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일터] [11년|10월|지금지역에서는] 도금공장을 바꾸다. 외

[일터] [11년|10월|지금지역에서는] 도금공장을 바꾸다. 외

1. 당신의 의자는 앉을 수 있나요? 부산 의자 캠페인단 시즌 2 출범하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타래 2008년부터 시작된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이후 대부분의 대형 마트에 계산원을 중심으로 의자가 놓여졌다. 이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있은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계산원이 아니면 의자가 제공되지 않을뿐더러, 계산대에 비치된 의자조차도 등받이나 발받침대가 없는 불편한 의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손님이 왕’이라는 정서가 주입되고 있는 조건에서 눈치를 보느라 앉아서 계산해 본적이 거의 없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대형마트, 연장영업 경쟁하는 백화점 부산에는 모두 31곳의 대형마트가 입점해 있으며 이 중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절반 이상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매장도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하고

[일터] [11년|10월|성명서] 방사능 노출로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 사망산재신청 노동자 19명중 14명은 불승인, 방치된 죽음

[일터] [11년|10월|성명서] 방사능 노출로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 사망산재신청 노동자 19명중 14명은 불승인, 방치된 죽음

올해 초 울산에서 비파괴 검사 업무를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어렵게 산재인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30대 노동자가 어린 딸과 부인을 남겨 놓고 오늘 새벽 유명을 달리했다. 이 노동자는 울산지역의 현대중공업, 세진중공업 등등에서 선박의 비파괴 검사 업무를 10년째 하던 노동자였다. 방사능에 노출되며 일해야 하는 위험 업무이지만, 2차 3차 하청구조에서 10년의 대부분을 야간노동을 하고, 2인이나 3인 1조로해야 하는 작업을 혼자서 감당했다. 방사능 작업에서는 작업자가 방사능에 얼마나 피폭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필름배지 등을 달고 피폭량이 초과되면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지급하지 않고 일괄 보관했다. 엄청난 작업량 때문에 작업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불과 2-3미터거리에서 방사선을 맞고 작업을 한 적도 있다. 2006년부터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으나, 회사는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계속 방사선 투과 검사를 시켜왔다. 같은 직장에서 동료 3명도 백혈구 감소 증세가 나왔다. 이 노동자는 산재신청서에 이렇게 적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한다. 왜 그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고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다시 건강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는 결국 어린 딸과

[일터] [11년|10월|칼럼] 전국노동자대회, 감격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일터] [11년|10월|칼럼] 전국노동자대회, 감격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한노보연 회원 김 재 광 전국노동자대회. 한때는 대회에 참가하는 자체가 감격스럽고 군중 속에 있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오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쯤부터 인가, 명절에 성묘 가듯 의무적 혹은 관성적으로 대회에 가게 되었고 대회 속에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일 때가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열정이 식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10년을 넘게 참가하다보니 모든 것이 식상해진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과거의 감격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했던 것일까? 전국노동자대회, 그 역사성은 자못 훌륭하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기운은 전국노동자의 연대 투쟁과 조직을 원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안은 1988년의 첫 대회는 전태일 열사 정신을 다시금 역사의 수면 위로 올려놓았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 후 매년 대회는 그 해 투쟁의 기운을 모아내고 다음해 투쟁의 방향을 공유하고 결의하는 그야말로 투쟁의 장으로서 역할 하였다. 더불어 새롭게 조직되었던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에게 몸으로 전국노동자의 연대를 느끼게 하기도 하였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노동자계급과 활동가들에게 감격의 장이었던 이유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뿐 만 아니라, 단결과 연대를 통한 투쟁의 결의를

[일터] [11년|10월|노안활동가에게듣는다] “틀에 갇히지 않는,경계를 넘는 활동으로”

