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새책]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의 기록

[새책]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의 기록

한 권의 책으로 쌍용자동차지부 동지들의 투쟁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불과 4개월의 기간에 자료 수집과 집필, 초안 검토까지 마치는 것 자체도 무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지부의 투쟁을 폄하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종식시키고, 투쟁의 의미와 성과를 왜곡하려는 세력에 대항하여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백서작업을 서둘렀다.

법원, ‘옥쇄파업’ 쌍용차 노조간부 중형 선고

법원, ‘옥쇄파업’ 쌍용차 노조간부 중형 선고

“과도한 형이다. 검사구형과 판사구형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안타까워하며 “재판부가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한상균 전 지부장을 중심으로 해서 피라미드식으로 형을 선고한 느낌이다”고 이번 재판을 평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선거 96.44% 당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선거 96.44% 당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선거 결과 단독출마한 황인석 지부장 후보가 투표결과 365명, 투표인원수 대비 96.44%로 당선되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서울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서울평통사

11월 18일(수), 구로금천 평통사(준) 모임을 서울의료생협 사무실에서 했습니다. 이 날은 쌍용차 노동자를 모시고 올해 쌍용차 투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쌍용차 정비지회 김정우 대표와 김경민 사무장이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사대와 용역의 폭력, 단수, 단전에 이어 점점 진압을 좁혀오는 경찰 특공대들의 작전은 토끼몰이나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손배소송, 재판, 언론 플레이는 쌍용차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끝나지 않은 MB의 탄압입니다. 언론에는 노동자들이 새총을 쏘는 것만 나왔지만, 용역들은 훨씬 더 위력(?)적인 새총을 노동자들을 향해 쏘았다고 합니다. 피부에 닿으면 금방 화상을 입는 최루액 봉지를 헬기에서 노동자들을 향해 던졌다고 합니다. 밤에는 잠들지 못하도록 상상을 초월하는 음량의 노래를 틀어대고, 경찰들은 쇠파이트로 아스팔트나 바리게이트를 두드려 또 그렇게 잠 못 들게 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서너 시간도 숙면에 들지 못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허덕이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듯합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쌍용자동차 조합원들과의 만남

[평화누리통일누리] 쌍용자동차 조합원들과의 만남

현재 쌍용차 사건으로 구속자는 7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중에서 쌍용자동차 조합원은 55명이다. 이틀 전(6일)에도 조합원 2명이 긴급 체포되었고, 구속노동자후원회 인권팀장도 구속되었다. 앞으로도 구속자가 늘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구속자 중에서 재판을 받은 3명은 전부 실형을 선고 받았다. 불구속 재판을 받은 조합원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경찰은 앞으로도 수십 명이 추가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며 대규모 정리해고를 막아내고자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투쟁은 끝났지만, 노동자들의 조합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탄압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한 평통사 회원인 조합원은 6명중 5명이 구속되어 있다. 구속된 이들과, 해고된 쌍용차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10월 8일) 아침 8시 평택시내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특별위원회 사무실에서 류충현 조합원과 원성재 선전부장을 만났다. 원성재 선전부장이 조금 일찍 나오고 류충현 조합원은 조금 늦게 출근을 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박금석 지부장 직무대행과 박대권 조합원이 출근하여 사과를 깎아주며 우리의 대화를 도왔다. 원성재 부장은 평화협정 실현운동 추진위원이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에 함께 하다 경찰 폭행에 부상당한 적도 있다. 주민 촛불집회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2006년 3월부터 5월까지는 야간 일을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면 대추 초등학교 민주노총 천막에서 잠을 자면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열심히 참여했었다. 원성재 부장이 말이 별로 없어서 인터뷰하는 동안 내내 류충현 조합원은 “얘(원성재 부장)는 원래 말이 없어요, 물어보면 예, 아니요, 뭐 이런 정도에요.”라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류충현 조합원이 실상 대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류 조합원은 그동안의 심정을 솔직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인터뷰, 정리 현호헌 자신의 소개를 간략히 원성재(이하 원) : 노동조합 선전부장이고 2001년 말에 입사하여 8년 근무하였다. 미혼이지만 애인은 있다. 류충현(이하 류) : 89년 3월에 입사하여 39개월 만에 조장을 다는 기록을 세웠다. 1년에 800건의 넘는 제안을 회사에 하는 기록을 세웠고 경기도 개선활동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 노동운동은 한상균 지부장을 만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부장의 인간 됨됨이에 감동받았다. 요즘 일상은 어떻게? (원) 9월 30일부로 쌍용자동차 지부의 회계를 정리하고 있다. 구속자 면회 등은 정특위(노동조합내 정리해고 특별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성병원 등에는 부상자들이 있어 이들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공권력의 진압작전으로 인한 후유증이 심하다던데 (류) 지금도 귀가 멍해질 때가 있다. 자다가도 잠꼬대를 하고 큰 소리를 치는 조합원들도 있다고 한다. 저번에는 비가 오는 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비옷을 입고 나가려고 한 기억도 있다. 현재 회사내 사정? (류) 현장의 기계가 된 것 같다. 17잡에서 24잡(24대/1시간)생산으로 노동강도가 세졌고, 1개 라인에서 4종을 생산한다고 한다. 차량 종류마다 다시 수출용, 내수용 등 4가지의 용도로 나누어 생산을 하는데 파업 이전에는 2종의 차량만 1개 라인에서 생산이 되었다. 현재 16개 테파(4종 × 4용도)가 생산되니 사람들은 70여개의 생산에 대한 부품과 조립 방식 등의 항목을 모두 외어야 한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차를 만들어 내야 하니, 정신이 없다고들 한다. 생산대수도 늘어나서 불량이 나지 않는 게 다행 아닐까?. 그래서 나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참 대단한 일들을 한다”라고 말해준다. 회사 전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류) 승용차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쌍용자동차는 엔진과 후레임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면 살아 날 수가 있다. 어떤 심정으로 이번 투쟁에 참여했는지? (류) 우선 지도부를 신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근무하던 사람들을 많이 해고하였다. 이것도 많은 반감을 가지게 하였고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해고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상균 지부장이나 간부들은 8월 15일까지 버티자, 그러면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다수는 그럴 것이라 생각하였다. 투쟁 당시에는 에어콘에서 나오는 조금의 물로 씻기도 하고, 조합원들 간의 단결로 버티어 낼 수 있었다. ‘2번 최류탄을 뒤집어 쓰면 하루가 간다’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이후 계획은 무엇? 국민들게 호소하고 싶은말이 있다면? (원) 빨리 지부 선거를 해야 한다.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회사가 소위 말하는 외부세력의 도움이 컸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류) 파업이전까지 현장활동가네, 조합활동가네 하던 사람들이 투쟁에 함께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실망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지금 이 사무실에 나타나 시끄러운 소리들을 하고 있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다수가 성실히 일만 하던 노동자들이다. 열심히 투쟁하여 복직할 것이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전주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전주평통사

