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노동자의 힘

[주간노동자의 힘] [현장이야기]하나로통신 계약직 노동자들:노동실태와 투쟁

[주간노동자의 힘] [현장이야기]하나로통신 계약직 노동자들:노동실태와 투쟁

봉복수(하나로테크놀로지노동조합 사무처장) 하나로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에서 직접 계약기간을 체결하는 특정직, 하나로 일반직이라는 본사소속의 계약직, 그리고 타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는 파견 계약직이 있다. 이 모든 계약기간은 1년이다. 나는 99년 당시 하나로통신의 “전송망구축운용부분 유지보수”라는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인력파견회사를 통해 입사하게 된 파견계약직 신분이었다. 대다수의 하나로 계약직 사원이 나와 동일한 파견계약직이다. 하나로! ADSL이란 브랜드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는 회사로 내게는 좋은 이미지의 회사였다. 비록 비정규직 신분의 계약직 사원이었으나 열심히 일한다면 나에게도 이런 좋은 회사의 정규직의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당시 인사팀 직원의 말도 그랬다. ‘비록 지금은 계약직 신분으로 입사를 하였지만, 열심히 일한다면 회사에서도 여러분들의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는 않을 거’라며. “너희들은 계약직…” 온갖 차별들 속에서 처음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사원들 모두가 외근직 내근직 구분 없이 일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외근 관련된 일은 모두 계약직 사원들이 하도록 우리 계약직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계약직이니까 이런 일들을 해야한다. 너희 계약직들은 이런 일을 시킬려고 뽑은 거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등의 발언들. 그리고 그런 설득은 곧 현실로 나타나기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시]소원-안윤길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자의 시]소원-안윤길

소원 안윤길 바라는 꿈 하나있네 내 노동 내 싸움이 끝나면 나 돌아갈 곳 한적한 시골에 논밭 갈고 남새 가꾸며 늙으신 어무이 모시고 함께 늙어 가는 꿈 꿈만 꾸면 자꾸만 눈가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득한 그리움이네 어나 백 날을 꿈 꿔도 꿈은 꿈일 뿐 그런 세상 없다네 없다네 오랜 파쇼의 하늘아래 만신창이 된 시골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쭈구렁 할마씨 영감탱이들 개망초 흐드러진 묵정밭 자본의 농약냄새에 찌든 기업이 된 농촌뿐이라네 이젠 헛된 꿈 다신 꾸지 않으리 기왕에 노동자 되었으니 여기서 끝장을 봐야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게 세월 흘러 다행히 다행히도 내 싸움이 승리로 끝나 자연의 순리가 나를 시골로 이끈다면 그렇게 이끈다면… 아아 한적한 시골이여! 해방된 세상이여! 2002.5.20.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운동사]6.25전쟁기의 노동운동(2)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운동사]6.25전쟁기의 노동운동(2)

김상복(노동자의 힘 노동위원장) 30년 만에 부활된 조선방직 파업투쟁 1951년 6.25 전쟁 중 부산에서 전개되었던 ‘조선방직파업투쟁’이 30년 만에 부활되었다. 79년 10.26 정변 이후 노동자 파업투쟁과 학생들의 집중적 가두시위를 뒤로하고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 1년 후. 1981년 11월 영등포 당산동 소재 산업선교회 3층 강당에서였다. 70년대 후반 이후 몇 안 되는 어용 한국노총에 독립하여 활동하던 민주노조 ‘원풍모방’ 노동자들이 마당극을 창작하여 11월 노동제를 통해 선언하는 자리였다. 광주 민중항쟁 패배를 기회로 많은 활동가들이 운동전선을 떠나가고, 남은 자들은 70년대 계급투쟁의 발전과 한계를 처절히 부정하며 벌써부터 지하로 스며들고 있던 그때였다. 숨겨져 있던 원전들과 사상서들이 넓게 보급되고, 학생운동 일부에서는 정치투쟁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시 역사를 처음 시작하듯 공장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던 그 당시. 공장 소조, 야학노동자, 몇 안되던 민주노조의 조합원들 그리고 아름아름 연락 받고 모여든 선진학생운동가들 700여명은 70년대 노동문화운동을 작품으로 총괄하고 80년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노동창작극을 통해 ’30년 만에 부활하는 조선방직 파업투쟁’을 목격했던 것이다. 파업투쟁선언문 “금번 우리의 쟁의는 임금인상 후생문제 해고자 복직 등 노동조건 투쟁이 아니요, 노동자도 인간대접을

