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시아 혁명의 희망과 좌절’ 토론회에 함께합시다

‘러시아 혁명의 희망과 좌절’ 토론회에 함께합시다

작년 11 월 말, MBC 에서 러시아 혁명 90 주년을 맞이하여 5 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습니다. 또, 12월 29일자 <문화일보> 는 2007년 기억해야할 역사 속 사건의 첫 번째로 ‘러시아 혁명 90주년’ 을 꼽았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러시아 혁명을 단순히 지나간 역사속의 사건들로 취급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러한 기획물과 기사를 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1917 년의 러시아 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많이 다르며, 아직도 러시아 혁명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속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자본의 지배는 시대가 발전하는 만큼 그 방식도 진화하여 오히려 지금이야 말로 국제적인 자본이 전 세계에 걸쳐 민중을 억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항하여 1999 년 시애틀의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시작된 반 신자유주의 운동 역시 반전운동과 결합하며 국제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2004 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에서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는 구호가 전면에 등장했고, 라틴아메리카 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수탈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거센 투쟁의 성과로 우파 정권들이 쫓겨나는

마녀사냥 중단하고 연행한 전교조 교사들을 석방하라!

마녀사냥 중단하고 연행한 전교조 교사들을 석방하라!

맞불29호 (기사 입력일 : 2007년 01월 23일) 마녀사냥 중단하고 연행한 전교조 교사들을 석방하라! 20일 보안경찰은 전교조 교사 두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 사유는 한 편의 코미디다. 두 교사를 “구속하지 않으면 [이들이] 전교조 사무실 내에 잠입하거나 지하 친북세력과 연계될 것이며, 백지 상태인 어린 학생에게 통일 교육을 세뇌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응답해 <조선일보>는 “‘사상의 백지 상태’에 있는 어린 학생들을 의식화 교육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마녀사냥에 나섰다. 경찰은 탄압의 빌미를 잡기 위해 두 교사가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글들을 소지․배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이적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사상․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북한의 선군정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토론할 문제이지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다. 보안경찰이 압수 목록으로 나열한 글들은 대부분 전교조 통일위원회 인터넷 카페의 내부 토론용 자료들이다. 보안경찰은 비공개 카페를 몰래 불법 사찰해 온 것이다. 우익은 이른바 ‘전교조 지침서’가 “편향된 세뇌교육 자료”라고 한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전교조 지침서’ 내용을 거두절미해 ‘북한 찬양 세뇌교육 지침’으로 둔갑시켰다. 그러나 이 ‘지침서’는 전교조 통일위원회의 공식

만인의 블로그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대하라!

만인의 블로그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대하라!

어디로 가십니까? 에테르도감님…. 만인의 블로그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대하라! 2007년 블로거뉴스와 블로거기자가 바라는 것은? 2007년 블로거뉴스 포럼과 2006년 블로거기자상 수상식 어제 강남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미디어다음 블로거기자단 교육 이후로 처음입니다 . 머 놀러간 건 아니고, 미디어다음에서 주최한 ‘2007년 블로거뉴스 포럼 ‘과 ‘2006년 블로거기자상’ 수상 때문이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늦어 강남역에서 양재역사이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 건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길에,엘레베이터 앞에서 만난 미몹 블로그, 오픈블로그 운영자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와서는 주는 상패 받아들고 어색한 사진 포즈 한번 취하고 뒷자리에 앉아, 링블로그 운영자 아니 블로거 그만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가 강남인거 안다. 티 좀 내지 마라! ㅋㅋ 그만님은 매일경제 기자로, 2006년 올블로그 선정 ‘TOP100 블로거’에서도 상위에 랭크된 분이라고 합니다. 전 처음 뵈었습니다. ^^:: 그만님의 블로그는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입니다! (케로로버전) 여하튼 그만님이 이야기하는 ‘2007년 블로그 예언’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먼저 ‘재미있게’라는 부적이 맘에 들긴 했는데, 재미있는 블질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또 먼가가 있을 듯 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게 ‘열정’과 ‘끈기’가 아닐까 합니다. 재미로만

‘양심없는 대학생과 대학교수를 향한 석궁이다!’

