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80~90년대 이미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문화가 인간의 현실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예리하게 예측했다. 그는 우리가 '사고(thought)' 자체보다 '사고의 연출(spectacle)'에 몰입하며, AI에 사고를 위임함으로써 점차 인간성을 포기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스마트폰, 하이퍼리얼리티, 그리고 AI에 의존하는 사회를 경고하며, 문제는 기술 그 자체보다 우리가 기꺼이 현실을 기계에 양도하는 태도에 있다고 보았다.
비벡 치버(Vivek Chibber)는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가 노동계급 조직과 사회주의 좌파를 어떻게 해체했는지를 분석하며, 현재의 좌파는 단순한 부활이 아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진단한다. 정당, 노동조합, 계급정치의 해체는 좌파를 대학과 NGO 중심의 정체성 정치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 계급 중심의 보편주의와 물질주의는 내부에서도 비판받는 이단이 되었다. 그러나 조런 맘다니(Zohran Mamdani)의 경제 중심 캠페인처럼, 새로운 세대가 다시 계급 투쟁의 중심성을 인식하며 현실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은 존재한다. 앞으로 좌파는 선거 승리를 조직화의 발판으로 삼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회복하며 노동계급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다시 구축해야만 진정한 사회주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시간은 직관적으로 누구나 이해하지만 설명하려 하면 난해해지는 개념으로, 이는 '존재'와 '발생'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 철학적·과학적 오류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설,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주장, 그리고 현대의 시공간 이론까지 모두 사건이 ‘존재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공유하며 시간을 오해해 왔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예: 사람, 강)'과 '발생하는 것(예: 강에 들어가는 순간)'을 구분하면 시간의 개념은 명료해지며, 시간여행 등 많은 패러독스도 실은 개념적 오류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실제 세계의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투사일 수 있다고 철학자 에이드리언 바든은 주장했다.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객관적 흐름은 꾸준히 의심받아 왔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동일하게 실재하며, 특정한 ‘지금’이나 시간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든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색채 지각처럼 인간 인식의 산물로 보며, 시간의 흐름은 외부 세계의 사실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 인식의 틀이라고 설명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격화된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두 차례의 혁명이 발생했다. 2월 혁명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지만, 전쟁 지속과 개혁 실패로 인해 민심을 잃었다. 그해 10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무장봉기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고, 곧바로 토지 분배와 전쟁 철수를 약속해 농민과 병사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후 내전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경제 붕괴 등을 거치며, 소비에트 러시아는 스탈린의 독재로 나아가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 우경화 속에서 68혁명은 종종 질서 붕괴의 원인으로 비난받지만, 실제로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확장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Z세대는 부패, 불평등, 정치 무능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세대적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프랑스 내 여러 사회운동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지만, 세대 중심의 대규모 집단행동은 아직 미약하며, 정치권이 이들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극단주의로의 전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위대한 세계 변환』에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국내 자유주의와 해외 중상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질서인 ‘국가 시장 자유주의’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부상과 노동·자본 소득을 동시에 누리는 새로운 글로벌 엘리트 계층(호모플루티아)의 형성을 통해 이 변화를 설명하며, 오늘날 자본주의는 더 배타적이고 반국제주의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성을 탐구하며, 사회과학자들이 현재의 세계경제를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독창적 개념과 데이터 기반 통찰을 제시한다.
일본 만화 *원피스(One Piece)*의 해적 깃발 ‘조리 로저(Jolly Roger)’가 최근 인도네시아, 네팔, 필리핀, 프랑스 등지의 시위 현장에서 Z세대의 저항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루피와 그의 동료들이 부패한 세계 정부에 맞서 자유를 추구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젊은 세대는, 이 깃발을 단순한 팬심이 아닌 부패·불평등·권위주의에 대한 분노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밈과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며 국경을 넘는 연대를 형성하고 있고, 그 속에서 해적 깃발은 억압적 권력에 맞서는 '글로벌 저항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반시온주의가 반유대주의와 동일하다는 주장은 국제사회와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계속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지만,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시온주의는 정치 이념으로,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을 반대한다고 해서 유대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시온주의에 대한 정의에 따라 유대인의 입장도 다양하게 나뉘며,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에 대한 지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적 정책 비판은 구분되어야 한다. 유대인 정체성과 시온주의는 결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정치적 토론 속에서 시온주의 역시 비판과 재해석이 가능한 이념임을 인식하는 것이 민주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공포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각 문화의 전설과 트라우마를 반영하며 점점 더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레디 크루거’의 뿌리는 라오스 몽족의 밤의 악령 ‘답 초그(dab tsog)’이며, 북미 원주민의 ‘웬디고(Wendigo)’는 탐욕과 자연 파괴를 경고하는 도덕적 상징으로 재해석되었다. 또한 남수단 디카족의 '아페스(apeth)'는 이주와 트라우마의 망령으로, 힌두 전설 속 '피샤차(Pishacha)'는 정체성의 갈등과 부정된 유산을 형상화한다. 세계 각지의 괴물 전승은 인간의 공통된 두려움—상실, 이주, 죄책감, 탐욕—을 비추며, 문화적 경계를 넘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