[주간노동자의 힘] 페루 전력민영화 반대투쟁의 찬란한 승리

[주간노동자의 힘] 페루 전력민영화 반대투쟁의 찬란한 승리

원영수(노동자의 힘 회원) 과연 우리의 투쟁으로 민영화를 저지할 수 있을까? 강고한 38일 파업투쟁의 과정에서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물귀신처럼 물고늘어진 질문이다. 그러나 답은 저 멀리 페루의 남쪽에서 들려왔다. 저지할 수 있다! 페루 노동자-민중의 강력한 투쟁은 난공불락의 민영화 공세를 저지시켰다. 집요한 민영화 공세- 부패와 기만 일주일에 걸친 페루 남부지역의 반민영화 대중봉기의 굳건한 기세에 눌려, 최초의 원주민 출신 톨레도 정부는 2개의 전력회사(Egasa와 Egesur) 민영화계획을 철회하고, 투쟁의 중심지인 아레키파 주민들에게 사과성명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투쟁은 지난 6월13일 두 전력사에 대한 민영화 입찰 전날 폭발했다. 아레키파의 시장마저 민영화에 반대했음에도 중앙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민영화를 강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반민영화투쟁은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6월14일 열린 집회에는 2만 여 명이 모여, 경찰과 격렬히 충돌했다. 톨레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전력민영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지역 노조연맹과의 합의서에 서명했고,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된 톨레도의 민영화공세는 명백한 배신이었다. 민영화계획에는 20% 인력감축이 포함돼 있었으며, 나머지 80%에 대해서도 어떤 고용보장도 없었다. 즉 민영화는 수천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자교육으로 세상열기(4)

[주간노동자의 힘] 노동자교육으로 세상열기(4)

현광훈(공공연맹 교육국장) 투쟁의 꽁무니도 못 쫓아가는 노동자교육의 현실 ‘노동조합 일상활동과 교육’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총자본과 권력의 끊임없는 침탈과 투쟁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 정세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을 동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투쟁과 구분되는 일상활동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거꾸로 투쟁시기에 교육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육이 일상시기에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은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지금 제기하려고 하는 ‘노동조합 일상활동과 교육’이 갖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라중공업과 발전노조 투쟁에서 나타났듯이 준비되지 못한 교육의 한계를 필요성과 열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발전동력은 투쟁이었고 노동자교육은 투쟁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총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민주노조진영의 투쟁은 의도하든 않든 전국성을 띠어가고 있고 노동자교육도 이러한 투쟁의 전국성을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의 내용과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실 지금 노동자교육은 투쟁의 속도를 전혀 따라 잡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아무리 역사가 긴 노조라도 교육사업의 목표와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노조가 거의 없고, 과학적 노동운동을 주장해

[주간노동자의 힘] [정보통신]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주간노동자의 힘] [정보통신]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 과학기술혁명을 주도했던 전자 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장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본가들은 늘 첨단 기술의 깨끗한 작업장을 자랑해 왔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전자 산업인 반도체 공장들이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이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 대만에 있는 다국적 기업 RCA(Radio Company of America) 전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을 전개했다. RCA 노동자 자력구제 연합(Self-help Association for RCA Employees)에 따르면 RCA에 근무한 노동자들 중에서 1998년까지 137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 216명이 죽었다. 그리고 102명이 여러 가지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인 ‘깨끗한’ 작업장 RCA는 3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 제품 제조 회사였다. 1969년에 대만의 타오위엔(Taoyuan), 주후베이(Zhubei)와 이란(Yilan)에 공장을 지었고,

[주간노동자의 힘] [과학시평]대~한민국의 순간, 1987년 6월 투쟁의 블랙아웃?

[주간노동자의 힘] [과학시평]대~한민국의 순간, 1987년 6월 투쟁의 블랙아웃?

