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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람] [특집] 삼성 노동자에서 삼성과 싸우는 노무사로

[월간 사람] [특집] 삼성 노동자에서 삼성과 싸우는 노무사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삼성’과의 싸움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지만 여전히 삼성과의 투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거나 혹은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인식 속에서 이 싸움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저 또한 노동조합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별 다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지만 노조활동 속에서 삼성 노동자들의 삶의 질곡과 삼성의 탄압을 지켜보고 그리고 나 스스로 삼성으로부터 탄압을 받으면서 삼성과 맞서 싸우는 투쟁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싹텄습니다. 또 꼭 삼성투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맞서 싸우는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어쩌다 제가 노동자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가정과 나 자신의 문제 이외에 어떻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저는 학교에서는 튀지 않는 학생, 집안에서는 문제아로 통했습니다. 집에서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반항심이 커서 자주 매를 맞고 자랐지만-어쩌면 매를 대는 부모님에게의 반항심이 제 인권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부모님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학교에서 제 모습은 내성적인 성격

[월간 사람] [특집]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 없음’과 사회권

[월간 사람] [특집]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 없음’과 사회권

1. 들어가며 ‘복지국가’는 시장(지배력)의 역할을 조절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이 (정치와 행정을 통해) 최소한 세 가지 방향으로 신중하게 사용되는 국가이다. 첫째, 개인들과 가족들에게 그들의 노동이나 재산의 시장 가치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 둘째, 그렇지 않을 경우(즉 방치했을 경우) 개인과 가족들의 위험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우연성’(예를 들면, 질병, 노령, 혹은 실업)을 최소화한다. 셋째, 지위나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합의된 사회적 서비스의 범위에 따른 이용 가능한 최선 수준의 제공을 보장한다. (Briggs, 1961:288)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복지국가는 인간의 전 생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불안, 취약한 상황을 국가의 재분배 시스템을 통해 줄여나가거나 최소화하는 국가이다. 복지국가의 이상을 완벽하게 달성한 국가는 없지만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시민사회의 성장 여부에 따라 국가 책임의 ‘범위’를 조정하며 현실화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권은 복지국가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민주주의 인권의 한 형태이다. 이는 ‘노동의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의 권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사회보장권, 가정에 대한 지원과 보호,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주거권, 식량권), 건강권, 교육권, 무상의무초등교육의 권리, 문화권, 과학권’ 등을

[월간 사람] [특집] 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월간 사람] [특집] 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감동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호소하는 ‘착한 교육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마을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가난한 농민을 만나게 된다. “박사님, 민중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는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집 구조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형편없는 시설에 대해, 극도로 좁은 공간에 온 가족이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형편에 대해 일러주었다. 최소한의 생활필수품마저 마련할 돈이 없다고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에겐 행복할 권리나 희망을 가질 권리가 금지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 … “자, 박사님, 뭐가 다른지 봅시다. 박사님도 댁에 가면 피곤할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박사님은 하시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랴, 글 쓰랴, 독서하랴, 이런 연설을 하랴, 바쁘시겠지요. 그런 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박사님, 지친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한쪽은 자식들이 깨끗이 씻은 몸에 잘 차려입고 굶주리지 않고

[월간 사람] [특집] 사회권과 함께, 사회권을 넘어

[월간 사람] [특집] 사회권과 함께, 사회권을 넘어

이번 제주인권회의 주제인 ‘사회권과 돌봄-나눔의 공동체’는 지난 2008년 제주인권회의의 주제(‘시장과 인권-생존과 존엄 사이’)와 연결을 해보면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분명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인권회의에서는 사회권 각각의 상황에 대한 어떤 위기와 함께 사회권 논의를 다시 촉발시키는 그래서 실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의 장, 그리고 사회권과 기존의 사회권 언어에서 나오지 않았던 주제를 다룸으로 해서, 사실상 사회권과 사회권 넘어, ‘사회권 +α’를 동시에 논의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사회권인가, 무엇을 돌보고 나눌 것인가 제주인권회의는 (지난 2박 3일 동안) 사회권 문제를 인권의 시각, 복지정책의 경험,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교차 토론을 진행했으며 그 다음으로 사회권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불러올 수 있을까와 동시에 사회권의 한계가 무엇인지, 기존의 사회권 틀에서 담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고, 그 다음으로 사회권을 구성하는 각각의 권리영역을 교차하여 어떤 연계성과 특징이 있는지를 토론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 제출된 문제의식을 보면,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어떤 주제를 구성할 것인가?’‘지역 정치를 통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사회권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기존에 국가와 인권이라고 상정했던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들리세요?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들리세요?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주인권회를 다녀왔습니다. 태어나서 세 번째 비행기 여행이었습니다. 여전히 공항은 낯설고 비행기 안에서는 바짝 긴장이 되더군요. 운 좋게도 돌아올 때는 처음으로 창가 자리에 앉게 되어 몇 천 미터 상공에서 저녁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는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등과 같은 사회권을 다뤘는데 저는 장애인으로 20년 동안 시설에 갇혀 지내다 나와 지금은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김동림 활동가와 함께 다니는 덕분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중증장애인과 같이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본 적은 있지만 비행기는 처음이었죠. 아무리 저가 항공이라지만 탑승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는 항공사였는데 전동휠체어가 등장하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하면서의 번거로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100명을 넘게 태우고 하늘을 나는 최첨단 이동수단에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 하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물론 항공사 직원들은 참으로 친절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나마 교육효과가 있었는지 불편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절한 항공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저만 바라보고 저하고만 상의를 하려 드는 겁니다.

