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 어떤 행동을 할는지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인물로 여겨진다. 작년 미 대선 기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가운데 누가 승리하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정책 예측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해리스를 선호한다는 농담 반의 답변을 한 적이 있다. 트럼프가 승리해 그의 정권이 출범한 지 두어 달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트럼프는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지난 4월 2일을 ‘미국 해방의 날’로 정하고 전 세계 나라들을 대상으로 언어도단의 ‘상호과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내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1897〜1901년에 재임한 제25대 윌리엄 매킨리를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시작한 매킨리는 재임 시절 대선 공약대로 높은 관세장벽을 세워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로 인해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미국을 거대한 관세장벽으로 둘러싸려는 것을 보면, 트럼프는 자국 경제를 보호하며 미국을 제국으로 팽창시키려 한 매킨리의 노선을 따르려는 것으로 보인다. 매킨리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바로 암살당하는데, 트럼프도 대선 기간에 몇 번 암살의 위험에 처한 적이 있다.
트럼프가 미국에 관세장벽을 세우려는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 이래 미국이 세계 최대강국으로 군림하며 구축해온 미국 중심의 세계 자유무역 체계를 해체하려는 조치로 미국 제국의 쇠락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가 ‘미국 해방의 날’을 선포한 것은 미국의 원로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 리처드 울프가 꼬집은 대로 제국 미국이 되돌릴 수 없는 쇠퇴의 나락에 빠지는 와중에 나온 ‘미국 절망의 날’ 선포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트럼프의 외교 노선은 주권주의(sovereigntism)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전임 바이든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전쟁을 끝내려고 러시아와 협상에 나선 것도 그런 점을 말해준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이 총력을 기울여 관리해온 유럽에서는 한 발 정도 몸을 빼려고 하고, 중국을 주적으로 삼아 견제하려 하면서 그린란드, 캐나다, 멕시코, 파나마, 남미 등 서반구를 미국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 아래 두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바이든과 민주당이 가치-기반 국제질서를 유지하며 자신들이 정의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적용하려 들며 추진해온 세계주의적(globalist) 노선과는 다르다. 트럼프의 주권주의 채택은 미국이 국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국 중심주의로 돌아선다는 신호라고 여겨진다.
주권주의로의 선회는 제국주의 미국이 새로운 국제적 현실에 적응하려는 시도이겠으나, 그렇다고 미국이 평화주의로 선회한 표시라고 볼 수는 없다. 서아시아의 폭력 국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하며 이란에 대해 계속 위협을 가하고, 특히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예멘에 대해서는 지금도 민간인을 살상하며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협력에 의한 공존보다는 전쟁과 갈등에 의한 영향력 행사를 통해 세계질서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악하겠다는 태도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도 협력을 통한 세계인과의 공존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의 이익만 지키겠다는 자국 중심주의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트럼프가 감행하려는 언어도단의 상호관세 부과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백악관 대변인은 관련 연구를 수십 년 해온 전문가의 처방에 따른 조치라며 성공할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어디 백악관이 의존하는 사람뿐이겠는가. 해방의 날 선언 이후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미국 안에서도 거세다. 우선 콜롬비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 제프리 색스의 말을 들어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초적인 경제적 오류를 저지르며 세계 무역 체계를 맹비난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무역 적자가 전 세계가 미국을 속여 먹어 일어나는 것으로 거짓 주장을 하며,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역사상 어떤 나라도 그렇게 속여 먹힌 적이 없을 만큼 우리를 속여 먹었다’라는 식의 말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는 관세를 부과해서 수입을 방해하고 무역 균형을 회복해서(혹은 다른 나라가 미국 속여 먹기를 끝내게 해서) 무역 적자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는 무역 적자를 막지 못하고 대신 미국인들을 빈곤하게 하고 전 세계에 해를 끼칠 것이다.”
“한 나라의 무역 적자(또는 더 정확하게 경상수지 적자)는 흑자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킨다. 경상수지 적자는 적자국이 자신이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는 의미다. 같은 말이지만, 적자국은 투자하는 것보다 저축을 적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미국 기업 지배계급 방탕의 표시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쓸데없는 전쟁에 허비된 수조 달러로 인한 고질적 대규모 재정 적자의 결과다. 적자는 미국이 그들에게 파는 것보다 미국에 더 많이 파는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배신 때문이 아니다.”
