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반드시 파시즘으로 향하지 않지만, 파시즘은 언제나 민족주의를 자신의 도구로 삼아왔다. 저자는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재해석해 민족의 유기적 일체성, 전시 동원 상태, 배타적 순혈성, 국교를 넘는 국가 숭배, 절대적 지도자 숭배로 변형시킨다고 분석한다. 이 글은 민족주의의 스펙트럼을 역사적·정치적으로 조망하며, 그 안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지를 추적한다.
1953년 모사데그 총리 축출부터 2025년 핵시설 공습까지,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쿠데타, 인질 사건, 전쟁, 비밀 무기 거래, 핵 협상과 파기로 이어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양국은 때때로 외교적 접촉을 시도했지만, 상호 불신과 내·외부 정치가 이를 번번이 좌절시켰고, 최근 트럼프 정부 하의 핵합의 재개 협상도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파국을 맞았다. 저자는 이 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적대와 위기가 지금의 핵 충돌로 이어졌음을 강조하며, 외교의 필요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싱가포르 작가 하이판(Hai Fan)은 말라야 공산당(MCP) 게릴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집 ⟪맛있는 굶주림(Delicious Hunger)⟫을 통해, 밀림 속 일상과 전우애, 내면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렸다. 이야기들은 전투보다 생존의 틈새 순간들에 주목하며,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서 금기시돼온 좌익 기억을 되살리는 예술적 시도로 읽힌다. 이 책은 지워진 역사와 억눌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문학적 복원의 작업이자, 탈식민지 국가의 잊힌 좌익 투쟁을 인간적으로 조명하는 정치적 증언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백인 우월주의와 ‘좋은 유전자’ 담론을 통해 고전적 우생학 이데올로기를 은근히 되살리며 인종적 시민권 구분과 국경 안보를 결합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DEI 정책 철폐, 이민자 비방, ‘대체 이론’ 등 음모론은 불만에 빠진 백인 유권자들의 정서에 호소하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더 이상 강제적 우생학이 아니라, 복지 해체·사회적 배제를 통해 “사회적 다윈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극우적 불평등 사회를 정당화한다.
극우 정당은 불확실한 미래와 사회적 불만을 느끼는 젊은 남성들의 좌절을 반페미니즘이라는 정서적 언어로 포착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젠더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소속감과 간단한 해답을 제공하며,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와 인플루언서들이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분열을 보여주며, 성평등을 공공의 가치로 재구성하고 다양하고 민주적인 남성성을 제안하는 새로운 사회적 담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폴란드 대선에서 중도 자유주의 성향의 트샤스코프스키는 극우 민족주의자 카롤 나브로츠키에게 패배했다. 자유주의 정권은 법치와 개혁을 약속했지만 부패, 무능, 기득권화로 실망을 안겼고, 하층·중간 계급의 불만은 ‘국민 우선’을 외치는 반(反)엘리트 정치에 쏠렸다. 이번 결과는 폴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1989년 이후 자유주의 질서 전반의 실패가 부른 중·동유럽의 구조적 균열을 보여준다.
1955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29개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여 탈식민과 제국주의 저항을 공통 의제로 삼으며 ‘반둥 정신’을 선언했다. 회담은 냉전과 신제국주의 속에서 제3세계 연대를 위한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비동맹운동(NAM), 아프리카-아시아 연대기구 등 다양한 정치·문화적 흐름으로 계승되었다. 오늘날 반둥은 글로벌 사우스의 연대와 해방 정치의 역사적 기반으로 소환되지만, 그 정신은 신자유주의적 왜곡 속에서 비판적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해리 브레이버먼(Harry Braverman)은 『노동과 독점자본』(1974)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을 분절하고 탈숙련화하며, 기술을 인간 해방이 아닌 통제로 전환시키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노동의 기계화와 서비스화가 가져온 노동의 저하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해방의 잠재성을 낳는다고 보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늘날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과거의 교훈과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직시해야 함을 시사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극심한 감시, 고립,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자, 수치와 처벌의 체제에 맞선 익명의 예술적 저항이었다. 이 시는 감옥 내 참혹한 현실을 고딕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포착하며,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연민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100년 후 뱅크시의 벽화와 함께 재조명되는 이 작품은, 형벌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예술의 힘으로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