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주름잡는 시간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지구과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문과를 지망한 학생들은 대입시험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 했죠. 그 지구과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대뜸 칠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선을 쭉 긋고는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선이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의 일생은 이 점보다도 짧다고 그럽니다. 또 이 선이 우주의 역사라면 지구의 역사 또한 이 점보다도 짧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다단계 회사 대표나 사이비종교 교주의 ‘포스’를 물씬 풍기던 분이셨습니다. 결론인 즉은, 이처럼 방대한 범위에서 대입시험에 나올 20문항을 뽑으니 문제가 그 얼마나 쉽겠나, 그러니 다들 지구과학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전혀 ‘과학’같지 않았던 지구과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놈의 입시만 아니라면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수학까지도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란 사실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있지요.
강곤 | 편집인
2011.01.21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