[일터] [11년|10월|노안활동가에게듣는다] “틀에 갇히지 않는,경계를 넘는 활동으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이태영 정책국장 ▴정리 _ 선전위원 흑무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면 인터뷰 대상자에게 다시 원고를 보낸다. 내가 왜곡한 것은 없는지, 중요한 내용인데 빼놓은 것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인쇄를 건다. 편하게 얘기하시라는 의미로 그에게 ‘인쇄 걸기 전에 원고 보내드릴께요’ 라고 하니 그는 ‘피드백은 없어도 된다’ 했다. 구구절절 한들 간결명확 한들 십 년 동안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이 있고 사람들이 가진 태도, 생각, 선입견들은 쉬 바뀌지 않는다며 각자의 프레임대로 볼 것이라고 했다. 옮겨 적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래서 더 어렵다. –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에 2011년 4월 1일자로 복귀했고 정책국장을 맡고 있다. 나는 노동안전보건국장을 맡았으면 했는데 그렇게 안됐다. 조합의 여력도 없고 ‘노동안전보건 국장’이라는 직함이 공공운수 노조에서 전례가 없었다고 한다. 정책국장의 직함을 가지고 노안사업과 정책생산의 역할을 맡고 있다. 회의가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바쁘게 살고 싶지 않은데 바쁘게 살고 있다. 성격상 일을 시작하면 무섭게 빠져드는 편이라서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집안일이나 주변 사람을 두루두루 챙기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일터] [11년|10월|연구소리포트] 아주대 시설관리 노동자 실태조사(2)

[일터] [11년|10월|연구소리포트] 아주대 시설관리 노동자 실태조사(2)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송 윤 희 4. 임금 실태 조사 평균 세전 임금은 응답자 23인의 평균으로 91만 1,400원이었고 세후 임금은 응답자 22인의 평균으로 83만 8,900원이었다. 그 외 상여금이나 연장근무, 휴일근무, 야간 근무 수당 등의 법정 수당은 응답자 36명 모두 받고 있지 않았다. 세전 임금 기준으로 모든 응답자들이 법정 최저 임금인 864,000원을 5만원 정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임금 체불의 경험은 아무도 없었고 , 4대 보험 가입자는 총 44명 중에서 응답한 이들 36명 모두 가입되어 있었다. 이들 중 3인은 장기요양보험도 같이 가입되어 있었다. <세전 세후 평균 임금> 빈도 평균 최소치 최고치 세전 임금 23 911,400 900,000 970,000 세후 임금 22 838,900 820,000 871,720 5. 인권 실태 조사 부당 경험 사례를 물었을 때 상당수(40%)가 정해진 업무 외 지시를 받는다고 답했다. rm 외 차별적 처우가 28.6%, 폭언 및 폭행이 12.9%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 경험 가해자는 24명/26명이 용역회사 관리자였고, 이러한 부당경험에 대해서도 대다수인 28명 중 27명이 그냥 참고 지낸다고 응답했다. 성희롱 실태를 보면, 경험이 없다가 제일 많았지만,

[일터] [11년10월|문화 책읽기] 아프면 병원에 가라? No! 아프면 회사에 가지 마라? Yes!아보 도오루 교수의 『면역혁명, 부광』을 읽고

[일터] [11년10월|문화 책읽기] 아프면 병원에 가라? No! 아프면 회사에 가지 마라? Yes!아보 도오루 교수의 『면역혁명, 부광』을 읽고

한노보연 소장 김 정 수 창립 이전부터 지금까지 연구소 동지들, 지역과 현장의 동지들과 함께 해 온 수많은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근골격계 투쟁이다. 그 투쟁이 당시 상황에서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인 요인보다 직업과 환경적인 요인에서 찾고 싶어서 산업의학(현재는 ‘직업환경의학’으로 공식명칭을 바꾸었다)을 전공으로 선택한 2년차 초짜 의사였던 나에게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인간공학적 위험요인과 더불어 과도한 노동강도, 장시간 노동, 불충분한 휴식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알리기 위한 연구와 활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열심히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우리의 주장이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을 위해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어서는 안 되고, 이미 강화된 노동강도는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수십 년간 뼈 빠지게 일해서 이미 골병이 들어있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정부(노동부,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를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인정해서 산업재해 승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 [11년|10월|풀어쓰는판례이야기] 경쟁업체, 동일업종 창업 금지?또 다른 족쇄계약, 경업금지 약정

[일터] [11년|10월|풀어쓰는판례이야기] 경쟁업체, 동일업종 창업 금지?또 다른 족쇄계약, 경업금지 약정

공인노무사 이 영 애 경업금지 약정이란 회사가 기존 회사의 기술 또는 영업 비밀을 알고 있는 노동자에게 퇴사 후 경쟁업체에 취업을 하거나 동일업종으로 창업하는 것을 금하게 하는 약정으로 이러한 경업금지 약정은 기존 회사의 영업권 및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사업주가 이미 퇴사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경업금지·영업비밀보호약정 위반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남발하고 있어 이러한 경업금지 약정서는 노동자에게 결국 하나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성대상을 보면 연구·개발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영업직, 생산직 등 모든 직종의 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어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업금지 약정서를 작성한 노동자는 적게는 1년 많게는 3-4년간 동종업계에 취업할 수 없다고 하는 약정서의 내용으로 인하여 퇴사 후 3-4년간 가슴 졸이며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요? 답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 입니다. 사업주에게 \”재산권\”이 존재하듯 노동자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찌 보면 노동자가 갈고 닦은 그간의 기술과 영업행위로 쌓아온 인간적 관계역시 노동자의 재산권에 해당된다 할 것이므로 사업주의

