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월간 사람]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한미FTA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정부는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협상이 중단되는 일은 결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로 협상이 타결되고,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받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10년 뒤의 한 외교관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를 구성해 보았다. 우리의 미래가 시나리오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노점들 사이를 헤치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으니 이건 출근을 한 게 아니라 무슨 한 판 전쟁을 치르고 온 기분이다. 외교부 생활 10년에 남은 건 만성피로에 짜증뿐이다. 매사에 의욕도 없고,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미국과 문제만 터졌다 하면 광화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해대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외교부가 연기 행정도시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은 것도 문제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국회에서는 자료를 내놓으라고 들볶고, 위에서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조인다. 시위나 국회의 닦달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를 무슨 미국 간첩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올해는 연초부터 긴장이 팍 걸리고 있다. 6월 민주화운동

[월간 사람] “반성 없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월간 사람] “반성 없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우리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아세요.” 재홍이 일어나며 말했다.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이여 지도를 펴고 한반도를 보라. 조국은 싸우고 있다. …” 반 레가 일어났다. “우리가 얼마나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서베를린에서는 2만여 명의 시위대가 호치민을 연호하며 우리의 싸움에 연대를 표시했고 파리에서는 학생들이 쎄느 강 좌안의 중심가를 ‘영웅적인 베트남 지구’라는 이름으로 바꿔 불렀죠. 소르본느 대학 도서관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 ‘우리 함께 하리라.’, ‘호 호 호치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게 승리를.’ 이 구호가 온 세계에 메아리쳤죠. 우리는 세상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중에서 지난 3월 12일 베트남, 동티모르, 웨스트파푸아, 버마, 필리핀 등 5개국 인권활동가를 초청하여 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했던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의 ‘평화공감 오인오색(五人五色)’ 행사 첫 순서. 한 이국 청년이 ‘민간인학살, 국제결혼, 성매매를 중심으로 한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들’이란 주제의 발표문을 유창한 한국말로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이 곧 세계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1960년대. 세계의 중심, 반제국주의 투쟁의 상징이자 최전선이었던 나라 베트남에서 온 레 탄동(Le Tahng Dong, 28)이란 이름의

[월간 사람] 덕수궁이 포위되다

[월간 사람] 덕수궁이 포위되다

덕수궁이 포위되었다. 다른 때라면 제례의식을 해야할 덕수궁에 전경들의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FTA와 관련한 모든 집회가 불법이란다. 헌법 상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는 한순간에 뭉개지고 어느덧 국가권력이 모든 집회시위를 통제한다. 따뜻한 봄날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도, 온도가 떨어져도, 모든 집회시위를 통제해도, 왜 시민들은 집회를 하려 하는가? 국가권력은 왜 그녀/그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집회를 하려 하는지 생각해보았는가? 덕수궁이 포위되었다.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도, 인권도, 공권력에, 국가권력에 의해 포위되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월간 사람] 4월은 잔인한 달?

[월간 사람] 4월은 잔인한 달?

이번 호를 만들면서 마음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급하게 대추리 촛불문화제를 마감하는 날에 맞추어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에 나섰던 문학인들이 썼던 시와 산문들을 묶어서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문학인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책이 잘 나왔고, 출판기념회도 성대하게 잘 치러졌습니다. 대추리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모으는 일, 그리고 앞으로도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4년간의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기꺼이 떠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 24일 935일째 촛불문화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족히 4백 명은 넘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낮부터 늦은 밤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대추리에서 낯이 익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대추리를 지키자고 했던 이들의 마음이 연대되었던 것이겠죠.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대추리를 지키느라 고생했던 주민들은 간간이 눈물도 흘렸지만, 가급적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는 주최 측의 노력이 가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대추리 농협 창고는 눈물바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촛불의 힘으로 4년을 버텼는데, 이제 마지막 촛불문화제라는 멘트를 사회를 맡은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이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935일이라는 길고긴 날을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면서 촛불을 들어왔던 그들, 그들은 곧 정든 고향마을을 등지고 이삿짐을 싸야

[월간 사람] 교육이란 상품을 소비하는 자본

[월간 사람] 교육이란 상품을 소비하는 자본

‘못 배운 게 한’이란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한 평생 고생하며 번 돈을 OO대학에 쾌척했다는 미담 기사를 볼 때마다 그 분들이 겪었을 교육에 대한, 교육에 의한 차별과 불평등, 나아가 수모와 멸시가 얼마나 컸을 지를 어림짐작하게 된다. 한국은 학벌사회다. 이 말은 한국에서 교육이 부의 세습과 빈곤의 대물림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란 말이며,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육은 의무이자 권리이고 책임이다. 그러나 교육문제에서 횡횡하는 시장주의, 공교육의 사망선고, 조기영어 열풍과 생계를 위협하는 사교육, 교육이 나서서 양극화를 구조화 하는 현실에서 정작 교육의 내용은 반세기 전 국가주의 교육을 답습하고 있으니, 교육권이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월간 <사람>은 교육권의 원론적인 내용보다 교육권이 처한 이러한 현실을 진단했다.

