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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람] [특집]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

[월간 사람] [특집]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

《사람》은 2011년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에 대한 연속기획을 진행한다. 그 첫 순서로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은 왜 만나야 하며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두 분을 모셨다. 하승우 님은 《사람》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인권운동이 풀뿌리운동과 만나야 한다”는 제안을 했고, 박진 님이 있는 다산인권센터 홈페이지에는 아예 ‘풀뿌리인권운동’이라는 배너가 달려있다. 두 분이 생각하는 풀뿌리운동, 혹은 ‘풀뿌리인권운동’이란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월간 사람] [특집] 근로기준법의 허와 실

[월간 사람] [특집] 근로기준법의 허와 실

근로기준법은 우리 사회 인권의 최소 기준 우리나라 헌법은 노동(근로)권과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노동권을 법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이 근로기준법이고 노동3권을 포괄하는 대표법이 노동조합법이다. 근로기준법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노동의 최저 조건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기준이 최저라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착각이자 기만이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임으로 근로기준법을 100% 준수해도 사회적으로 겨우 최저 기준을 지킨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일터에서 만나는 노동의 기준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하나는 회사가 정한 사규다. 사규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면이 있어 최악의 기준을 형성한다. 자본의 최대 적은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아니라 다른 경쟁 자본이다. 이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이윤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말은 단위 상품에 비용을 적게 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용을 줄이는 가장 손쉽고도 강력한 방법은 결국 임금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들은 가능한 노예 노동에 가깝게 임금을 주려 한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버린다. 이런 자본의 탐욕과 폭주를 막기 위해 사회적 최저 기준을

[월간 사람] [특집] 망하거나 죽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

[월간 사람] [특집] 망하거나 죽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에서 망하거나, 죽거나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집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어있습니다.” 오늘 아침 다음 아고라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재능학습지 노조에서 사무국 일을 하고 있는 한 활동가의 남편이 올린 글이었습니다. 급여체계와 노동조건의 하락을 반대하는 항의시위에 해고와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던 회사가 낸 방해금지가처분신청이라는 민사소송을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1000일간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것은 그 자체로 형벌입니다. 맞벌이와 노동조합 활동으로 바쁜 자식들을 대신해 아이를 돌보려 살림을 합친 노모가 김치를 담가주겠다며 용돈을 모아 마련한 김치냉장고에 붙은 빨간딱지를 보며 자식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도 덩달아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했거나 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반올림의 활동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월간 사람] [특집] 근로기준법의 변천사

[월간 사람] [특집] 근로기준법의 변천사

근대사회에서 근로조건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에 방임되어 법적 규제 바깥에 있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합의가 구체적인 내용을 갖지 못하여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만을 위하여 민법 제655조~제663조의 ‘고용’이 임의적 차원에서 규정되었다. 따라서 민법이 적용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며, 실제로는 노사 간을 자유롭고 평등한 계약관계로 보고 법의 개입을 일체 거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사 간의 현실적인 종속성으로 인하여 그러한 계약관계는 근로자의 절대적인 궁핍화를 초래하여 근로조건에 관한 일정한 규제를 가하는 근로조건법이 생겨났다. 그것은 근로자의 과도한 혹사가 적당한 양과 질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서 보아 불리하다는 인식, 노동운동의 고양에 의한 자본과 국가의 양보, 군사력 강화를 위하여 근로자의 체력이 유지되어야 했던 정책상의 필요, 보통 선거권의 확대로 인한 근로자 표의 확보 요구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200년이나 뒤쳐진 한국의 노동법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정은 그런 서양의 근대적 경험에 의한 역사적 소산이었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은 1953년 제정되었다. 그것은 1948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자본과 노동의 자유에 근거하되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기본적으로 보호하고,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월간 사람] [특집] 병역거부자는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가가 되었나

[월간 사람] [특집] 병역거부자는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가가 되었나

‘인권’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지금이야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어색하진 않지만 예전에는 노동이니, 혁명이니, 계급이니 하는 말들보다 더 어색하던 때도 있었다.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 ‘인권’이 내 삶으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난다. 아니 내 삶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난다고 해야 옳겠다. 병역거부가 가져다 준 선물 내가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대학교 4학년 때인 2002년 여름이다. 그해 봄부터 내가 속한 학생운동 조직은 병역거부운동에 매진하기로 결정하고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선언을 지지하고 알리는 일을 열심히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이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오태양 씨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연대하는 심정이었지 내 삶과 연관지어 내 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2002년 여름을 보내면서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그 전까지 병역거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훨씬 전부터 예비 병역거부자였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남성이 아마도 한때 예비 병역거부자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꼭 가고 싶어

