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는데, 그 범죄를 통해 포상을 받고 진급한 국가범죄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는 국가 스스로가 국가에 대한 신뢰를 내던지는 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때로 못 볼 것을 보기도 하지요. 귀를 털어내거나 눈을 씻어 내고 싶을 정도로요.
부시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고 독재정권을 긍정할 필요도, 버마 민주화활동가들이 북한정권을 비난한다고 해서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만의 틀에 갇혀서 우리가 편한 대로 그들의 투쟁을 바라보고 필요한 부분에만 연대하는 것으로는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오지 않는다.
창작의 원동력은 창작의 결과물에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필요한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부터도 나온다. 무에서 창조되는 지식이란 없으며, 항상 누군가의 창작물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그것을 이용, 변형,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창출되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 고통을 대면하여 끌어안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국가인권위는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소’로서가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나 국가기구와 마찬가지로 ‘직적접인 투쟁의 대상’으로서 점거농성의 장소로 더욱 널리 애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막내놈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허고, 둘째딸은 건물 청소하구 그라지. 큰년이 쪼그맣게라도 식당을 하고 있구. 이것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혼자 살아도 정부 뒷받침을 받을 수 읎다고 하드라구. 자식이 읎느니만 못한 거지 뭐.
매일 밤, 숙제를 하고 나서 잠자기 전에, 나는 기도한다. 우리를 모든 해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처럼 피난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법의학 전문가는 사건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경찰이 수집한 정황 증거 등으로 소견을 달고 비전문가인 검사의 판단과 이를 토대로 비전문가인 법원이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금시설 수용자의 인권문제는 많은 경우에 교도관의 적나라한 폭행 내지 가혹행위사건으로 이슈화되고 있지만, 사실 구금시설 인권의 문제는 삶의 구석구석에 대한 권력의 통제시스템에 대한 도전과 문제제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확인되는 문제의식과 가능성이 지금은 꼭 필요한 때다. 사회운동포럼은 끝났지만, 그 소통, 연대, 변혁을 운동의 원리로 삼은 새로운 사회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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