“미국은 무역 적자를 막으려면 재정 적자를 막아야 한다. 관세를 가하는 것은 (자동차에 대한 것과 같은) 가격을 올릴 뿐 무역이나 재정 적자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특히 트럼프가 자기의 부자 기부자들을 위해 엄청나게 더 많은 세금 감면으로 관세 수입을 상쇄하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관세를 올리면 미국은 자국의 수출을 바로 방해할 역-관세에 직면할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과 세계 전체가 모두 패자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는 무역과 재정 적자를 막지는 못하고 가격을 인상하고 무역에서 나오는 이득을 없애버림으로써 미국과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자신과 전 세계에 끼친 해악으로 세계의 적이 될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좌파의 관점은 더 신랄하다. 앞서 언급한 리처드 울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확하게 말하면, 이제 모든 나라가 미국이 변한 것을 안다. 미국은 평화를 유지하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모두가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어 세계 제국을 통치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트럼프 씨가 가끔 말하듯이, 우리는 그런 것들을 모두 창밖으로 내던지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한테] 남은 자산을 무기화하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이 아니다. 그건 중국과 브릭스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우 큰 나라인지라 위협할 수 있고, 무기화할 수 있고, 세계 나머지에 그들의 부 일부를 우리한테 달라고 강요할 수 있다. 그게 지난 50년 경제정책의 변화라는 점 말고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미국은 이제 스스로 새로운 세계 최대 불량국가임을 홍보하는 거다. […] 누구도 속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고립을 대대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울프의 말대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지 않다.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것은 이제 중국과 중국이 중심인 브릭스다. 트럼프는 자신의 관세 정책을 통해 누구보다 중국을 견제하려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한동안 대미국 수출에 경제발전의 명운을 걸어왔으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시장 다변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무역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 1999년의 최고 26%에서 2023년 10%로 급락했다. 미국의 무역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18년 사이 최고 15%에서 2023년에 11%로 줄어들었다. 최근에 미국의 대중국 수출, 중국의 대미국 수출 비중이 대폭 준 것은 트럼프 제1기 시기인 2018년에 시작된 무역전쟁의 결과일 것이다. 아래 표를 보면 2022년 기준 중국의 수출시장에서 미국이 이제는 중국의 최대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트럼프가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언어도단의 관세를 부과하려는 명목상의 목적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액 관세를 부과한다고 무역 적자라는 미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미국의 원로 좌파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무역 적자는 탈산업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관세가 갑자기, 일주일, 한 달, 또는 5년 안에 그들 생산물을 생산할 능력을 창출할 길은 전혀 없다. 언급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자동차, 부품, 그리고 우리가 동남아에서 수입해온 막노동을 모두 여기서 생산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다. 공장을 조직하고 계획을 짜고 노동력을 조직하고 자금을 동원하고 마케팅 배포를 조직하려면 5년은 걸린다.”
“트럼프는 일주일 안에, 우리가 삽시간에 재-산업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시간 요소를 무시하고 있다. 미국을 재-산업화하려면 여기서 공장을 지어야 한다. […] 그러나 노동을 고용하고, 육체노동을 하게 하고, 장난감이나 월마트가 중국에서 수입해온 그런 종류의 소비재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세운다고 해보자. […] 내 생각에 300% 정도로 관세를 올려야 할 것이다. 소비자 물가지수로는 비용을 아마 40%는 올려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런 것들을 생산하면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하는 노동, 오르고 있는 주택 구입에 충분한 돈, 치솟는 의료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노동을 어떻게 고용할 것인가? 그동안의 민영화 때문에, 정부가 기본수요를 많이 처리해준 덕에 기업들은 고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게끔 보조요금 비율로 제공된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때문에 미국의 노동 고용 비용은 계속 증가해왔다. 그런 모든 것이 미국을 고비용 경제로 만든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색스의 지적대로 미국에도 세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트럼프의 관세 조치 이후 미국 증시는 6조 6천억 달러가 증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직 그 후과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으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의 국력 신장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세계를 경악시키며 모든 나라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려는 조치의 공식적 목표는 미국의 산업을 부흥시킨다는 것이나 허드슨도 울프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색스의 경우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함께하는 한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지금 세계의 깡패처럼 구는 것은 미국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국력이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징표다. 미국은 지금 폭력적으로 세계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한다. 이런 마당에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침 윤석열에 대한 탄핵이 이뤄져 그동안 대책 없이 미국 바라기만 하던 한국의 대외정책에 일말의 변화 가능성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미국의 추락은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그동안의 경로 의존적 관계 때문에 미국과의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동반자살을 피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여겨진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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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