[월간 사람] [특집] 삶의 현장에서 인권을 꿈꾸다

[월간 사람] [특집] 삶의 현장에서 인권을 꿈꾸다

너무도 어색한 이름, 인권 나는 ‘고운’출신이다. 곱디고운 사람이어서 고운이 아니고 고등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동아리 활동으로 신문반에 가입했고, 그것을 계기로 흥사단 고등학생 아카데미를 알게 되었다. 비교적 내성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내가 어느새 운동권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동아리 담당교사가 두발단속에 항의하는 기사를 검열해 이에 항의하며 동아리를 그만두기도 했고, 친구들과 몰래 학교에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 체벌에 반대하며 선생님께 항명하기도 했고, 강제적 아침조회가 싫어 기사를 쓴다는 핑계를 대고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골적으로 농땡이를 부리기도 했다. 무조건 가야하는 수학여행은 무조건 거부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우리가 했던 활동이 지금으로 따지면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우리들은 그것에 ‘인권’이라는 딱지를 선명하게 붙이지 않았다. 그저 ‘고등학생 운동’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은 무척 생소하고 어색한 개념이었다.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것(체벌이 아닌 구타)은 당연한 일로 용인되었고, 머리카락은 우리의 것이기보다는 선생님의 것이었다. 청소년에게 선택권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복종만이 살길이었다. 고 3이었던 1994년, 함께 활동하던 많은 친구들이 고등학생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릴 때마다,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그놈의 G20 타령은 거의 공해 수준입니다. 내용도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이니 레스토랑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자제하자는 둥 외국인을 만나면 미소를 짓자는 둥 어이없습니다. KBS노조 발표에 따르면 KBS가 G20과 관련해서 이미 방송을 했거나 방송을 준비 중인 특집 프로그램만 60개, 55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G20 성공기원 콘서트와 영화제, 릴레이 명사 강연 등등. 정작 G20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성공리에 치르면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다는데 어찌 올라가는지는 쏙 빠져있습니다. 이 무슨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만 되풀이하는 건강식품 광고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다 엊그제 광화문에서 색다른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세계 67개국이 참전해서 지킨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G20정상회담 의장국이 되었으니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밑에는 한국전쟁이 최대 참전국이 참가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도 되었다는 글귀도 적혀있었습니다.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 G20이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스무 개 나라의 모임이고 영국,

[월간 사람] [특집] G20,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월간 사람] [특집] G20,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유성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이동현 – 홈리스행동 집행위원 이정원 – 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 최예륜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사회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날짜와 장소 2010년 8월 17일(화), 아랫마을 2층 회의실 박래군 G20 정상회의가 11월에 열리잖아요. 그래서 10월 1일부터 G20경호안전특별법이 발효될 예정이고, 정부와 경찰에서 여러 G20관련 대책을 실행하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노숙인, 노점상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선 이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보죠. 이동현 올 초 4월에 노숙인에 대한 불심검문이 굉장히 심했어요. 용산역이나 영등포역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들을 새벽에 다 깨워서 신분증 검사를 하는 일이 있었고요. 용산역에서는 노숙하는 분들이 역 한가운데에서 시간을 보내시곤 하는데, 경찰이 이 분들 가방을 다 열어가지고 손톱깎이에 칼이 달려 있거나 하면, 경찰서로 임의동행해서 조사하는 일도 있었어요. 노숙하는 분들이 상자로 집을 만드는데 그때 쓸 용도로 휴대용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거든요. 역같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가방을 다 열고, 소지품을 다 꺼내고, 이런 것 자체도 수치심을 야기시키는 것이고요. 노숙 현장뿐

[월간 사람] [특집] 불안의 정치와 경찰국가

[월간 사람] [특집] 불안의 정치와 경찰국가

in dubio pro securitate: G20 회의와 위기에 처한 인권 2010년 11월 11~12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아래 G20 회의)를 앞두고 한국의 인권상황이 심상치 않다. 정부는 무슨 국제회의나 대회만 있으면 ‘단군 이래 최고의 행사’운운하면서 반인권적 경찰조치들을 강화해왔는데, 이번에도 어김없다. 그런데 그 강도가 예전에 비해 더욱 세지고 있다. 반인권적 조치들에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숙자, 노점상 등 ‘쓸모없는 자’, 혹은 ‘쓸모없게 된 자’들을 국내로부터 혹은 공적 공간으로부터 추방하고 배제하기,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물리기, 정부정책에 항의하거나 반대할 소지가 큰 개인이나 집단들을 사전 예방적으로 철저히 전자감시하기 등……. 특히 예방적 전자감시의 강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예방적 개입은 원래 환경법·과학기술법의 지도적 이념·원리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경찰법, 즉 국내치안의 이론과 실무에도 유입되었다.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에 미리 개입하여 그 위험을 사전 제압해야 한다는 이론 실무는 얼핏 보면 그럴 듯하다. 그러나 무엇이 위험인가가 경찰의 입맛대로 재단된다면 전체주의적 경찰국가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다. 경찰국가는 모든 헌법적 가치 중에서 공공의 안전(공안)이 가장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다. 한 마디로 공안(지상주의) 국가다(in

[월간 사람] [특집] 용두사미 G20, 어디로 가나

[월간 사람] [특집] 용두사미 G20, 어디로 가나

2008년 9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세계 전체가 1930년대 대공황의 재현을 우려하게 되었다. 이어서 메릴 린치도 파산위기에 몰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되고, 세계최대 보험그룹인 AIG가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져 미국정부가 구제 금융에 나서면서 대공황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듯했다. 전 세계 각국의 주가가 직전 고점의 절반 수준으로 수직강하하고, 채권과 외환시장도 대혼란에 빠진다. 자칫 자본주의 자체의 운명이 걸린 사태로 심화될 수도 있었다. 이미 2007년 초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금융가가 뒤숭숭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파산상태로 몰릴 것을 예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체제적 위기가 터지자, 주요국가 정부들은 전 세계적 차원의 국가공조를 통해 이 위기에 대응할 필요성을 공감하고, 그 대응 주체를 G20으로 결정한다. 세계 정치경제적 담론을 주도하던 G7(러시아 포함 G8)을 대체하는 새로운 비공식적 국제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소집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G20 정상회의는 2008년 11월에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체계화된 의제나 정책제언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저 이런저런 문제의식이 다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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