‘양심없는 대학생과 대학교수를 향한 석궁이다!’

‘양심없는 대학생과 대학교수를 향한 석궁이다!’ 같은 교수가 고백하는 대학생, 교수, 대학의 문제 지난 18일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과 관련하여 ‘재판부 판결에 따르면 해직 안 될 교수 없다?!‘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일하고 있는 학교의 교수님들이 이날 인터넷 뉴스에 올라온 재판부의 판결 전문을 보고, 이 판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이를 간략히 요약 정리해서 올린 것입니다. 요지는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은 배타적이고 편협한 대학과 교수사회에서 배척된 교수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고, 대학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다’입니다. 어리석은 재판부 판결에 분노하고 배타적인 대학, 교수사회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포스팅 이후 인터넷 뉴스들을 통해 김명호 교수에 대한 내용들을 모니터링해보니, 네티즌(블로거)들과 성균관대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구명활동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고, 대학 안팎에서 대학과 교수사회의 자성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터에 나와 컴퓨터를 켜고 이런저런 업무들을 정리해 놓고, 블로그 체킹을 하다보니 댓글이 하나있어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았습니다. 헌데 그 댓글은 그냥 댓글이 아니었습니다. 성균관대

라엘리안 공식 상징이 스와스티커(卍)를 되찾다!

라엘리안 공식 상징이 스와스티커(卍)를 되찾다!

[보도자료]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 라엘리안 공식 상징이 스와스티커(卍)를 되찾다! ————————– 지난 15년 동안 유럽과 미국을 순방할 때 본래의 스와스티커 (Swastika)가 제거된 메달을 착용해 왔던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설립자이자 지도자인 라엘(Rael)은 다윗의 별과 스와스티커가 결합된 본래의 상징을 전 세계적으로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유일한 공식 상징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본래의 상징에서 다윗의 별과 결합된 스와스티커를 보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유태인들을 배려하여, 15년 전 라엘은 유럽과 미국의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스와스티커 대신 소용돌이 은하로 대체된 상징을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 (http://www.rael.org) 그러나 이러한 사려깊은 조치는 이 상징이 우리를 창조했던 우주인 엘로힘(Elohim) 과학자들의 상징(‘무한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그들의 모든 메신저들에게 주어졌던 상징이었음을 (이것은 지구상 모든 대륙에서 정신적이고 평화적인 그룹들과 연관되어 종종 이 상징이 발견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스와스티커는 ‘시간의 무한성’을 나타내는 상징, 즉 영원성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힌두교 및 불교인들, 그리고 라엘리안들에게 평화의 상징이 되어 왔다. 오늘날 독일 당국자들은 이 상징을 표시한 깃발 아래 행해진 과거의 잔인한 차별행위에 대해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 상징을 사용해

[317] 인터넷 실명제, 악플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317] 인터넷 실명제, 악플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 317회 백토 주제가 ‘인터넷 악성 댓글, 대책은 있나’로 정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PC통신 시절부터 10여년간 정치사회 비평 카페나 온라인 매체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종다양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진단과 대안 마련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습니다만, 시간의 제약으로 그 것을 다 풀어 놓을 수는 없어 안타깝습니다. 여하튼 백토 317회에서는 악성 댓글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인터넷 실명제와 처벌 강화 등이 과연 실효성 있겠는가’를 주로 토론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여, 작년 12월 22일 국회를 통과했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했던 성명서를 첨부하니, 참고 바랍니다. (참, 인터넷 실명제 도입 문제는 올해 대선 시기와 맞물려 또 한번 격렬한 토론이 예정되어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수 신 : 각 언론사 담당기자 일 시 : 2006. 12. 27. <성명서> 구시대적 검열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 규탄 성명서 노동악법들이 여야의 야합으로 통과된 지난 22일, 또 하나의 악법이 국회

테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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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아나키스트들, 대추리, 그리고 나.

뉴욕의 아나키스트들, 대추리, 그리고 나.

