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당신은 ‘요즘 아이들’이 걱정스러운가

[월간 사람] [특집] 당신은 ‘요즘 아이들’이 걱정스러운가

한 무리의 학생들은 팬티만 입고 거리를 질주하고, 어떤 아이는 이 엄동설한에 바다에 던져졌다. 급기야 또 다른 학생들은 선배들에게 불려나가 알몸으로 기합을 받으며 졸업을 ‘축하’받았다. 홧김에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에게 학생이 발끈하여 배와 허벅지를 마구 공격하였다. ‘남자와 함부로 잔다’고 놀린 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하여 숨지게 한 다음 그 시신을 한강에 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이 정도면 약하고 힘없는 친구에게 빵이나 운동복 배달을 시키는 ‘빵셔틀’같은 것은 애교에 속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내가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평소에 열렬하게 청소년의 인권을 옹호하던 친구조차 얼굴을 돌렸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간혹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대세는 강경한 일벌백계다. 그래도 철없는 아이들이 한 짓이 아니냐고 한마디 보태다가는 “요즘 청소년들은 이미 알 것 다 알고 하는 ‘인지범’들인데 무슨 사회와 교육 탓이냐”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는 면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 않고 공격받고 있다. 이들은 학교폭력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에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내게 거짓말을 해봐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내게 거짓말을 해봐

딸내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며칠 전 둘째를 가진 아내와 정밀초음파를 보러 산부인과에 갔는데 자기도 동생을 보겠다며 따라나선 딸내미는 병원에서 또래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난 다섯 살이야. 넌 몇 살이야?” 하고 물으니 딸내미는 천연덕스레 “응, 나는 여섯 살이야” 그럽니다. 우리 아이와 그 아이 모두 네 살이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아내와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30여 년에 걸쳐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란 책을 펴낸 로버트 펠드먼 박사는 처음 만나는 성인은 10분 동안 평균 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옷이 예쁘다거나 요즘 괜찮다거나 하는 악의 없는 인사치례가 대부분이지만 소위 어른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거짓말이 넘쳐나며 우리가 거짓말에 얼마나 무감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거짓말하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야말로 금융자본의 온갖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알고도 속아준 관료들의 합작품, 금권사기의 결정판이라 할

[월간 사람] [특집] 삶이 내게 준 선물

[월간 사람] [특집] 삶이 내게 준 선물

1989년에 나는 대학 1학년이었고, 열아홉 살이라는 이유로(!) 이미 없어져버린 대학생 회수권 대신 동생의 중고생 회수권을 썼다. 그 89년에 우리 학교에는 ‘학원 민주화’를 위한 수업거부와 휴업, 도서관 철야농성이 있었는데 새내기였던 우리들은‘운동’이라든지 ‘운동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부의 농성과 시위에는 제한적으로나마 참여했다. 특히나 친했던 여자동기들끼리는 “사회 민주화는 잘 모르겠지만 학원 민주화 싸움은 참여하는 게 옳다”는 말을 주고받곤 했었다. 생애 최초의 공적 폭력 내 안의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 바로 노동절이었다. 참여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연세대 430집회. 선배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연세대에 가고 싶었다. 모두들 며칠 전부터 집회장에 들어가 있어서 끈 떨어진 연처럼 수업도 없는 썰렁한 학교를 돌아다니다 기독학생회 선배를 만나 함께 가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넷이었다. 그리고 같은 버스를 탔다가 우연히 행선지가 같아서 합류하게 된 또 한 사람. 버스를 타고, 그리고 다시 갈아타고……. 내 안의 벽과 집안의 허락만 얻으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곳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딘가에 내렸다. 독립문이 보이는 곳이었고, 선배는 산을 타고 가야

[월간 사람] [특집] 나의 만화 이야기

[월간 사람] [특집] 나의 만화 이야기

사실 인권은 우리 모두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것을 인지하고 있느냐와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중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데 장래희망이 있었지요. 정말 그때는 진지한 심정으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온전한 사람,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 그런 말을 배웠을 때였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아마도 이런저런 고민이나 고뇌를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른 부처 같은(?) 그런 사람을 꿈꿨던 게 아닐까 해요. 그래서 장래희망에 ‘사람’이라고 적었지요. 뭐 대단한 걸 알아서라기보다는 아마도 그때쯤엔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어려서는 그렇게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머리가 크면서 국가도 알고, 가정형편도 알게 되니 문무를 겸비한 군인이 되고 싶어졌지요. 물론 한켠에는 여전히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지요. 작가에 대한 꿈은 누나의 영향이 컸어요. 작가를 꿈꾸던 누나가 선별해 사 모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니 프랑스 무슨 문학상 수상작이니 하는 책들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고 글쓰기에 대한 선망이 커졌지요. 그러면서 여전히 만화를 보고 그리며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었지요.