[월간 사람] 학교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버려~

[월간 사람] 학교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버려~

대졸 이상의 엄마 아빠, 전문직 이상 아빠, 돈 많이 버는 아빠 영어되는 엄마, 집에 있는 엄마, 입시정보에 빠른 엄마, 정보망과 인맥이 있는 엄마 무턱대고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사교육시장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엄마 좋은 동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와 대학입시에 관해서만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 독립적이긴 하나 반항적이지 않은 아이, 자신감 있는 아이,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 전문직 이상을 꿈으로 하는 아이(교사, 간호사, 경찰, 어른 등 평범한 꿈이 아니라) 간혹 이기적인 아이, 함께 나누는 것보다 경쟁에서의 승리를 더 좋아하는 아이 TV와 컴퓨터 게임을 자제할 줄 아는 아이, 오래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 면학분위기가 괜찮은 학교, 오래 공부시키는 학교 교사 말을 잘 듣거나 그런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

[월간 사람] 초등학교 영어도입 10년, 허와 실을 묻는다

[월간 사람] 초등학교 영어도입 10년, 허와 실을 묻는다

조기영어교육” 혹은 “영어조기교육”에서 “조기”란 용어의 정의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해온지 이미 10년(1997년부터 실시)이 되었고, 지난해에는 교육운동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어교육을 확대 실시하기 위한 시범학교(50개교)를 선정하였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은 조기영어교육이 아니고 “초등영어교육”으로 그 용어가 정착된 느낌도 준다. 따라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하는 영어교육이 조기영어교육이고,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조기”라는 용어를 부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정부나 보수언론은 영어교육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월간 사람] 교실에서 국가는 떠나라

[월간 사람] 교실에서 국가는 떠나라

국가주의 교육이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국가이익과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의 육성에 두는 교육”이라 정의할 수 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는 교육과 문화의 형태로 유지되고 재생산된다. 한국의 경우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군사주의, 배타적 혈연주의, 남성가부장문화가 주요한 특징이며, 한국에서 교육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남성가부장문화의 바탕 위에 배타적 민족주의를 군사문화를 통해 체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문화의 유지, 재생산을 위해 획일화된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주의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체득되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머리모양에 정렬된 책상 학교 현장의 일면을 재구성해보며 어떻게 국가주의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체득되는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난 작년 말부터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올 초, 중학교 신입생의 임시담임을 맡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조잘조잘 재잘재잘하며 임시로 배정된 학급에 모여 있다. 복장도 두발도 제각각이다. 울긋불긋 교실은 활기가 넘치고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다. 그런 학생들은 바라보며 3월에 입학하고 난 뒤의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모두가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바둑판마냥 가로 세로로 정렬 된-흡사 군인들의

[월간 사람] 충성맹세를 가르치는 이들에게 묻노니…

[월간 사람] 충성맹세를 가르치는 이들에게 묻노니…

적어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정당하려면 그 국가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여야 하며, 그 선함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신을 상정하지 않는 한 그러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는 그 어디에도 자유로운 시민과(국민이 아닌) 그 시민(개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써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단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만 한다는 강제만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이 도덕과에서 설정하는 도덕적 인간상이며, 한국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이 되는 것이다.

[월간 사람] 빈곤과 장애,그리고 새로운 교육소외

[월간 사람] 빈곤과 장애,그리고 새로운 교육소외

교육에 있어서 평등이란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학교의 교육조건과 같은 실제적인 교육 과정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결과에 관한 단계로 이어진다. 이중 교육 기회는 가장 일차적으로 보장해야 할 기본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바로 이 기회에서조차 불평등을 넘어선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 교육소외란 신체적, 지역적, 사회.경제적 요인 등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적절한 교육기회를 보장받지 못함에 따라 우리사회에서 보장하는 최소한도의 교육수준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로 규정할 수 있다. 하기에 이는 무엇보다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기사 67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