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감시사회와 잉여인간

[월간 사람] [특집] 감시사회와 잉여인간

정보 인권운동의 고민은 이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 이명박 정부 하의 인권운동에서 정보인권 분야만 힘들겠는가. 그러나 나를 때때로 질리게 하는 것은 이 운동에서 ‘울림’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울림이 없는 운동이란 것이 애초에 가능한가. 정보인권이 정보주체에게 외면 받고 있다. 지역주민이 CCTV를 적극 환영하는데 외부에서 그것을 감시라고 외치는 것이 의미 있는가. 패킷 감청이 사생활을 몰살시킬 것이라고 규탄할 때, 정보주체가 맞춤 광고를 위해 선뜻 감청에 ‘동의’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의 주장들은 갈수록 허무한 외침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감시이론은 많은 부분 푸코에게 신세를 져 왔다. 푸코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이 권력의 규율 장치라는 것을 고찰하였고, 주체는 감시의 시선을 통해 훈육된다고 보았다. 죄수는 자신이 감시 하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간수의 규율을 내면화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빅브라더(big brother)론이다. 그렇지만 실제 현대 감시사회에서 CCTV와 데이터베이스는 너무나도 은밀하게 작동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있다 하더라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무도 감시를 개의치 않는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훈육된다는 것인가.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월간 사람] [특집] 성적 다양성의 의미와 성소수자 운동의 현재

[월간 사람] [특집] 성적 다양성의 의미와 성소수자 운동의 현재

책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말 자체를 잘 모르거나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에서 동성애, 성소수자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2000년 이후 한국에 소개된 성소수자 관련 서적들은 겨우 10권 안팎 수준이다. (물론 기독교와 연관된 책들은 종종 발간되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종교적 관점에 치중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의 삶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도 낮은 편이다. ‘성소수자들은 누구일까?’‘그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과거에는 존재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변과 성소수자들의 삶을 이해를 하기까지 작용하는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 책 발간에 앞서 이후 출판사 관계자 몇 명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왔다. 발간취지를 설명하면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현황에 대해 질의하고 답변하는 인터뷰 시간을 가졌고 책 이미지로 사용할 사진 몇 컷을 요청했다. 이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사진이 있는데 바로 2004년 세계사회포럼이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될 당시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폐막행진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에는 “Stop the War

[월간 사람] [특집] ‘있는 그대로’부터 시작하기

[월간 사람] [특집] ‘있는 그대로’부터 시작하기

누구나 가지고 싶은 책, 남한테 권해주고 싶은 책 그리고 사서 선물해주고 싶은 책 등이 한 권씩은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정말로 사서 선물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만화책이다. 일본 만화책인데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3년. 2009년 지난해까지 12권이 나왔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만화책이라고 해서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대학교재로도 사용될 만큼 인정받은 책이니까. 주인공은 히카루! 자폐성장애인이다. 히카루는 ‘무심한 애인’처럼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 감정이나 생각을 보여주지 않는다. 낯선 것에 대한 고통도 남다르다. 처음 간 장소에서 패닉상태가 되기도 하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런 히카루가 어린이집, 초등학교, 그리고 지금 중학교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흔히 다뤄지는 ‘장애극복 성공기’가 아니다. 히카루를 중심으로 가족과 교사, 친구들, 이웃 등이 히카루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책은 보여주고 있다. 처음 초등학교를 갔을 때 달라진 환경으로 매일 울고 소리 지르는 히카루에 대해 학교에서는 다른 방으로 혼자

[월간 사람] [특집] 인권을 넘보는 청소년들이 직접 쓴 책

[월간 사람] [특집] 인권을 넘보는 청소년들이 직접 쓴 책

책 권하는 글을 써달라고 하여, 청소년인권에 대해 무슨 책을 권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책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개중에는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처럼 출간된 지 오래 되어서 소개하자니 좀 뒷북 같은 책도 있었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처럼 나쁘진 않을 거 같기는 한데 청소년인권에 대해 알게 해주는 이야기라기에는 좀 애매한 책들도 있었다. 결국, 좀 민망하지만,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약칭 『머.피.인』)를 권해드리기로 했다. 왜 민망하냐 하면 이 책의 저자가 “공현 외 12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을 내가 추천하려니 민망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자뻑’같고, 인세 많이 받으려는 얕은 술수 같기도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청소년인권 분야에 딱 이거다, 하고 추천할 만한 책이 부족해서 그렇다. 믿어주시라. 제목에서도 딱 ‘삘’이 오겠지만 『머.피.인』은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한 책이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직접 다양한 청소년인권 이슈들에 대해서 글을 쓴 것으로, 저자들 중 반수 이상이 청소년이고 나머지도 청소년 때 청소년인권운동을 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청소년인권이란 무엇인지, 청소년인권의 목소리가

[월간 사람] [특집] 이주자에 대한 편견은 왜 ‘신화’인가

[월간 사람] [특집] 이주자에 대한 편견은 왜 ‘신화’인가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간다. 그 사이 한국 정부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체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잠깐 쓰다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이주노동자들이 그들 맘처럼 ‘처리’되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어렵사리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와 한국에서 가족 결합을 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이곳에서 결혼을 해 자녀를 낳아 키우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부모의 신분이 불안정하거나 체류 자격이 없어 언제 가족 전체가 추방될지 모를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또 그 사이 결혼 이주자들도 10만 명이 넘게 늘었고, 소수지만 난민들도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이 살아가기에 결코 쉬운 사회가 아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과 언어가 다른 이들은 매일 냉대와 차별 속에서 우리보다 더 큰 상처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한국 정부와 달리 많은 한국 시민, 노동자들은 이주자들,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 일부 언론들은 이들 이주자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 복지 등을 축내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을 심심찮게 제기한다. 이런 주장을 접하면서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다.

