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문화사회] (2) – 교수 성폭력 사례와 그 심각성

[문화사회] (2) – 교수 성폭력 사례와 그 심각성

성폭력 사건은 사건 당시부터 그 사건을 제기하고 증명하여 해결하기까지의 과정 자체만으로도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사건을 다시 기억해내는 순간, 피해자의 온몸은 사건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같은 크기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사건을 다시 언급할 때마다 피해자에게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는 사건의 공개 이후부터는 그 배에 달하는 비난과 압박 또는 동정의 눈길 속에서, 가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로부터 가해지는 현실적 피해(2차 성폭력에 해당되는)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가해자의 뻔뻔함은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처음에는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 하다가도 자신이 불리해질 상황에 처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사건을 부정하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기까지 한다. 이 때, 가해자의 ‘남성’ 이라는 사회적 위치는 그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 ‘취해서 그런 걸 가지고’, ‘여자가 오죽했으면’하는 논리들이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는 ‘얼마나 극적으로 가해자의 행위에 반항하려 노력했는지’, ‘왜 피해자가 술에 취했는데도 같이 있었는지’ 증명해야 하며, 심지어는 ‘피해자가 원했던 건 아닌지’, ‘가해자를 음해하기 위한

[문화사회] 새만금 사업 잠정 중단 – 백지화를 향해 가다

[문화사회] 새만금 사업 잠정 중단 – 백지화를 향해 가다

사진 : 새만금 삼보일배 사이트(http://kfem.or.kr) 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은 국토확장, 산업용지 및 농지조성, 치수 등의 목적으로 당시 농림수산부에서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2조, 제93조 및 제96조와 공유수면매립법 제4조의 규정에 따라 계획된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지난 7월 15일 서울행정법원은 지금까지 정치적 경제적 논리인해 많은 논란이 제기 되었던 새만금사업에 대하여 집행정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방조제공사 강행 기류에 쐐기를 박았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지역안배에 따른 정치적인 공략으로 시작된 새만금 사업은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주민, 시민단체와 삼보일배의 시위가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91년 착공된 새만금 사업은 외곽시설과 방조제 공사가 약 82% 진척되어 있는 상태이며, 공사비만도 무려 1조4천여억원이 투입되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04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2년간의 공사가 중단되어 2006년으로 완공연도가 미루어졌지만, 오늘의 결정에 의해 완공의 시기가 늦추어지던가, 아니면 사업의 백지화, 전면수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새만금 사업을 정부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민주당에 설치된 “새만금사업특별위원회”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사업에 대한 논란의 초점이 농지의 가치에서 시작된 만큼 농림부, 전라북도와 주민,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한

[문화사회] 마리오 라가와의 , 그리고 원수연의

[문화사회] 마리오 라가와의 , 그리고 원수연의

야오이와의 구분을 위하여.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 세 단어의 앞 글자면 따서 붙여진 ‘야오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있다. 절정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절정, 결말, 의미도 없는 이야기의 소재는 남성간의 동성애이다. 야오이 만화의 스토리는 항상 고정적이다. 건장하고 체구 좋은 힘 센 남자가 여리고 작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다른 남자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하고, 여린 남자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결국은 쾌감을 느끼게 되며 급기야 상대 남자의 일방적 태도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허…어디서 많이 본 레파토리 아닌가? 그렇다. 바로 포르노의 수법이다. 현실에서라면 성폭행 범죄(심지어 아동 성폭행 범죄까지!)에 해당할만한 이야기들이 꽃미남들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야오이 안에는 포르노처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성행위’와 ‘부당한 관계’가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야오이 만화들은 포르노의 효과가 그러하듯이, 일방적 성행위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심어주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만화 속 인물처럼 성행위를 강제로 시도할 것이라는 편견을 유포시키며, 동성 애인 간의

