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개미와 베짱이

[월간 사람] [특집] 개미와 베짱이

한 학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베짱이처럼 살고 싶은지, 아니면 개미처럼 살고 싶은지.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50:50에서부터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는 학생들의 숫자가 조금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베짱이처럼 살고 싶은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모 대학에서 수업을 같이 한 어느 학생의 말이 그 중에서 가장 걸작이었다. 개미는 겨울을 내다보고 살아가지만 가을에 태풍이 와서 그동안 쌓아놓은 것이 한 방에 다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단다. ‘개그콘서트’에 나온 분장실 강 선생의 말처럼 “한 방에 훅 갈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미들이 초라해지다 이런 베짱이들 앞에서 개미들은 의외로 초라하다. 나중에야 베짱이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찰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베짱이들의 당당함 앞에서 위축되는 모습마저 보인다. 앞의 베짱이와 같이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그랬다. 자기는 하면 된다는 것을 믿고 참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래도 안 되더란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안 되더란다.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살았지만 역시 안 되더란다. 그러더니 그 친구는

[월간 사람] [특집] 청산 못한 과거, 되풀이되는 사법파동

[월간 사람] [특집] 청산 못한 과거, 되풀이되는 사법파동

흔히 사법부를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국가기구가 인권보장 기능을 하는 것이지만 사법부를 특별히 ‘최후의 보루’라고 일컫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른 모든 권력기구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사법부가 바로 서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저지할 수 있고 다시 정상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기구는 사법부 외에는 없다. 사법부는 영장발부거부 등을 통해 무리한 수사를 초기에 막을 수 있고, 정치권력이 초법적인 정치를 선택하지 않는 한 모든 문제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갖는다. 게다가 사법부는 입법부가 만든 법률이나 행정부의 명령, 규칙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려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사법부가 올곧게 자기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통치 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 우리 사법부의 현실은 어떨까? 정말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 제 구실을 하고 있을까? 만약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근대 이후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법사학 연구에

[월간 사람] [특집] 박정희의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월간 사람] [특집] 박정희의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1961년 봄.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 1950년대 서울 일대를 주름잡던 무소불위의 정치깡패 두목들이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깃발 아래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들은 동대문시장 등 각종 상권을 둘러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정치권의 하수인으로서 정적에 대한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물론 영화배우 성상납 등을 통해 권력의 비호를 받아왔다. 깡패들에게 법은 무의미했으며 그들의 활보는 일상의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생존권을 사치로 만들어 버렸다. 해방 이후 좌우익 테러와 한국전쟁 기간 학살의 공포를 경험한 인민들에게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국가에 걸었던 기대를 포기하게끔 했다. 인민들은 며칠 전까지 자신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들을 체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비아냥거림으로 만든 새로운 국가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1961년 5월의 봄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서울대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생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찾아온 새로운 국가권력을 찬양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4월혁명의 기대와 달리 무능했던 제2공화국 장면 정권을 뒤로 한 채, 한국전쟁 이후 가장 근대화된 조직인 군대가 국가를 장악한 것을 미완으로 그친 4월혁명의 종결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가권력은

[월간 사람] [특집] 핵을 넘어 생태도시로

[월간 사람] [특집] 핵을 넘어 생태도시로

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습니다. 안전하다던 원자력 발전의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일 방사능 누출 소식이 들려옵니다.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언론지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경제적이지도 않고, 더더욱 안전하지 못한 에너지임이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우습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은 ‘원자력 르네상스’ 운운하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섬겨왔습니다. 원전 수출로 나라가 떠들썩하였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릴 수 없다”고, 이번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생거부안’으로 불리던 고장 지난 수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한 고을이 있습니다. 혹자는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발로 차버렸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인구 6만 명이 사는 조그마한 고을, 부안입니다. 변산 해수욕장과 채석강, 내소사로 제법 알려진 지역입니다. 너른 들녘과 바다, 솟은 산을 고루 갖추고 있어 예로부터 ‘생거부안(生居扶安)’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고장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장 반대운동이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난 1991년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와 전라북도는 ‘서해안 시대’를 운운하며 전북발전의 장밋빛 환상을 뿌려대었고, 개발과 환경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현장입니다. 부안과 군산을 잇는 세계 최장의 33.9km

[월간 사람] [특집] 에너지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월간 사람] [특집] 에너지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묵인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를 묵인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법, 결정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 나아가 녹색사회 전환과 정치과정 변화와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간 사람] [人터뷰] 춤추는 별과 시 쓰는 하마

