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비탈에 선 인권단체연석회의

[월간 사람] [특집] 비탈에 선 인권단체연석회의

길 가다가 지갑 주웠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17대 총선결과에 서로들 놀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예전에 없던 기대감으로 국회를 쳐다봤던 시절이 있었다. 명색이 ‘개혁’ 정당, 자칭 ‘민주화’ 세력이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넘는 의석을 확보한데다 민주노동당도 화려하게 원내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감이 꽤 많이 남아있던 2003년 6월 10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여느 때와 별 다름 없어 보이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8개 인권단체들이 <17대 국회에 요구하는 인권입법과제 의견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눈에 띄는 점은 A4 용지 30장이 넘는 분량의 의견서에 담긴 인권입법과제들과 함께 기자회견 주최단체였다. 바로 이날이 현재 38개 단체로 불어난 인권단체들의 모임인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가 세상에 처음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낸 날이다. 너의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의견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서두에 지난 16대 국회를 과거청산과 시민정치적 권리, 노동권과 평화권 등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고 17대 국회가 지켜야할 입법의 원칙과 7대 과제를 제시해 놓고 있다. 또한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과거청산, 시민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차별, 정보인권 등에 걸친 30여개가 넘는 법안의 필요성과 입법

[월간 사람] [특집] 자신을 돌아보고 관성과 싸워라

[월간 사람] [특집] 자신을 돌아보고 관성과 싸워라

이 글 정말 쓰기 싫다. 왜냐하면 별로 인권단체연석회의에 대해 생각한 것이 없었고, 요즘 글을 쓰기가 정말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라고 하니, 한번 용기를 내어 써보겠다. 인권운동에 대한 인권운동에 헌신하는 여러 인권활동가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며, 사랑과 애정의 마음으로 인권활동가들을 생각하며, 인권운동에 대한 평소 생각을 밝혀보고자 한다. 그리운 서준식 선배 오랜 기간 인권운동을 하며 나는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나에게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해 왔다. 80년대의 최루탄 연기 속의 나, 교도소 앞의 나, 양심수와 나,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 여러 인권운동가를 만났고, 그리고 헤어졌다. 가짜 운동가도 만났고, 엉터리 운동가도 만났고,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권 운동하는 사람도 만났고, 인권운동도 일등 하겠다는 사람, 인권단체의 대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만났다. 88년도인가 원주의 베른성당에서 17년간의 징역에서 석방된 서준식 선배를 만났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서준식 선배는 인권운동을 하지 않는다. 서준식 선배가 금방이라도 나타나, 예전의 그 활기 찬 모습으로 같이 인권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반목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 사랑했으면 한다. 인권 운동하는

[월간 사람] [특집] 서늘한 곳에서 유통되는 마지막 운동

[월간 사람] [특집] 서늘한 곳에서 유통되는 마지막 운동

얼마 전의 일들이 당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는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문화연대가 언제 인권단체연석회의에 가입했더라… 아마도 올해 여름쯤인 것 같다. ‘추천서’와 전체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알면서도 괜스레 심퉁 거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인권단체연석회의의 까다로운(?) 조건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인권’이라는 낱말과 개념이 심각한 불일치 상태에 놓여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누구나 ‘인권’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건만 어디에도 ‘인권’의 개념은 부족한 사회에서 인권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특별한 자격과 지위 그리고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방부의 평택 대추리 도두리 빈집철거에 맞서 인권활동가들이 평화망루 위에 올라 농성시위를 하고 있다. 이렇듯 특별한 자격과 지위 그리고 용기를 공인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호간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활동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절박함 때문일까, 인권단체연석회의의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고, 이 독특함은 다시 사회운동 전반에 적잖은 활력과 선명한 성과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올 한해 평택 투쟁에서 보여 준 인권운동의 연대는 어느 언론의 지적처럼 운동의 의미 자체를 새롭게 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권운동이 국가 폭력의 문제에서

[월간 사람] [특집] 전환기의 국제연대

[월간 사람] [특집] 전환기의 국제연대

인권침해의 양태는 각 나라별로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혹은 체계의 다양성 등으로 인하여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 변화의 시작은 국내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며, 그 범위를 더 넓게 하는 차원에서 국제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국내의 움직임 없이 단순히 국제연대 활동만으로 한 나라의 사회 변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인권운동이 외국단체와 외국상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연대할 의지가 있는지 아직은 미지수라 할 수 있다. 사진은 11월 22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외국활동가. 캄보디아를 단적인 예로 들 수가 있다. 물론 동시대의 지식인들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탓도 있겠지만, 국제연합이 캄보디아에 들어서고, 그 뒤 각종 국제인권단체들도 상주하여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물가상승으로 지역경제가 허물어졌을 뿐만 아니라 국내 시민사회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젊은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국제연합이나 각종 국제인권단체들 혹은 해외의 인권단체들의 활동에만 매몰됨으로서 실질적으로 국내 활동이 상대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사안임에도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권운동은 어떤 자세와 입장을 가지고 있나 물론 외부의 압력이 국내 인권활동에 도움을 주는 것이