[일터] [11년|10월|이러쿵저러쿵] 1박 2일 유치장 경험

[일터] [11년|10월|이러쿵저러쿵] 1박 2일 유치장 경험

한노보연 회원 청 5차 희망버스에 갔다 연행되는 바람에 꼼작 없이 유치장에서 36시간 넘게 갇혀 있다 나오게 됐다. 내가 의지 박약형 인간이라, 주변 상황이 나를 꽁꽁 매면 그걸 혼자 힘으로 풀지 못하고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에 들어가 있으면 좀 나을까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경험해보니 육신이 묶인다는 건 너무 괴롭고 우울했다. 조서를 쓰고 유치장으로 옮겨졌는데, 모포 6개를 깔면 발 딛을 곳이 없어지는 공간에 6명을 채워 넣었다. 몸을 뒤척일 공간도 없어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리가 하나도 없어서 누워 공상에 들거나, 잠자거나, 먹기만 했다. 외부와 연락은 단절된 채 1초, 1초 시간이 지나는 걸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으려니 막막했다. 자유를 뺏은 채 주어지는 시간은 어떻게 해도 여유가 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형벌이 되어 다가왔다. 78세 할아버지도 함께 연행되어 같은 유치장에 있었다. 이 분은 평소 심근경색, 뇌혈관장애가 있어서 계속 약을 복용하셔야 했다. 이런 사정을 경찰에게 설명했지만, 경찰이 취한 조치는 아스피린 한

[일터] [11년|10월|유노무사상담일지] 더불어여

[일터] [11년|10월|유노무사상담일지] 더불어여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nextstep1@hanmail.net 2001년 노무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어느덧 노무사로 살아온 지 10년이 되어 간다. 수험생 시절 나의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강아지(띵띵이)가 얼마 전 죽었다.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식빵을 2개나 훔쳐 먹고 배가 띵띵해져서 퍼져 있었던 모습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다. 녀석은 2000년에 태어나 나의 수험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훌륭한 놈이다. 얼마 전 수술을 했지만 회복하지 못했고 지난 금요일 한창 상담을 하고 있는데 오전 11시쯤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묵묵히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했다. 한 개피 담배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정말 정말 상담하기 싫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결혼을 한 후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집을 찾을 때면 무릎에 올라앉아 물끄러미 나의 눈을 바라보던 녀석이었다. 수험생 시절, 당시에는 낮과 밤을 바꿔서 생활했는데 19시에 시작하는 학원을 시작으로 23시30분경 집에 돌아오면 쉬었다가 다음날 아침 8~9시경 잠들고 16~17시경 일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전부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것을 줄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생활패턴이었다.

[일터] [11년|10월|일터다시보기] 실타래의 끝, 노동시간 단축투쟁

[일터] [11년|10월|일터다시보기] 실타래의 끝, 노동시간 단축투쟁

▲ <장시간 = 교대노동으로 빼앗긴 노동자의 삶을 그린 만평> 실타래의 끝, 노동시간 단축투쟁 강원비정규노동센터 김 광 호 얼마 전, 사무직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과 퇴근 후 저녁식사와 반주 한 잔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동지들이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업무가 그 동지들을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노동조합은 90년대 빨간 조끼로 유명한,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상징이었었다. 물론 제조업에서는 주야간 맞교대뿐만 아니라 조출과 잔업을 포함한 10시간노동이 기본적인 노동시간이 된지 오래이다. 잘 나가는 노동조합에서는 주5일제가 특근의 기회가 되었다. 유성기업의 투쟁을 통해서 ‘야간노동은 발암물질’이라는 명제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야간노동 철폐를 비롯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이 제대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잘나간다고 하는 금속노조에서도 몇 년째 주간연속2교대제를 위한 투쟁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만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관적 희망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노동자의 건강권과 관련해서 우리운동은 아직까지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 자본주의의 이윤을 위한 착취의 시스템 보다는 작업장에서의 사고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현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원했던 것은 아니다. 불안한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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