8월 회원모임 8월 13일에는 들꽃교회에서 8월 회원모임 및 5차 운영위원회를 가졌습니다. 하반기 사업계획, 평화협정 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는데요. 12월 9일까지 100일 계획 동안에 일반회원 한 사람이 5명씩, 운영위원은 10명씩, 대표는 15명씩 평화협정 서명을 받기로 했고, 회원 한 사람씩을 데려와서 회원 배가 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회원모임에서는 슬라이드로 7. 26대회 보고와 UFG 발제(김판태 군산사무국장), 시낭송(이민진 회원), 문규현 신부님 동영상 상영을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인리 체련공원에서 가졌던 생선매운탕 뒤풀이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김민환 회원이 금강에서 낚시를 해 왔고 이민진 회원이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이종화님이 누리집으로 회원가입을 했다가 이날 처음 모임 참가를 하셔서 기쁨이 두 배였습니다.

[위기의 쌍용자동차] 쌍용차 파업자, 중증 우울증상 3명중 2명

[위기의 쌍용자동차] 쌍용차 파업자, 중증 우울증상 3명중 2명

조사대상 중 우울증상을 보이지 않아 정상 판정을 받은 비율은 7%에 불과했다. 일반인의 우울증상 유병율이 10~15%(경증 포함)인 것과 비교하면 쌍용자동차 파업참가자의 우울증상 유병율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누리통일누리] \’1 +1 = 2\’라는 단순함을 넘어섰던 77日 – 77일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평화누리통일누리] \’1 +1 = 2\’라는 단순함을 넘어섰던 77日 – 77일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77日 간에 걸친 투쟁은 실로 영웅적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여운처럼 더 짙게 남았다. 그들과 70여 일을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은 농사꾼이었지만 거대 자본의 이윤을 보전해 주고자 그들은 자신을 수탈당해야 했고, 농민들은 자본의 전략적 요구에 의해서 ‘생산한 결과물 ’을 수탈당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있었기에....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총파업은 고독한 섬으로 내 몰렸지만... ‘노동자 가족대책위’는 남편들과 함께 평택시내로, 서울로, 인근 도시 지역으로 “쌍용자동차의 총파업 투쟁” 정당함을 알리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해 움직였다. 산업자원부와 국회 앞에서 경찰 폭력을 헤치고 “1인 피켓 시위” 도 했고, 비를 맞으면서도 평택 시내를 도는 “삼보일배”도 했으며,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 중에 임신을 하신 분도 간혹 보였는데, 힘든 와중에서도 복날의 햇볕에서도 이들은 매일 매일 시내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었고, 방송 차량에 탑승해 “쌍용자동차 총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려했다. 시내 아파트 단지와 시 외곽 아파트 단지까지 이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의 차량이 평택시 일원에서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파업의 현장은 이들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진실’을 알려주는 학교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대책위’ 대표님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가족들을 위해 하루 하루를 보내던 일상을 버린 채, 아이를 등에 업고 공장의 정문에서 팔뚝을 뻗으며 구호와 노동가요를 부르고, 정치인들에게 항의 활동을 하는 또 다른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왜 노동자는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 사장이라는 사람들은 얼굴이 몇 개인지...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노동자 가족이 파업에 참가한 아이들 아빠를 보기위해 공장 정문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알게 되었다” 는 말은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명제를 현실에서 증명하고 있다. 산술적 계산으로 1+1=2 가 맞다. 수학적 계산으로 정확한 답이다. 그러나 인간사에 있어서 산술적 계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자의 관점에서도 이 계산식은 틀리고, 다르게 이해된다. 자본의 개념으로도 1+1=2 는 인정되지 않고 1+1=2(+a) 가 맞는 계산이고, 노동자의 개념에서 보면 1+1=2 는 생각하지 않으며, 파업의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결합> 은 또 다른 <힘 = 노동계급의 단결> 이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옥쇄를 선택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77日 동안에 최후까지 이들 600 名의 인원으로 단결해 공장을 지켜냈다. 자본이 동원한 2,000~3,000명의 용역깡패 구사대와, 그리고 국가 자본을 대변하는 3,000~4,000의 공권력을 합친 인해전술에 맞서서, 헬리콥터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취루액과 사방의 소방차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와 싸우며 그들의 공장을 지켜냈다. 영화 <300>이 따로 없고,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 혈전’이 비교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동학 농민전쟁 때의 ‘우금치 전투’를 비교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노동관련 단체들이 놀랐고, 일부는 일부러 배우러 온 이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노동자 단체가 있었고, 인도에서도 다녀갔고, 유럽에서 온 이들도 보고 갔다. 이제 평택 공장에서의 파업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공장의 파업이 1라운드 였다면, 이제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전쟁이라 불러도 모두가 수긍했을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파업 진압 과정에서 노동조합 집행부가 대부분 구속이 되었지만 영장 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서 아니면, 당시의 진압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뛰고 있다. 