[월간 사람] [특집] 팔딱이는 서툰 물고기

[월간 사람] [특집] 팔딱이는 서툰 물고기

#1. 요즘 나, 참 많이 서툴다. 바짝 긴장하고 간 인권교육에서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기 힘들고, 버벅거리는 목소리는 정돈이 안 된다. 반인권적 상황에 적절한 대응지점을 놓쳐 쩔쩔매기도 한다. 이럴 때면 ‘인권’을 원망해 본다. “왜 이제야 온 거야. 올 거면 좀 일찍 오지!” #2. 요즘 나, 일곱 살 난 아들에게 “엄마는 이명박이야!”라는 항의를 들을 때가 있다(촛불집회에서 용산관련 영상을 보고난 뒤 이 아이에게 ‘이명박’은 악의 상징이 됐다!). 평소 인권 엄마라 자부하지만 시시때때로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존재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어쩔 수 없이 봉착하는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럴 때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그래, 나는 너무 늦게 만났지만 아이들에게 좀 더 일찍 인권을 만나게 하면 되는 거야. 끊임없이 항의해라!’ 실컷 욕을 해댔다고 생각한 아들은 웃는 나를 보고 더 성을 낸다. “엄마, 이명박 물러나라!” 그래, 나는 이렇게 좌절도 느끼고 기쁨도 느끼는 혼란 속에 버티고있다. 지금의 이런 나의 서툰 혼돈과 펄떡임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권교육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인권교육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권교육을 만나기 이전을

[월간 사람] [특집]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징소리

[월간 사람] [특집]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징소리

노동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친구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려면 뭔가를 많이 알고, 똑똑해야 할 것 같단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지식이 없고, 똑똑하지 못한 자신은 인권운동을 생각하면 ‘어렵다’는 것과 함께 ‘나 같은 사람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고. 나를 보면 알겠지만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특별히 똑똑하지 않다고, 우리가 요구하는 내용에 ‘~권’을 붙이면 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인권운동을 만만하거나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그 친구의 활동과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활동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노동운동은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고 있고, 인권운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활동이 아닌가.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내 삶을 흔들만한 굵직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내가 겪은 시간이나 사람과 사건들을 거쳐서 오다보니 여기에 있게 된 것인데 이런 질문은 나를 참말로 궁색하게 만든다. ‘인권이 내게로 왔다’는 코너에 글을 쓰라는 말에 씩씩하게 ‘기일 내에 꼭

[월간 사람] [특집] 먼 길 돌아 사회적 인권운동을 만나다

[월간 사람] [특집] 먼 길 돌아 사회적 인권운동을 만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89년 전교조의 탄생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고등학생운동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문학동아리에 있었으며 거기 지도교사가 전교조 선생님이었다. 그 전교조 선생님이 가을쯤에 해직이 되었다. 내가 다녔던 협성고등학교의 재단은 고등학교 중학교 합쳐 4~5개의 학교를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전교조 문제와 관련해서 학생회 차원에서 집회를 하기도 하고 많이 시끄러웠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생회 활동을 하는 선배들과 관계를 갖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생운동에 깊숙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1992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운동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아온 학생운동이 ‘자족적’이라는 느낌, 학생운동을 넘어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1993년부터 민주시민운동협의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전교조 해직선생님에 대한 부채의식이 학생운동을 넘어서는 사회적 활동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나를 내몰았던 것 같다. 민주시민운동협의회는 20대 학생부터 50대 장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시민운동협의회에서는 민주시민학교를 열어 1년에 두 차례 교육을 하기도 하고 회원을 중심으로 지역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내부 풍물교실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하였다. 얼마 뒤 나이도 어리고 열심히 해서인지

[월간 사람] [특집] 파랑새들의 좌충우돌 수다

[월간 사람] [특집] 파랑새들의 좌충우돌 수다

준호는 엄마랑 동생이랑 함께 살며 지겨운 살림을 거의 맡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꿈이고 언젠가 구로파랑새 나눔터 지역아동센터를 물려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구로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민우도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며 언젠가 변호사가 되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강단 있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잘 챙기며 구로파랑새 청소년자치회의 첫 회장을 역임했다. 철현이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 실용음악을 공부하러 예술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집에 이야기했다가 맞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지금은 서울공고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정현이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듬직한 친구이다. 로봇과 게임, 만화와 일본노래를 좋아한다. 아직은 어떤 삶을 살지 뚜렷하게 정하진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살아가는데 자기 원칙과 자기 껍질을 깨나가고 있는 중이다. 영서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사회를 본 태샘(성태숙, 구로 파랑새 공부방 선생님)은 둘째 아들로부터 형님 소리를 듣는, 땅에 가까운(?) 체구를 가진 파랑새 교사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렸을 때 예측이 가능한 뻔한 4단계 상담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좌담은 2010년 6월 18일 저녁 8시부터 10시 반까지

[월간 사람] [특집] 청소년, 학교를 말하다

[월간 사람] [특집] 청소년, 학교를 말하다

조은과 어스, 그리고 거부기(조은은 본명이고 어스와 거부기는 닉네임이다) 세 사람은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 각자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계기는 모두 다르다. 조은은 그 말 많은 외국어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고 이제 막 인권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이며 특별히 집중적인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한 덕분에 집 근처인 강서구에 있는 한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을 잘 만나(?) 청소년 인권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스도 별 일(?) 없었다면 지금 고교 3학년이었을 나이다. 그는 노원구에 살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주변에서 악명 높은, 그래서 외고만큼이나 입시성적이 좋은 어느 남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 학교 문을 스스로 걸어 나와 이제 청소년이란 꼬리표가 몇 개월 남지 않았지만 탈학교 청소년이 되었다. 조은이나 어스보다 한 살 적은 거부기는 분당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역시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로 꽤나 유명한 이우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청소년 인권활동 경력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로 가장 오래되었다. 세 명 모두 자신의 집이 평범한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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