[월간 사람] [특집] 어느 넝마주이가 생각하는 사진과 인권

[월간 사람] [특집] 어느 넝마주이가 생각하는 사진과 인권

미리 말씀드리자면, 나는 인권에 관한 생각으로 사진을 찍어 본 적도, 글을 써 본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에게 인권’이라거나, ‘인권이 내게로 왔다’는 원고를 주문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을 핑계로 원고청탁을 정중하게 거절하였으나, 거절이 거절이 되지 못하고, 석 달의 유예기간을 부여받아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가뭇없이 석 달이 흘러버렸음을 깨닫고 원고와 씨름하는 시름에 잠깁니다. 나는 나를 말할 뿐입니다. 나를 생각할 뿐입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관찰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게 내 작업이자 직업입니다. 나는 어슬렁거리며, 우리사회가 흘려놓은 넝마들, 허나 내게는 고민스럽고 자꾸 시선이 박히는 그런 장면들을 머릿속에 주워 담고, 사진기에 주워 담고, 수첩에 주워 담아, 내 안에 머물게 했다가 그것을 다시 넝마로 엮어 밖으로 흘려보내는 가련한 넝마주이인 셈이죠. 나는 성경을 줍지 않듯(그것은 너무 깨끗한 성수이자 역겨운 오수이므로) ‘인권’이라 명시된 넝마를 줍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은 적절치 않은 필자가 적절치 않은 얘기를 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두 개의 생각은 이미 써 놓았던 것을 재수록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첫

[월간 사람] [특집] 삼성에 관한 인간의 이야기

[월간 사람] [특집] 삼성에 관한 인간의 이야기

오랫동안 반복되는 인권침해에 노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나.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폭로에 놀라워한다. 사건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침해사실이 심각하고 노골적이면 더, 사회전체의 놀라움은 크다. 말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은 나서서 걱정과 우려와 해법을 제시한다. 피해자는 때로 영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해가 끝나지 않은 채,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해결되거나 용두사미인 채로 흐지부지 되었을 경우 즉,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불행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그는 사건이 잊혀진 이후에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백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들어줄 사람들은 모두 떠난 뒤다. 삼성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써 달라는 글 주문을 받자마자, 하고 싶은 말들이 서로 밀치며 튀어나오려 줄달음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편에서 “무슨 소용 있어. 그동안 지나치게 많이 얘기해 왔는데…… 말하면 얻는 게 뭐 있나”라는 말이 부스럭 돌아누우며 웅얼거린다. 순간 그 많던 말들이, 하긴, 그렇지……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다시 걸음을 되돌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왜냐면 이미 피해자들이 고백과 폭로를 지나치게 많이 해왔던 ‘삼성’문제 아닌가. 최근 몇 년

[월간 사람] [특집] 또 하나의 가족, 아시아의 삼성

[월간 사람] [특집] 또 하나의 가족, 아시아의 삼성

삼성은 왜 노동조합을 싫어할까? 그것은 삼성이 단순히 노조가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삼성이 노조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삼성이 요즘처럼 신나게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기업경영의 비결 한가운데 삼성 고유의 노무관리가 있고 그 삼성 노무관리의 핵심에 ‘분리와 개별화’의 원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최고의 경지에까지 발전시킨 분리와 개별화의 원리는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원리인 ‘연대’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삼성은 잘 알고 있다. 삼성의 이윤창출이 분리와 개별화라는 원리에 워낙 단단히 기반하고 있고 핵심에서 주변부까지 튼튼하게 구조화 되어있어서 연대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삼성이라는 회사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 경영진의 입장에서 이런 삼성에게 노동조합을 허용하라는 요구는 ‘무리한 요구’가 된다. 기업경영의 근본원리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런 구조에 깊이 의존하는 경영전략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삼성의 무노조경영의 원리는 철폐될 수 없다. 이 분리와 개별화라는 삼성의 이윤 창출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사무직/생산직,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 본청/하청 그리고 다른 생산 본부들과 라인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삼성이 겹겹이

