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월간 사람] [특집] 누구도 한양주택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월간 사람] [특집] 누구도 한양주택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도시는 크게 계획도시와 자연도시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서 만든 도시를 뜻하고, 후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를 뜻한다. 달리 말하자면, 계획도시는 계획적 개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고, 자연도시는 비계획적 개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시화가 강력히 추진되면서 일반적으로 계획적 개발의 중요성이 더 중요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개발이 도시의 숙명이라는 사실도 역시 분명하다. 개발이 도시의 숙명이라지만 도시개발은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자연훼손의 문제이다. 도시는 대체로 자연을 파괴하고 각종 시설물과 건축물을 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자연훼손의 문제가 일어난다. 또한 도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를 외부에서 유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도시 외부지역에서 심각한 자연훼손을 일으킨다. 둘째, 문화훼손의 문제이다.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는 많은 곳은 그 나름대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국토가 작은 곳은 더욱 더 그렇다. 셋째, 불평등의 문제이다. 도시개발은 보통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부유한

[월간 사람] [특집] 지역과 민주주의를 개발이 좀먹고 있다

[월간 사람] [특집] 지역과 민주주의를 개발이 좀먹고 있다

지역개발=발전 이라는 공식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지역이라는 공동체와 주민들에게 ‘가난’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그곳에 개발의 ‘신천지’를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새 좀처럼 꺾이지 않는 ‘신화’가 탄생된다. 전국이 무차별 지역개발로 난리 아닌 난리가 되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이러한 공식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전형을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지역개발’ 이라는 논리 앞에 이미 사회적 담론으로 성장한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과 조화로운 개발’은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또한 지자체가 정부에게 어떠한 부담을 끼쳐 사업을 강행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개발론자 중심의 ‘지역개발로드맵’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만금 찬성 프로레슬링 대회까지 1991년 11월 28일 성대한 기공식과 함께 막이 오른 새만금 사업은 이후 총선, 대선, 각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선거와 ‘합체한(?)’ 새만금을 장식한 미사여구는 어떠한 선동문구에도 뒤지지 않는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 “ 전북 최대의 숙원사업”, “세계 최장방파제”등 최(最)자가 가장 많이 들어간 지역개발 사업일 것이다. 새만금을 표현하는 미사여구의 백미는 “낙후된 전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국가주요 사업으로 진행되지만 개발에 따른

[월간 사람] [특집] 개발은 발전권인가

[월간 사람] [특집] 개발은 발전권인가

내가 어렸을 때는 도로에 ‘로터리’라는 것이 많았다. 중간에 무슨 탑이 세워져 있고 차들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곳을 그렇게 불렀다. 어느 날 자주 다니던 로터리에 ‘수출 100억 불 달성기념탑’이 세워졌고, 그걸 차안에서 바라보며 빙그르르 도는데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를 타는 것처럼 즐겁고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수출량, GNP, 주식시세, 통화가치 등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지표들이 보여주는 ‘성장’이 무엇과의 거래를 통해 이뤄졌고, 그 성장의 열매가 누구의 몫이 되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서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떨까? ‘뉴타운 환영’, ‘재개발 환영’ 등의 펼침막으로 도배된 거리를 지나면서 마냥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디로 가란 말이냐’,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댓글을 달고 속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삶의 터전 위를 달릴 때마다 쫓겨나는 사람들, 환경파괴, 생계수단의 박탈, 인권침해라는 정류장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리는 이들은 ‘경제성장이면 다 된다!’는 확성기를 끄지 않는다. 그 소리에 맞춰 흥얼거릴 것인가, 아니면 정류장에 내팽겨쳐진 사람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월간 사람] [한상희의 쇳소리] 통상절차법안을 위한 변명