[월간 사람] [국제인권] 죽음의 트라이앵글

[월간 사람] [국제인권] 죽음의 트라이앵글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실종을 시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죽이더라. 조금 지나니 자기들이 저질렀던 일을 자기들이 조사하여 처벌한다고 각종 기구를 만들더라. 또 조금 지나더니 유가족들에게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준다며 그 일을 저질렀던 자신들에게 와서 보상금 신청하라고 하더라. 그것도 늦게 하면 보상금도 없다고 빨리 신청하라고 설쳐대더라. 이것이 내가 나서 자라고 떠나기 전 국가가 나에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월간 사람] [인다방] 12월에 부르는 환희의 송가

[월간 사람] [인다방] 12월에 부르는 환희의 송가

몇 년 전의 일이다. 매일 새벽 수영장엘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물이 들어갔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찾고 보니 청력이 조금 떨어진다며 정밀 진단을 하자고 해 놀란 적이 있다. 다행히 며칠 약을 먹으니 청력도 회복되고 멍~한 현상도 말끔해졌지만 이런 증상을 보인 환자가 이를 방치할 경우 30%정도는 결국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경우에까지 이른다는 의사의 말에 얼마나 겁을 집어 먹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다 쭈뼛거릴 정도다. 더구나 나는 음악을 한다는 사람인데 말이다. 듣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서양음악의 역사에도 청력을 잃었던 음악가들이 몇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단연코 이 사람.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고 말이다. 사실 장르를 막론하고 연말에는 정말 크고 작은 공연들이 많은데 특히 클래식 공연에서는 12월이면 빠지지 않은 레퍼토리가 있으니 그 곡이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일명 <합창 교향곡>이다. 이 곡에 대해 아직 감이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음악 교과서에 등장했던 노래 “환희의 송가”를 떠올리면 된다. 이

[월간 사람] [이슈] 인권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월간 사람] [이슈] 인권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취재 기법 중에 ‘귀대기’라는 것이 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으려 할 때 쓰는 수단이다. 일단 문틈에 귀를 가져다 댄다. 그리곤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 글자씩 희미하게 고막을 스친다. 여러 명 분을 모아 하나 둘 맞춰보면 문장이 된다. 지난 9월25일 오후 7시 서울 을지로 1가 국가인권위원회 뒤편 중화요리 집에서도 이 방법이 유효했다. 조영황 당시 위원장을 제외한 인권위원들이 모였다. 오후 2시쯤 전원위원회에서 “물러날 때가 됐다”면서 자리를 박차고 잠적한 조 위원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비공식 회의였다.

[월간 사람] [이슈] 개혁이 아니라 재구성이 필요하다

[월간 사람] [이슈] 개혁이 아니라 재구성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개혁이 필요한 것보다 이제 방향을 잡아 가야할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개혁을 논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국가인권위 지도부의 리더십 부족과 비인권적인 인권위원 구성의 문제가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월간 사람] [人터뷰] 23년간의 죽음

[월간 사람] [人터뷰] 23년간의 죽음

2002년 11월 28일. 30여일 넘게 비닐천막 하나 없이 노숙농성을 벌이던 의문사 유가족들이 여의도에 있던 옛 한나라당사 옆 건물, 수위실 TV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TV에서는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한 국방부 특조단의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국방부가 특조단을 구성한다는 소리가 들려올 때부터 예상했듯이, 허원근 일병이 타살되었고 군의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의 발표를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허영춘 씨는 어느새 건물 밖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1984년 강원도 화천 GOP에서 M16 소총으로 양쪽 가슴에 두발을 쏘고, 그래도 죽지 않아 머리를 쏴서 자살했다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아버지, 허영춘 씨를 만나러 유가협(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실로 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23년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는 분이라는 그 이유가, 아버지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그 사실이 섭외 막판까지 기자를 망설이게 했다. 역시나 허영춘 씨는 “어 그래, 와라”는 말 한마디로 어렵게 입을 떼었던 기자의 말꼬리를 덮어주었다. 총소리는 두 방인데 왜 총상이 세 개예요? 그게 4월 2일이었지. 이놈들이 1시

[월간 사람] [인권캠페인] 에이즈 예방법 전부개정안 발의되다

[월간 사람] [인권캠페인] 에이즈 예방법 전부개정안 발의되다

공동행동은 “기존 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기본으로 해 에이즈 예방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인권침해만 재생산하고” 있으며 또한 “정부의 개정안 역시 에이즈와 감염인에 대한 후진적이며 반인권적인 시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라며 전부개정안 발의의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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