[문화사회]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문화사회]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편집자주] 지난 7월 2일, 3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개혁과제 및 대안정책 제시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문화연대와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화정책 각 분야별로 정책제안이 이루어지고, 문화부 및 민간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문화사회>는 이번 토론회의 발제문 중 ‘문화정책 일반, 지역문화, 문화유산, 체육정책’에 대한 4개의 발제문의 요약문을 싣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1.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 강내희 2. 지역불평등 해소 및 문화민주주의 확대 전략으로서의 지역문화정책 활성화 – 임정희 3. 참여정부 문화유산정책의 개혁과제 및 개선방안 – 황평우 4. 참여정부 체육정책의 방향 – 정희준 자료집 전문을 다운받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 http://culture.jinbo.net/maynews/read.php?table=organ&item=&no=737 ==================================================== 경제적 이성 비판 ‘위험사회’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재귀성’(reflexivity)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한다. 이들의 입장은 근대성 자체를 포기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대성에 자기성찰의 능력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이성으로 하여금 자기비판의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한 비판이론의 전통과 부합하는 이론적 입장인 셈이다. ‘경제적 이성’을 비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이성’의 폐기가 아니라 그것의

[문화사회] 도서관을 자유로운 정보유통공간으로 만들자

[문화사회] 도서관을 자유로운 정보유통공간으로 만들자

도서관에서의 인터넷 필터링에 반대한다 지난 2000년부터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이 디지털자료실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동안 책만을 가지고 있던 도서관, 독서실에 머물러 있던 공공도서관을 21세기에 적합한 첨단 정보서비스 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해 정부(문화관광부)가 적극 나섬에 따라 올 해가 지나가면 전국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인터넷 사용이라든가 전자책, DVD, 비디오물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정부는 무려 3년여에 걸쳐 3천여억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사실 이 사업은 추진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고, 특별히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는 이 즈음에는 저작권법 개정으로 인해 새로운 변수, 즉 제작된 원문데이터베이스 활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향후 정말 원했던 바대로 풍부한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올 해 말 공공도서관의 디지털자료실 구축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국민들의 디지털 정보접근 가능성은 무척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그 동안 이와 같은 사업 추진에 따라 일부에서 마치 도서관에는 이제 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도서관 자체도 필요 없는 것

[문화사회] 청계천이여 살아나라!

[문화사회] 청계천이여 살아나라!

http://culture.jinbo.net/maynews/data/organ/files/20030709111835/45_4_01.jpg border=0>사진 : 기계와 손 (www.cgPower.net 정일건, 2002년 봄) 졸속적인 청계천 주변개발 계획에 맞서 대안세력이 형성되지 못하고 원론적인 반대 입장들만 있을 뿐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청계천 복원을 알리는 고가철거가 7월 1일부로 시작되었다. 청계천 환경복원은 찬성하되 그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속도조절론, 용수를 끌어대는 인공공원 대신 상류 지천부터 살려야 한다는 자연생태론, 매몰되거나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켜야 한다는 원형복원론, 천변 상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민주절차론, 고층-고밀화와 난개발을 막고 상인대책과 교통대책 등을 실제로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대책론 등이 다같이 서울시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교차하는 전체지형은 불안하게 봉합되어 있으며 각각의 입장들은 서로 충돌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기이한 현상은 복원과 개발에 대한 고민 이전에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공간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것,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은 긍정적 의미에서나 부정적 의미에서나 공간파괴라고 할 수 있다. 청계천의 경우는 부정적 공간파괴다. 왜냐하면 이번 청계천 복원과 천변 개발은 청계천 공간의 문화를 전혀