[월간 사람] [특집] 삼성 없는 미래를 위한 메모

[월간 사람] [특집] 삼성 없는 미래를 위한 메모

1. 당신이 만난 최초의 ‘삼성’은 무엇이었나? 2. 이 글을 청탁 받은 이후 내내 그걸 생각해내느라 애썼다. 내가 삼성을 처음 알게 된 기원을 알아야 ‘삼성 없는 미래’를 일말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3. 아이폰의 대공세에 패퇴할 애니콜이 나와 당신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나 혹은 삼성생명 불매 운동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관한 일고찰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그것도 상상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거창하게 삼성과 미래를 지향적 좌표가 아닌 지양적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최소한 언제 최초로 글로벌 1등 브랜드 삼성과 마주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4. 그런데, 끝내 잘 더듬어지지가 않았다. 몇 가지 단서들은 떠올랐다. 어렸을 적 아빠는 곧잘 이병철과 정주영의 스케일을 비교하곤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교양의 시간이었다. 학습자의 입장에선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떠한 시간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대범한 정주영과 꼼꼼한 이병철의 구도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그 시절 사내라면 모름지기 정주영을 닮아야 했다. 참, 그윽한 얘기였다. 미니카와 모형 장난감에 심취해있던 꼬마에게 자동차-중공업-조선으로 이어지는 현대의 라인업은 동경을

[월간 사람] [특집] 삼성 없는 미래를 위한 메모

[월간 사람] [특집] 삼성 없는 미래를 위한 메모

1. 당신이 만난 최초의 ‘삼성’은 무엇이었나? 2. 이 글을 청탁 받은 이후 내내 그걸 생각해내느라 애썼다. 내가 삼성을 처음 알게 된 기원을 알아야 ‘삼성 없는 미래’를 일말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3. 아이폰의 대공세에 패퇴할 애니콜이 나와 당신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나 혹은 삼성생명 불매 운동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관한 일고찰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그것도 상상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거창하게 삼성과 미래를 지향적 좌표가 아닌 지양적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최소한 언제 최초로 글로벌 1등 브랜드 삼성과 마주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4. 그런데, 끝내 잘 더듬어지지가 않았다. 몇 가지 단서들은 떠올랐다. 어렸을 적 아빠는 곧잘 이병철과 정주영의 스케일을 비교하곤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교양의 시간이었다. 학습자의 입장에선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떠한 시간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대범한 정주영과 꼼꼼한 이병철의 구도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그 시절 사내라면 모름지기 정주영을 닮아야 했다. 참, 그윽한 얘기였다. 미니카와 모형 장난감에 심취해있던 꼬마에게 자동차-중공업-조선으로 이어지는 현대의 라인업은 동경을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는 사람들의 연대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는 사람들의 연대

대구에 있는 병원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달에 1억5000만 원의 적자가 나고 그렇게 쌓인 적자가 120억 원에 달했다고 하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그 병원은 바로 적십자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십자병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 저소득층과 이주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에게 무료진료나 부담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구적십자병원이 만성적자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적십자병원의 의료급여환자 진료 비율은 다른 지역 적십자병원들보다 많게는 두 배가 넘었습니다. 의료급여환자가 1000원짜리의 진료를 받았다면 일반병원에서는 360원을 내야 하지만 적십자병원에서는 190원만 내도 됩니다. 그래서 대구적십자병원이 일반병원이었다면 오히려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10개월 동안의 임금체불도 감수하면서 폐원만큼은 막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윤추구보다 공익성에 무게를 두고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던 병원이 왜 문을 닫게 된 것일까요? 대구적십자병원 폐원 사태를 다룬 이번 호 르포 ‘왜 대구적십자병원은 문을 닫았나’의 앞머리에는 <한겨레21> 기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서울 강북의 빈곤층이 모여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그 기사를 뒤늦게 찾아

기사 67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