[월간 사람] [한상희의 쇳소리] 통상절차법안을 위한 변명

현대사회는 풍요해질수록 위험도 증가한다. 핵발전의 과학은 편익과 함께 체르노빌의 재앙도 안겨준다. 개인의 발견은 근대 이후 최대의 사건이지만 그의 무한욕망과 신자유주의의 ‘잘못된 만남’은 수많은 인간을 양극화의 질곡으로 처단한다. 이 역설의 위험사회를 두고 울리히 벡은 비판적 성찰과 대항담론의 형성을 요청한다. 기업이나 관료가 생산하는 근대화담론이나 지식들에 숨겨져 있는 한계들을 천착해 내고 그에 대한 사회적 제어장치를 구축하는 대중적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최근 한미FTA 등 통상조약의 체결과정에 국회가 관여할 수 있도록 한 통상절차법안은 이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실제 한미FTA의 체결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논의 과정에서 대중들은 무엇으로 대접되고 있는가이다. 대중이 그 “풍요”에 내재하는 수많은 위험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정책대상으로 전락하여 마냥 나라님의 은전만을 기다리는 수혜자·소비자의 처지로 전락되어 버리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예의 통상절차법안은 이 점을 주시한다. 종래 관료들 혹은 자본가나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테크노크라트 집단에 장악되어 있던 조약체결권을 국회가 공유하면서 사전적·예방적으로 그 위험과 질곡을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이들 집단이 만들어내는 지식담론-혹자는 이를 ‘은밀하고 치밀한 폭력’이라

[월간 사람] [인권운동 길찾기] 진보적 인권운동은 끊임없는 재구성의 작업

[월간 사람] [인권운동 길찾기] 진보적 인권운동은 끊임없는 재구성의 작업

지난 호에서 인권운동은 진보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늘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진보하여 왔고, 앞으로도 진보할 것이라는 점을 당위로 설정하고 있는 필자의 견해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현실에서 인권은 늘 진보의 방향으로만 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누구도 나서서 인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개발우선론을 앞세워 인권을 유보하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인권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펴더라도 인권 그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들의 논리로 인권을 주장한다. 지금 당장 노동자 하중근을 때려죽이는 정권이라고 해도 그 정부에서는 인권이란 꼬리표를 달고 많은 정책들을 실행한다. 기업하는 이들도 인권을 깡그리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삼성과 같은 배짱 좋은 몇몇 기업들 빼고는 당장 눈앞에서만은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인권이 상식이 된 우리 사회에서 왜 아직도 인권은 해결되었거나 곧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없는 것인가? 과거처럼 혹독한 정치탄압도 없으며, 고문도 사라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 된 나라이기도 한 한국에서 인권운동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인권운동의

[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소설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Gunter Wilhelm Grass). 그는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 이후 최대 간첩’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 한국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오기도 했을 만큼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런 그가 8월 12일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곧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의 집필 배경을 밝히며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고, “2년 뒤인 17세에 무장친위대로 발령받아 종전 때까지 복무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이를 두고 권터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폴란드 그단스크시에서 그와 함께 명예시민증을 받은 바 있는 전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는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반납하라며 강하게 쏘아붙였다. 비단 바웬사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고백을 두고 자서전을 팔아먹기 위한 쇼가 아니냐며 빈정거렸고 현지의 여론도 한동안 양분되었다. 뒤질세라 한국의 보수언론들도 그의 양심은 빈 깡통이라 비아냥대며 바다 건너에서 비난의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얼마 뒤 권터 그라스가 그단스크시장에게 절절한 참회의 편지를 보냈고, 시장뿐만 아니라 바웬사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월간 사람] [인권 톺아보기] 고 하중근 포항건설 노동자 사인진상규명 투쟁