[월간 사람] [人터뷰] 춤추는 별과 시 쓰는 하마

내리네 우리내 마음에 천사의 꽃이 내리네 그대여 우리가 그때 약속을 했지 천사꽃이 내리면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 김탄진 <천사의 꽃> 춤추는 별 별은 특별하다. 생이 주어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줄곧 춤을 춰왔다. 왼쪽 뒤편으로 살짝 기울어진 머리가 살랑댈 때, 그녀의 몸도 함께 들썩인다. 몸 안쪽으로 비틀린 오른 팔, 엄지와 검지가 연신 서로를 비벼댄다. 속살을 까집는 아픔에도 그들의 애무는 끝나지 않는다. W자로 앉은 다리, 비록 맘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녀의 춤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뿌리임에는 틀림없다. 생의 배터리가 닳기 전까지 그녀의 춤은 멈추지 않는다. 자동인형처럼 경직과 이완을 반복하는 그녀의 몸은 고통을 달래줄 약을 필요로 하지만, 숙명처럼 주어진 이 모든 불편함과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사랑을 꿈꾼다. 1964년 가을 춤추는 별, 장애경 씨는 뇌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4남매의 맏이인 그녀는 첫 아이에 대한 부모의 푸른 꿈을 한숨으로 바꿔버렸다. 부모는 아픈 아이를 안고 업고 병원이며 무당집이며 가리지 않고 거리를 헤맸다. 하지만, 아이의 젖살이 늘어갈수록 부모의 희망은 그만큼 옅어져 갔다. “엄마가 임신해서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몇 주 전부터 《사람》 사무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 서너 명이 찾아옵니다. 둘러앉아 회의를 합니다. ‘작은 음악회’라는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별로 음악적 조예가 깊어 보이거나 문화와 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흔히 유서대필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0년을 맞아 하는 행사랍니다. 꽤나 시끌벅적 회의를 합니다만 그 모양새가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약간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월간 사람] [특집] 혐오라는 사회적 질병

[월간 사람] [특집] 혐오라는 사회적 질병

혐오감(嫌惡感)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는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쾌(긍정적 감정)를 추구하고 불쾌(부정적 감정)를 피하려 하므로, 불쾌감을 주는 대상을 싫어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예를 들면 뱀은 원초적인 불쾌감을 야기하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싫어하고 나아가 미워하는 감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쾌감을 주는 대상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런 대상을 굳이 ‘병적으로’까지 싫어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병적인’ 혹은 ‘극대화된’ 감정 상태야말로 혐오감을 이해하는 열쇠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튼 분명한 것은 혐오감이 불안이나 초조감 같은 여타의 부정적인 감정들보다도 훨씬 강한 강도를 가진 격렬한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격렬한 감정의 원인으로는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월간 사람] [특집] 혐오범죄, 그 폭력의 구조

[월간 사람] [특집] 혐오범죄, 그 폭력의 구조

1998년, 매튜 셰퍼드(Matthew Shepard)라는 20세 청년이 미국 와이오밍 주 라라미 근처에서 중상해를 입은 채 발견되었다. 두 명의 가해자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매튜 셰퍼드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며칠 만에 숨을 거뒀다. 200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가 한국인 남성에게 얼굴과 상체를 수차례 칼로 찌르는 상해를 입히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들은 인종혐오 범죄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라디오코리아, 2009년 6월 3일). 2009년 헝가리에서는 집시 가족이 살고 있는 주택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불타고, 불을 피해 집을 빠져나오던 아버지와 5세 아들이 방화 용의자들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집시에 대한 혐오범죄로 알려졌다(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숙인,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구조화된 혐오’는 차별과 배제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혐오 주체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자의 생명과 신체, 그리고 정신에 대해 치명적인 상처를 가하거나 물건이나 주택 등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혐오가 극단적인 범죄로 표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본래 범죄 행위는 그 자체로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이다. 이러한 범죄가 차별적인 동기와 결합하여 발생한다면, 그 침해의 심각성은 더할

[월간 사람] [특집] 혐오발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월간 사람] [특집] 혐오발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인터넷이 공론장의 기능을 한다지만, 그것은 공적 이성의 사용을 통해 수평적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낙관적인 담화민주주의의 장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수평적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다양한 권력벡터들의 담론에 의한 수행적 힘을 갖고 있는 혐오발화가 난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론장에서 펼쳐지는 혐오발화의 향연은 대부분 근거 없는 편견에서 기인한 ‘역사적인 것’을 발화자가 차용하고 되풀이하면서 생산·증폭된다. 이를테면 짱깨, 검둥이, 빨갱이, 병신, 등신, 문둥이, 화냥년(환향녀), 꽃뱀과 같이 오랜 전통을 가진 익숙한 것이 있는가 하면, 보슬아치, 된장녀, 병맛, 지잡대, 전라디언, 좌빨, 보징어, 좌좀, 촛불좀비, 패륜녀처럼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어원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신조어도 있다. 소수자에 대한 고전적인 혐오발언들이 주로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최근에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우후죽순처럼 탄생하여 남용·오용되는 혐오발화들은 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용어라는 것이 특징이다. 여하튼 혐오발화의 대부분은 발화자가 수신자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모욕을 주고, 자신들의 쾌락을 소수자들이 빼앗았다는 식의 사고이거나 혐오발화를 통해 발화자의 의도대로 수신자를 좌지우지하려는 목적을 띄고 있다. 언어라는 것은 사람이 쓰기도 하지만, 언어가 사람을 쓰기도 한다. 혐오발화는 그 자체로 ‘호명(呼名)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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