[월간 사람] [특집] 평화롭지 못한 평화에 대하여

[월간 사람] [특집] 평화롭지 못한 평화에 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 누구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 갔다 온 줄 알아?” 병역거부 문제가 논술시험에 등장할 정도로 공론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민감하기만 한 군대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병역거부를 선택했을 때, 혹은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을 때 마주쳐야하는 질문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대부분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비난하기 위해 이미 답을 정해놓고 궁지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더불어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평화의 얼굴』은 이야기하듯 쉽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이제 막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려는 사람이거나 그런 친구를 둔 탓에 처음 접해보는 사람에게도 병역거부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넓혀갈 수 있는 매뉴얼과 같은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삶에 기반을 둔 성찰과 고민으로 시작해 올바른 기독교를 위한 염원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 평화주의 교파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병역거부의

[월간 사람] [특집] 지구 반대편에서 전하는 지혜

[월간 사람] [특집] 지구 반대편에서 전하는 지혜

“요즘에는 뭐 하나 잘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새로운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밤 친구는 바깥 공기보다 차가운 소주를 벌컥 들이키고는 투정부리듯 말을 꺼냈다. 그러게 말이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경찰의 폭력에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과연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용감한 투쟁이 그렇게 끝난 뒤로 모든 곳에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날로 치밀하고 강도 높게 몰아치고 있다. 4대강 사업과 미디어법,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정부에 빼앗긴 광장, 어이없는 집시법,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까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크게 힘이 모이는 싸움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지 ‘초록색 이슬병’을 가운데 두고 밤새 머리를 맞대어 보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답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이런 때에 저 방문을 열고 옥수수 담배 연기와 함께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등장하면 좋으련만.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1994년까지 멕시코의 깊은 산에 살았던 마야인 농민이다. 할아버지는 마야인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를 도시에서 온 젊은 게릴라 마르코스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책읽기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책읽기

새해를 책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말 인권재단 사람의 계열사(?)쯤 되는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쫄지 마, 형사절차!』란 책을 냈는데 예상보다 잘 나갑니다. 형사소송법이 많이 바뀐다고 하여 쉬운 해설서 하나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실제 기획에 들어가고 이렇게 뚝딱 형사절차 매뉴얼로 나오게 된 데는 2008년 촛불집회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물론 이 책의 탄생에도 이 정부의 기여한 바가 큽니다. 금서목록이 그렇듯 베스트셀러 목록도 그 시대를 어림하게 해줍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한 달에 10만부씩 12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1만부를 목표로 ‘대박’을 염원하는 저희랑 차원이 다르지요. 불황에는 소설이 장사가 된다는 게 출판계 통설이라지만 베스트셀러 2위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계약을 하면서 미리 인세를 10억 원이나 주었다고 하니 이 동네의 양극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이는 현재 팔리는 책의 80%를 10여 개 출판사가 내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 그 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문제들이 출판계에서 더 심하면 심했지

[월간 사람] [특집] 박해받는 이들, 밀어내는 대학

[월간 사람] [특집] 박해받는 이들, 밀어내는 대학

지난 4월 30일, 노동절 전야제 행사가 한 대학의 정문 밖에서 진행된 일이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노동자들이 노동절 전야제 행사를 하기로 예정되었던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학교의 학생 대표자들이었다. 어찌 보면 수다한 행사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 수준의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이 경악은 빛바랜 노스탤지어의 영원한 매장일 수도 있다. 아카데미즘이라는 고상한 외피를 완전히 벗어 던진 지 오래된 대학이라는 공간을 여전히 사회와 소통하는 곳이라고 착각한 것. 혹은 진리와 양심, 정의와 평등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계속 유지시켜주길 바라는 헛된 망상. 이 사건은 그런 사고들이 이제는 분수에 넘친, 현실감각을 결여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 소회로 이 사건을 정리하기에는 경악의 본질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소회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단념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개인적 소회를 넘어 이 사회를 감싸고 있는 불길한 징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적어도 고난의 현대사를 통해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던 대학이 마침내 그 역할의 포기를

[월간 사람] [특집] 대학과 지역사회 동거동락同居同樂은 가능한가

[월간 사람] [특집] 대학과 지역사회 동거동락同居同樂은 가능한가

얼마 전 강의를 나가던 대학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선언문을 읽다 한 구절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학문과 양심의 전당인 대학”, 아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한국의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을 논하다니. 파견직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대학, 온갖 가게와 커피 체인점들이 점령한 대학, 포스코, 삼성 등 대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은 대학, 88만 원 세대를 양성하는 취업의 최전선인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이라니, 고상하신 교수님들의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대학이 학문과 진리의 전당이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얘기는 무의미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대학이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으로 학문의 전당이라는 상아탑이 부모와 학생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우골탑으로 변한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교수가 권력의 해바라기(폴리페서, polifessor)로 나서고 자기 제자를 성추행하기도 하는 이곳 대학에서 다시 학문과 진리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국립대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체질 개선에 바쁘고 사립대는 학생들 등록금 모아 적립하고 기업 후원 받기에 정신이 없는데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학, 첫 단추를 잘못 꿰다 유럽의 대학들은 낭만의 공간이나

기사 67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