[월간 사람] [인권 톺아보기] 고 하중근 포항건설 노동자 사인진상규명 투쟁

고 하중근 포항건설 노동자 사인진상규명 투쟁 지난 7월 16일 포스코 농성장 경찰력 투입에 항의하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다쳐 뇌사상태에 빠졌던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이 8월 1일 끝내 숨졌다. 지난 해 전용철 농민의 죽음 이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발언을 하고 경찰청장이 물러난 지 8개월만의 일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 한 달을 훌쩍 넘겼음에도 사인은 좀처럼 규명되지 않고 있다. 8월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넘어져서 다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발표했다. 이는 하중근 열사대책위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은 것이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진압 책임자가 부검 중간결과를 발표한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라며 “고정된 물체에 의해 다쳤다는 식으로 가는 것은 경찰이 사건을 은폐, 왜곡시키려는 것”이라 비난했다. 또한 8월 24일 ‘포항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대위 진상조사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며 국과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진상조사단 김혁준 의사는 “동일 시간대에 5군데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집단 구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 없는 명백히 상식적인 일인데 국과수는 사인에 대해 ‘전도’라느니 엉뚱하게 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과수의 “직접적인 가격보다는 전도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검찰 기소와는 달리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검찰 기소와는 달리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2005년 4월 16일 오산 수청동에서는 철거민들의 망루 건설을 저지하던 경비용역업체 직원 한 사람(망인)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편집자 주. 자세한 내용은 월간 <사람> 1호(2005년 7월)에 게재된 ‘철거된 인권 경기 오산시 수청동 철거현장’ 참조]. 위 사건으로 인해 당시 농성에 참여하였던 철거민들이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받았다. 사망한 경비용역업체 직원의 부모(원고)는 2005년 7월 경 주공(대한주택공사),경비용역업체,철거민들을 공동피고로 하여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수원지방법원에 제기(수원지방법원 2005가합12349 사건)하였으며, 2006년 5월 25일 1심 판결이 선고(현재 항소심 진행중)되었다. 이 글은 위 수청동 민사 판결이 갖는 의미에 관한 것이다. 오산시 수청동 일원에 대한 오산세교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자인 주공은 사업지구 내 토지 건물 등에 대한 보상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일부 주민들은 수청동 철대위(철거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주자택지 제공 등 실질적인 주거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수청동 철대위(8세대)는 강제철거에 맞서기 위해 다른 철거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전날 밤부터 수청동의 한 연립주택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기 시작하였다. 사건 당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주공 오산신도시사업단 소속 임직원들, 용역경비업체 직원들, 대규모 경찰병력, 소방차 및 구급차, 오산시 공무원들 등이 건물 주변으로 신속하게 운집했다. 사건 당일 오후

[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변함없는 정권 말기 낙하산 인사, 지조 없는 수구언론

[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변함없는 정권 말기 낙하산 인사, 지조 없는 수구언론

#장면 1 일파만파로 논란 커지는 청와대 낙하산 인사 2006년 8월 10일 오후. 문화관광부 유진룡 전 차관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자신의 집으로 ‘불쑥’ 찾아온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열흘 전쯤 ‘잘린’ 유 전 차관은 가족과 여행을 떠나려던 참에 집 앞까지 찾아온 동아일보 기자와 부닥친 것이다. 유 전 차관은 “인터뷰 할 뜻이 없다. 나 좀 봐주라. 좀 쉬려고 한다.”고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누차 거절했다. 그리고 거듭된 질문에 청와대로부터 산하기관 인사의 낙하산 청탁 압력을 증명할 만한 내용의 몇 가지 대답을 했다. 기자에게는 이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인터뷰 내용. 동아일보 기자는 문화관광부 관계자의 발언과 차관 경질 당시 상황 및 배경 등을 묶어서 11일자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그리고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압력 정황을 담은 이 기사는 당장 이날 오후부터 문화일보가 받아서 쓰는 등 청와대와 한나라당, 언론 등이 지대한 관심을 쏟아내는 ‘특종 기사’가 됐다. 동아일보와 함께 ‘수구언론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잠시 자존심을 접고 경쟁 신문의 특종 기사를 하루 늦은 12일자로 ‘받아서’ 썼다(신문기자들은 다른 신문의 특종을 자신의

[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정치공간에서사라진 여성

[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정치공간에서사라진 여성

“지금부터 **** 규탄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활동가의 규탄 발언을 듣겠습니다.” “***대표님의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한 기자회견장. 플래카드를 들고 발언자와 회견문 낭독자, 사회자가 죽 늘어서 있다. 어? 근데 뭔가 이상하다. 뭐지? 뭐지? 그런데 한 편에서 기자들에게 열심히 회견문과 보도자료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 뭘까?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내가 뭘 불편하게 느꼈는지 알았다. 발언자, 사회자, 낭독자들은 모두 남성이고, 보도자료를 나눠주는 사람만 여성이었다. 우리도 잘 한건 없더라 월간 <사람>의 창간호 표지는 경남 함양의 권수달 할머니였다. 여태까지 총 14권의 잡지가 만들어졌고 그 중에 인물사진으로 표지가 들어간 것이 10번. 창간호를 제외하고 표지 인물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간 <사람>의 표지가 항상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인물들만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의 태생적/사회적 권리로서의 인권을 주장하는 잡지에서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자신의 얼굴로 인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사람>편집진은 무척 야박했던 것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편집/기획위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해 편집회의 때 모이는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반 수 정도가 여성이고, 재단 이사들의 여성비율도 꽤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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