구속이 된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과,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투쟁계획. 경찰에 의해 폐쇄 된 노동조합 사무실 문을 다시 여는 일, 등 등... 남은 자에게는 또 다른 임무들이 기다리고 있고, 이들은 취후의 승리를 위해 뛰고 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역사와 우리 가슴에 깊이 남을 77일간의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평화누리통일누리] 역사와 우리 가슴에 깊이 남을 77일간의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어떠한 찬사로도 부족한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옥쇄파업투쟁이 8월 6일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8월 중순에 이른 지금도 구속자는 계속 늘어나고 노동조합 탄압에 조합 사무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민주노총평택안성지부 사무실에서 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측은 한상균지부장과 대리인이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기로 한 실무협상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연일 평택법원에서는 구속자의 심리 재판과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지만 과연 법원이 쌍용자동차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하여 재판을 할 자격이 있나 회의가 듭니다. 지난 1월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기술과 알짜 자산들을 빼먹고는 법원에 법정관리신청을 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 4부는 2명의 관리인을 파견하였습니다. 한국민의 최소한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할 법의 심판자인 법원은, 대리인들을 통하여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야할 임금을 체불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회사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법출입자로 고소고발하고 손해배상청구까지 하였습니다. 직장폐쇄를 하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 출입은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쌍용차에서는 그 권리마저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평택법원은 “회사출입금지가처분결정”을 회사에 주었고 이를 근거로 공권력 투입의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파산법원은 3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들여 용역깡패들을 채용하였으며 신성한 노동현장을 피투성이,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법원과 경찰, 정부의 보호를 받고 미쳐 날뛰는 구사대의 행태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또한 농성장으로 들어가는 물과 의료진, 식량까지 차단하는 몰지각한 행위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77일 동안의 긴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당뇨병 등 지병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막고자 70미터가 넘은 굴뚝에 올라간 노동자들, 자신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님에도 농성투쟁에 함께 한 60여명의 조합원, 투쟁을 지원한 아니 투쟁에 함께 한 조합원 가족들...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 투쟁에서 맺어진 동지애와 투쟁정신은 우리 가슴속에 역사에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쌍용자동차 투쟁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8호]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쌍용자동차 투쟁

지난 8월 6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일단락되었다. 77일간의 옥쇄파업, 86일간의 고공농성, 2주일에 걸친 공권력의 침탈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긴 투쟁이었다. 쌍용자동차 노조 집행부와 파업투쟁에 결합한 노동자들은 기대 이상의 강력한 투쟁을 진행했고, 전체 노동운동 진영의 연대투쟁을 불러 일으켰다. 예상을 뒤엎는 강력한 옥쇄파업과 쌍용자동차 정부책임 여론은 정권과 자본을 당혹시켰고 공권력 투입 또한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이전 노조 집행부가 같은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나는 것을 묵인하고 방조했다면, 옥쇄파업을 전개한 노조 지도부와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가져나갔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도장공장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현장의 곳곳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조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흐뭇한 모습이었다. 패배한 쌍용자동차 투쟁 하지만, 총고용보장과 정리해고분쇄를 목표로 한 쌍용자동차 투쟁은 그 결과로만 보면 실패한 투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를 이 상태로 몰아간 장본인이 바로 해외매각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하고 실행한 정부였으며 쌍용자동차에 공적자금 1조원만 투입해도 정상화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되지 못했고, 이후 가능성조차 매우 희박해졌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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