미국의 아나키스트들 모임인 New York Metro Alliance of Anarchist의 회의에 놀러 갔다 왔다. 줄여서 자기들끼리 “나이마”라고 부르는 이 모임은 사실 미리 알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Bluestocking이라는 서점이 있는데, 거기서 포스터를 보았다. “혁명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라는 포스터였는데, 사실 나는 미국 내 반전 운동이나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서 수첩에 잘 적어 두었었다. 전철 안 타고 걸어가려고, 정말 얼굴이 깨질 듯이 추운데, 미친 듯이 걷고, 걷고 걸어서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커뮤니티 센터에 도착했다. (뉴욕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나 그래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는 거다. 자전거를 탄 애들이 부러워서 자전거 값을 알아보았는데, 무지 후지게 생긴게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었다.) 내가 참가한 모임은 “나이마”의 여섯 번째 회의였는데, 주로 두 달에 한번 정도 모인다고 한다. 이 모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뉴욕 내의 아나키스트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고, 사회에 아나키스트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물론 아나키즘의 정신을 실천하고 퍼트리는 것. 여러 하위 그룹들이 모여서 각기 관심 있는 일을 하는데, 사파티스타와 연관된 일을 하는

하경이 의료급여증

하경이 의료급여증

하경이 입양과 관련된 중요 일정 2006년 5월 1일 이하경 처음 세상을 봄 6월 15일 하경이가 집에 옴 7월 10일 서류상 우리 딸이 됨(주민등록에 가족으로 이름 올림) 시청 호적계에 서류접수 시청 호적계에서 접수증 받아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 주민등록등본을 받아 지역의료보험 가입 7월 12일 호적 정리 8월 7일 개명신청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10월 27일 개명허가 11월 16일 광명시청 호적계에 개명 신고 11월 20일 호적에 이하경으로 이름 변경 2007년 1월 16일 이하경 1종 의료급여증 받음(동사무소) 입양아동 양육수당 신청(시청 가정복지과 아동계 – 동사무소에서도 신청 가능) 1월 23일 지역의료보험에서 보낸 하경이 이름이 빠진 건강보험증 받음 하경이가 처음 집에 온 날은 6월 15일이고 가족으로 서류가 처리된 것은 7월 10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경이를 입양한 것으로 호적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경이를 만나러 가던 날까지 친자로 신고할지 입양으로 신고할지 고민하다 당일 결정을 했기 때문에 입양기관에서 필요한 서류가 정리가 되지 않아 위탁형식으로 하경와 집으로 왔기 때문에 집에 온 날과 서류가 정리된 날이 차이가 있습니다. 2007년 1월 16일 하경이 의료급여증이 나왔습니다. 입양아동은 의료급여가

하경이 의료급여증 세대주 문제

하경이 의료급여증 세대주 문제

하경이 입양과 관련된 중요 일정 2006년 5월 1일 이하경 처음 세상을 봄 6월 15일 하경이가 집에 옴 7월 10일 서류상 우리 딸이 됨(주민등록에 가족으로 이름 올림) 시청 호적계에 서류접수 시청 호적계에서 접수증 받아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 주민등록등본을 받아 지역의료보험 가입 7월 12일 호적 정리 8월 7일 개명신청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10월 27일 개명허가 11월 16일 광명시청 호적계에 개명 신고 11월 20일 호적에 이하경으로 이름 변경 2007년 1월 16일 이하경 1종 의료급여증 받음(동사무소) 입양아동 양육수당 신청(시청 가정복지과 아동계 – 동사무소에서도 신청 가능) 1월 23일 지역의료보험에서 보낸 하경이 이름이 빠진 건강보험증 받음 하경이가 처음 집에 온 날은 6월 15일이고 가족으로 서류가 처리된 것은 7월 10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경이를 입양한 것으로 호적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경이를 만나러 가던 날까지 친자로 신고할지 입양으로 신고할지 고민하다 당일 결정을 했기 때문에 입양기관에서 필요한 서류가 정리가 되지 않아 위탁형식으로 하경와 집으로 왔기 때문에 집에 온 날과 서류가 정리된 날이 차이가 있습니다. 2007년 1월 16일 하경이 의료급여증이 나왔습니다. 입양아동은 의료급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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