최형록(계간 진보평론 편집위원) 2002년 6월22일. 영등포구청 방향에 있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평소처럼 걸어간다. 오후 4시경의 거리. 마치 정물화 한 폭을 감상하는 듯 하다. 정겨운 친구 같은 바람과 악수하는 나무들 그리고 뛰는 듯 걷는 듯 들뜬 아이들처럼 노니는 참새들이 거의 유일하게 그 사나이가 지금 정물화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저녁 8시50분 경 광화문에서 종로방면으로 걸어간다. 그 사나이는 ‘붉은 무리’, ‘적색 환희’ 속에서 이방인이다. 그 사나이의 뒤통수 아래 자리 한 ‘전용극장’인 후두엽(시각중추)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장면들이 오버랩(겹침)된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는 ‘붉은 물결’과, 자본 사이의 경쟁에서 패배해서 문을 닫게 된 종로서적 일대의 폭죽소리. 또 하나는, 1968년 5월 파리에서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면서 적기를 휘두르는 형형색색의 대중과 화염병을 던지는 ‘붉은 여성’, 그리고 1987년 6월 최루탄과 전경의 곤봉에 쫓겨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까지 올라간 김에 남산타워에서 ‘의연한 야경’을 바라보는 사나이의 장면이다. 6월22일 오후 4시경부터 10시경까지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에서 이 ‘붉은 악마’들과 그 사나이의 역사적 ‘체험’은 이질적인 것이다. 이 사나이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로 찍어보면

[주간노동자의 힘] [환경]화해할 수 없는 것들을 화해시킬 수 있나?

[주간노동자의 힘] [환경]화해할 수 없는 것들을 화해시킬 수 있나?

'지속가능한 발전'과 자본주의

[주간노동자의 힘] [TV비평]월드컵 파노라마

[주간노동자의 힘] [TV비평]월드컵 파노라마

김상태(노동자의 힘 회원) 차라리 파시즘 치하에 동원된 티브이 방송이었다면 모든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한 방송의 존재 이유와 형식은 명백한 것이다. 그것은 집권자들과 지배계층의 대국민 선전과 이데올로기 교육, 허위의식을 통한 우민화, 맹목적 집산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개최와 방송보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는 현실이나 방송의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지배계급의 권력강화와 사회통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방송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방송이 월드컵을 중계하고 연관된 뉴스를 다루었다면 그 내용과 형식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남한 사회의 방송은 이것과 많이 다른가?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사이비 의미체계의 거짓된 덧칠이다. 월드컵 기간 중 모든 방송은 벌어진 일체의 사건이 국민적 애국심과 시민의식과 한 민족의 아름다운 공동체의식의 발로이면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과 7백만 국민의 질서정연하고 열렬한 응원은 국력과 위대한 국민성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 단합과 경제적 이득 및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참말이지, 대체 무슨 일이 생겨났건 사실이 정말 이렇다면 춤이라도

[주간노동자의 힘] [미디어]비밀을 알아챈 순간

[주간노동자의 힘] [미디어]비밀을 알아챈 순간

허성오(실험매체그룹 ‘힘’ 영상활동가) “짜짝~짝짝짝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에서 “오! 피스 코리아”까지 월드컵의 열기는 대단했다. 그 중에서도 자발적인 스포터즈의 이름인 ‘붉은 악마’는 그 이름 자체가 호의적이든 악의적이든 간에 사회적 현상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나 또한 한국의 경기가 있던 날은 출근하면서부터 빨갱이가 되자고 적힌 붉은 티셔츠의 범람에 기분이 묘해지는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는 붉은 물결이 일기 전에 장만했던 피어싱 박힌 붉은 티셔츠를 몇 차례 입지도 않고 헌옷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간에 수많은 젊은이들과 상당수의 늙은이들까지 평소에 축구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그들이 외치던 대한민국을 그토록 사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6월의 술자리에 아주 좋은 안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7월을 맞았고, 우연하게 노래공연에 가게 됐다. 2호선 동대문운동장 역에 내려 공연장을 찾아 걷는 동안 다시 “대~한민국”을 들었다. 오늘(7월2일) 광화문에서 월드컵을 마무리하는 무슨 축제가 열린다고 했던 걸 기억하며 “대~한민국”을 웃으며 들을 수 있었다. “2002년 7월 이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거부한다. 2002 노래마라톤 일상의 치열함을 노래하라.” 이런 슬로건으로 7월2일부터 7월7일까지 6일간 23개 팀의 밴드나 가수의 공연이 이어진다.(공연에 대한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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