[문화사회] [라이브공연이 왜?] 라이브공연 활성화와 전문공연장의 필요성

[문화사회] [라이브공연이 왜?] 라이브공연 활성화와 전문공연장의 필요성

문화연대와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이하 대개련)은 라이브공연 활성화를 위해 서명운동과 홍보활동 등 제도개혁 운동과 음악팬 운동을 작년 말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문화연대와 대개련은 라이브 공연 활성화 캠페인을 통해 각종 제도개선은 물론이고, 음악팬들의 의식전환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라이브공연 활성화 캠페인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아주 중요한 지점에 서있다는 것을 몇 가지 질문들을 통해서 음악팬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다. 대중음악 전문공연장이 왜 필요해? 한국에 공연이 많지 않은 이유는, 공연장 수와 관계 있다. 물론 정부소유의 공공문화시설이나, 체육관, 지방의 문화예술회관, 대학의 문화공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음악 공연을 제대로 할만한 여건을 갖춘 곳은 극히 빈약하며, 세종문화예술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등 그나마 공연 시설이 갖추어진 공간들은 아예 대중음악에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다. 특히 대중음악전문공연장은 뮤지션에 따라,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른 규모의 공연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이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500석 이하의 소극과 1500석 정도의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이 거의 없다. 전문공연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체육 경기장이나 기타의 다른 공연장을 대관할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음향, 무대, 조명

[문화사회] Gate in Soul

[문화사회] Gate in Soul

세계시장의 85%를 독점하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 가진 놈이 더 하다고, 얘네들 눈에 힘주고 찡얼대는 것좀 봐.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146일)가 너무하대. ‘자유경쟁’을 막는 걸림돌이래. 그래서 축소해야만 쓰겠대. 니들 맘대로. 싫다면? 때리겠대(BIT). 100% 완전 독점을 위한 헐리우드식 ‘자유경쟁’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대로 듣고, 보는대로 믿으라고. 너그들은 영화를 ‘돈’으로 보지만, ‘문화’로 보는 절박한 애들도 있어. 때려도, 협박해도, 어쩔 수 없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크린쿼터 사수해야 하겠어. 최영화 문화사회 편집위원 / sobeit2000@hanmail.net

[문화사회] 스크린쿼터제도는 밥그릇 싸움이자, 집단 이기주의인가?

[문화사회] 스크린쿼터제도는 밥그릇 싸움이자, 집단 이기주의인가?

사진 : 한겨레 한국영화산업이 밥그릇이라면,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주장은 어느 정도는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 맞다. 하지만 멀쩡하게 먹고 있던 밥그릇을 누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뺏어가려고 한다면, 먹고 있던 사람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문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밥그릇 싸움이란 말이 밥그릇을 뺏어가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의 구별 없이 양쪽을 모두 비난하거나, 심지어 적반하장으로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쪽을 집단이기주의라는 이름으로 근거없이 매도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밥그릇을 뺏으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을 구별해야 하며, 밥그릇을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방위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그 정당성을 추정해주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뺏으려는 쪽의 정당함과 지키려는 쪽의 부당함을 증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키려는 쪽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전체주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인들의 주장이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이런 질문 방식은 옳지 않다. 멀쩡한 밥그릇을 뺏으려는 쪽이 지키려는 쪽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는 근거를 대어야지, 지키려는 쪽에 집단이기주의가 아닌 근거를 대라는 것은

[문화사회]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정작 문제는 한미투자협정

[문화사회]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정작 문제는 한미투자협정

스크린쿼터제 폐지 혹은 축소론자들의 주요 논지는 ‘국익을 위한 양보’이다. 즉, 스크린쿼터제의 존속으로 인한 한국영상산업의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미국과의 투자협정 체결로 일어날 ‘국익’을 위해 영화계가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영상산업의 피해는 보조금 등 다른 수단을 강구해 보전한다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마치 ‘눈물을 머금고’ 영화계에 호소하는 듯한 이러한 논지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즉, “과연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면 국익이 증가되는가”이다. 그 동안 경제관료들이 주장해왔던 ’40억불의 투자효과’가 이미 구체적인 근거가 없음이 드러난 상황에서, 한국영상산업을 포기하면서까지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한미투자협정은 지금까지 두 차례 체결논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 94년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였고, 당시 김영삼 문민정부는 검토과정에서 자체 폐기한 바 있다. 두 번째는 지난 98년 IMF 위기를 겪고 있던 김대중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미국에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협정문의 ‘이행의무부과금지’조항과 관련하여 스크린쿼터제의 폐지가 제기되면서 문화계의 강력한 반대투쟁으로 인해 체결이 무산되었다. 한미투자협정의 체결 무산과정은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갈등이 주요 논쟁지점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한미투자협정의 많은 독소조항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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