나가 국가와 지자체에 차별 시정 의무를 부과하고 차별시정 기본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서 시행하도록 만드는 게 것”이고 “기존에 시행되고 있었던 법률이나 정책들 중에서 이 법에 비추어서 차별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자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이 돼 있다”라며 “이제 인구주택총조사와 같은 개별적인 부분들의 문제를 지적해서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역시 이번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정의당도 저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이후의 과제도 밝혔다.

국가데이터처 “자료 입력이 첫 단추, 통계화까지는 신중한 접근 필요해”

한편 인구주택총조사를 담당하는 국가데이터 인구총조사과 관계자는 21일 이번 변화의 배경과 의미를 묻는 <참세상>의 질문에 대해 “기존 조사에서 동성 배우자 관계의 입력을 막아놓았던 이유 중 하나는 민법상 혼인이 이성 간의 관계로 규정되어 있어서 국가 통계 자료의 처리도 그 기준에 따랐던 것”이라며 “여러 전문가들도 관련한 통계 조사 항목의 개선을 위해서는 동성혼 법제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다수 제기해 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 동성 배우자 관계 등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대규모 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도 지속되어 온 흐름이 있어, “우선 이번 조사를 통해 응답자들이 자료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면서 “다만 입력된 자료들이 실제 통계 수치로 사회화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입력된 자료의 오류를 검토하는 등 자료처리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그러면서 “동성 배우자 관계에 대한 응답들이 당장 통계화되어 관련 정책 수립 과정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국가데이터처가 해당 개선사항을 적극 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를 인지하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내부에서도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이번 시도를 첫 단추로 삼아 앞으로 여러 논의와 노력들을 이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동성부부・성소수자 가족의 인구주택총조사 참여방법을 안내하는 카드뉴스. 모두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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